16일 대한재난의학회 학술대회 리뷰

누가 뭐라 해도 상반기 우리 사회의 핵심 키워드는 '안전'이다.

올 초 경주 마우나 오션리조트 붕괴사고를 시작으로 세월호 침몰사고, 서울지하철 화재와 장성 요양병원 화재에 이르기까지 연이은 대참사는 국가 재난대응 및 위기관리 시스템 개편의 필요성을 부각시켰다. 해경 해체와 국가안전처 신설 등 전 국가적으로 재난대비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가운데 대한재난의학회(KSDM)가 17일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재난의학의 측면에서 당시 대응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오전과 오후 섹션에서는 각각 마우나 리조트 붕괴사고 및 세월호 사고 현장에서 병원 및 병원 전 단계 대응을 주도했던 의료진들과 관련 전문가들이 연자로 참석해 당시 경험과 의견을 공유했고, 그 외 인적 재난 및 해외재난, 방사선 재난 문제에 대한 섹션도 별도로 마련됐다.

세월호 침몰사고 섹션의 좌장을 맡은 서울의대 서길준 교수(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는 "이번 세월호 사고는 재난에 대한 국가 위기대응능력의 헛점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결정적 계기가 됐고, 아직까지도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면서 "재난대응의 개선방향을 논의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강연과 학회 현장에서 논의된 내용을 중심으로 세월호 사고 현장에서의 문제점과 개선안을 집중 조명해봤다.

 

△현장조직 중심 통합적 방재안전관리 시스템 마련돼야

연세대 조원철 교수(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는 세월호 사고에서 나타난 국가 재난대응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현장방재안전관리기구가 우선이 되고 중앙방재안전관리기구가 이를 지원하는 방재안전관리 시스템을 제시했다.

조 교수는 "사건발생 전부터 이미 한국 사회에는 안전은 없고 정치, 복지에만 몰입하는 백색벽 증후군(white wall syndrome)이 팽배했다"면서 "정부의 현장관리조직 부재와 중앙관리조직의 기능발휘가 불가능한 현행 법력과 제도, 조직 상태도 문제"라고 말했다. 재난방지 시스템은 예방이 최우선이어야 하는데, 현재의 재난 및 안전관리법은 예방은 불사하고 재해와 위험의 결과로 나타나는 재난만을 관리하고 있다는 것.

또한 재난 발생 시 현장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철저하게 현장 중심의 실질적인 방재안전관리조직이 강한 집행력으로 실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사회에는 재난발생과 사후수습에 대한 정부의 무한책임 분위기가 팽배하지만, 실제 재난 상황에서는 정부 청사나 청와대에서 재난현장을 직접 실시간으로 관리할 수 없는 만큼 지역별로 자율방재단(CERT)을 육성해 참여 시민들이 개인의 안전을 직접 책임지게 해야 한다는 것이 조 교수의 주장이다.

이를 위해서는 중앙정부가 현장관리기구에게 필요한 모든 방재자원을 지원하되, 현장관리기구에 평상시 조직의 숙련도를 점검하고 개선하는 감독기능이 부여되는 기능적으로 통합시스템이 정착돼야 한다. 이와 함께 재해·위험·재난별 주무기관과 지원기관으로 구성된 응급지원체계(ESF) 및 현장관리 매뉴얼의 공개화도 주문했다.   

마지막으로 "119 응급구조체계와 항공의료 강화, 현장에서의 신속한 응급처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구체적인 제도안을 구상 중"이라면서 "재난 발생 시 의료계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재난현장-의료진 간 일원화된 체계 필요

세월호 사고의 수습과정에서 일선에 참여했던 의료진들은 일원화된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데 입을 모았다.

사고 직후 보건복지부의 지원요청을 받고 재난의료지원팀(DMAT)을 이끌었던 목포한국병원 김재혁 과장(전남권역응급의료센터 응급의학과장)은 의료진과 재난 현장의 명확한 인계가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첫 출동 당시 목적지가 불명확해 진도군 보건소에서 팽목항으로 방향을 틀어야 했던 일과 앰뷸런스가 아닌 승용차로 도착하는 바람에 경찰로부터 차량진입 제지를 받아 구호물품을 들고 뛰어가야 했던 당시 상황을 회고하며 '현장 지휘부와의 연결고리 부재'를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세월호 응급의료지원 시에는 지휘 본부의 해남소방서장과 연결이 되어 그나마 나았지만 장성 요양병원 화재 발생 시에는 지휘 본부가 누구인지도 알기 힘든 상황이었다"는 김 과장의 설명을 미뤄볼 때 비단 이번 사건에만 국한시킬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부정확한 언론보도와 사상자 규모 파악으로 인해 헬기 등 이송자원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언더트리아제(under-triage)가 행해졌던 점과 사고지점으로부터 가까운 동거차도와 팽목항, 진도체육관 등의 거점에 의료진이 고르게 배치돼지 못한 점도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

고려의대 문성우 교수(고대안산병원 응급의학과) 역시 사고 발생장소로부터 의료기관까지 환자 흐름, 상황 전달에 대한 체계가 통일되지 않아 힘겨웠던 상황을 토로했다.

여러 기관, 부서의 중복되는 정보제공 요청이 빈번한 가운데 의료진 간 의견교환은 어렵고 안산시 파견 행정직 공무원에 의존해야 하는 실정이었으며 원내에는 기자, 방문객, 정부 관계자들까지 몰려 환자들이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진료환경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문 교수는 "지역단위 재난발생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 매뉴얼과 병원 진료환경을 위한 효과적인 통제가 필요하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지역사회 복구 프로그램도 마련돼야 할 것"을 강조했다.

또한 중앙대책본부가 발표한 세월호 관련 진료지원 대상자에 대해서도 "지원대상의 판단기준이 모호해 건건이 확인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면서 명확한 기준이 제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재난피해에 대한 장기적인 심리지원 방안 마련돼야

희생자 및 실종자 가족에 대한 장기적인 심리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한림의대 이병철 교수(한강성신병원 정신건강의학과)는 "재난 상황은 일반적 진료와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이는 데 반해 국내에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대한 전문클리닉이 거의 없고 재난 환자들에 대한 경험이나 교육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면서 "재난피해 전문가 육성과 이에 대한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경주 마우나 리조트 붕괴사고를 겪으면서 경북의대 정운선 교수(경북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를 중심으로 소아청소년정신과 TFT가 조직돼 상담실 운영 및 생존자 그룹을 대상으로 한 심리치료 등이 발빠르게 진행된 편이지만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 노력이 없었다면 학생들과 실종자 및 희생자 가족까지 모두 포용하기란 불가능했을 것.

현재 보건복지부에서는 안산 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와 중앙 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를 설치·운영하고 있고, 경기도 안산시 통합재난심리지원단을 설치해 범부처적으로 심리지원을 실시하고 있으며 시·도·교육청을 중심으로 다각적인 심리치료가 추진 중에 있다.

이 교수는 "희생자 및 실종자 가족들을 대상으로 국립서울병원 자살예방센터와 안산 사회복지협의체, 안산시 공무원 등의 연계로 찾아가는 심리안정 서비스도 진행 중"이라면서 "하루 약 50~60건의 가정방문이 이뤄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해당 지자체로부터 장례정보를 받아 장례식장 방문 이후 심리지원에 대한 정보제공, 초기상담을 거쳐 필요한 경우 국립서울병원이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소속 전문의가 집중상담을 수행하게 된다.

정신건강의학과가 아닌 일반 의료진들이 재난피해 환자를 접할 때에는 "우울감이나 죽고 싶은 생각이 드는가, 잠을 잘 자는가와 같은 단순한 질문만으로도 정신과적 접근이 필요한 환자를 선별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서 "가족이나 신체를 상실한 환자들의 경우 감정에 대해 표현하게 하는 것이 유용하며 필요할 경우 전문의에게 의뢰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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