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규제만으론 대참사 예방 못해

13. 우리나라 안전문화와 환자안전

이재호
환자안전연구회
홍보이사
울산의대
응급의학과 교수
4월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나라에는 기쁜 소식이란 없는 듯하다. 수많은 대형사고들이 있었지만, 이 사건만큼 우리를 슬픔에 잠기게 하고 분노하게 한 것은 없었던 것 같다.

무고한 어린 생명들이 무능한 사회의 희생양이 돼 안타깝게 사라졌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남긴 상처는 너무 깊어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다시 이런 사건에 똑같이 무능하게 대처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내고 고쳐나가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참사로부터 배울 준비가 돼있을까? 세월호 사건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응방식을 보면, 우리는 더욱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나갈 준비가 아직 덜 돼있는 것 같다.

담당 기관 및 정부의 무능과 안전에 대한 정책 부재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세월호 사건 이후 언론과 여론이 보여준 모습이었다. 사고 직후 언론은 현장 상황을 사실대로 보도하기보다는 사고원인이 무엇인지,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를 섣불리 분석하더니 심지어는 희생자 가족의 불편한 상황을 노출시켰다.

소셜 미디어나 인터넷에선 실종자 구조를 염원하고 구조요원의 활동을 지지하는 글보다는 책임자 처벌, 무능력한 정부 비난, 구조요원의 무능력을 질타하는 글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심지어는 세월호 사건에 대한 정치인과 언론인의 말들이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세월호 사건보다는 누가 무슨 말을 했는가 하는 것이 더 이슈가 된 듯 했다.

사실 누가 무슨 말을 했는가가 세월호 실종자를 구조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될까? 구조요원을 질타한다고 피로에 지친 채 힘겹게 파도와 싸우는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 우리 사회는 실종자 구조와 희생자 가족을 돕는 데 힘을 더 모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우리 사회는 재난을 극복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것일까?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와 같은 대규모 참사 이후 새로운 규제와 법이 생겨나지만 세월호와 같은 참사는 계속 발생하고 있고 이를 극복하지도 못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새로운 제도와 규제가 생겨나겠지만 이것만으로는 또 다른 세월호를 예방하고 극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잘못된 것으로부터 배우고, 슬픔을 나눌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문화는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만들어가야 한다.

추정치이지만 환자안전사건으로 매년 사망하는 환자들의 수는 삼풍백화점이 6번 정도 붕괴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환자안전사건도 단지 제도를 정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불합리한 의료제도와 수가체계에만 원인을 전가할 수도 없다. 수가체계가 개선된다고 환자안전이 바로 향상되는 것은 아니다.

환자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오류로부터 배우고 시스템을 개선하고, 아픔을 나누고 격려하는 문화를 만들어 나갈 때 우리는 환자안전사건을 예방하고 극복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환자안전사건의 끝에 있었던 실무자와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고 의료인을 '잠재적 범죄자'라는 틀에 가두어 환자안전을 오히려 후퇴시킬 수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언론에선 '안전사각지대'를 진단하는 기사들을 올리고 있다. '안전사각지대'를 찾아내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전사각지대'가 생겨난 원인을 찾아내는 것은 더없이 중요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투자했을까? 환자안전을 위해 정부와 의료계는 얼마나 노력하고 투자했을까? 이런 노력 없이 안전한 사회와 병원이 제도와 규제만으로 구축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인정하긴 싫지만 세월호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란 말에 동의한다.

이제 우리의 모습을 알았으니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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