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에 개최된 주요 정신과 관련 학술대회에서는 조울병과 우울증 등 정신건강질환 환자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자살률의 심각성이 주요 논점으로 대두됐다.

최근 서울에서 개최된 국제조울병학회(ISBD)에서는 조울병 환자의 자살을 집중적으로 다뤘고, 대한노인정신의학회는 2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통해 노인 우울증의 적극적인 치료 필요성을 알렸다.

마지막으로 대한정신의학회는 정신건강질환 환자에서 나타나는 자살 등을 예방하기 위해 치료에 대한 다각적인 접근이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 국제조울병학회 16차 연례학회
 

 

조울병환자 자살 위험 20~30% 높아
맞춤 관리전략 필요
약물·상담치료 병행 중요

 

조울병 환자의 25~50%가 자살시도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조증 상태보다는 우울한 상태와 혼합형 상태에서 발생하는데, 기분이 들떠있을 때보다는 기분이 저하됐을 때 더 자주 일어난다. 특히 한국은 2006~2012년까지 자살률이 점차 낮아지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다른 국가와 비교할 때 여전히 높은 편이다.

지난해 새롭게 발간된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 5판(DSM-5)에도 조울병 환자가 정상인에 비해 자살 위험도가 15배 가까이 높다고 명시돼 있다. 또한 자살의 원인 가운데 4분의 1이 조울병이며, 과거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거나 우울증상을 경험했던 환자에서도 자살 위험도가 크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조울병 환자의 자살 문제가 전 세계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국제조울병학회의 제16차 연례학술대회에서는 'Suicide in Bipolar Disorder: an ISBD task force report' 라는 주제로 각국 전문가들이 조울병 환자의 자살에 대한 원인과 사회적·의학적 측면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더불어 ISBD의 태스크포스(TF)가 구성한 조울병 환자의 자살 관련 데이터도 발표됐다.

TF가 연구논문 37개 및 메타분석을 토대로 조울병에서 나타난 자살 성향과 유병률 등을 10년간 비교·분석한 결과, 조울병 1형과 2형에 따라 자살 시도율에 차이가 있었다. 울증이 조증보다 더 많은 1형에서는 자살 시도율이 33.9%, 우울증과 함께 살짝 들뜨는 경조증 증세를 동반한 2형 환자에서는 28.6%가 나타났다.

세부적으로는 조울병 환자가 정상인에 비해 자살위험도가 20~30% 가량 높았으며, 주요우울장애(MDD) 등 다른 병력 소견을 가진 환자보다도 많았다. 자살 시도 시 사용된 방법에는 음독자살이 30~80%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그 다음으로 손목자상과 자해(5.6~22.7%), 뛰어내리기(4.8~13.2%) 순이었다.

전 세계 조울병 환자의 자살률을 효과적으로 줄이기 위해 맞춤 치료전략을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캐나다 써니브룩헬스사이언스센터 Ayal Schaffer 박사는 "자살 예방을 위한 캠페인과 체계적인 상담 서비스 등이 활발히 이뤄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자살 시도 및 사망률이 감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살은 여전히 암, 심질환, 뇌졸중 다음으로 높은 사망률을 보이고 있어 끊임없는 연구와 다양한 치료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원인에는 우울증, 불안장애, 유전적 요인 등 매우 다양하지만, 조울병 환자에서 자살이 가장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치료적 접근에 대해서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Lakshmi Yatham 교수가 약물 및 상담치료를 병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Yatham 교수는 "장기적인 약물치료에서 리튬을 사용하면 자살률을 낮추는 데 효과적이고, 간질치료제는 자살위험도와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조울병 환자에게 항우울제를 사용하면 자살위험도를 증가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있지만 아직 명확한 인과관계를 입증하지는 못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환자의 상태 변화를 세밀히 파악하고 환자가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대한노인정신의학회 20주년 학술대회
 

 

연령 높아질수록 자살률 증가
노인 우울증 환자 관찰 필요
자살 징후·추가임상 양상 살펴야

 

이와 함께 우울증으로 인한 노인들의 자살 문제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어 시급한 조치가 필요한 실정이다.

2012년 발표된 연령별 자살률에 관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0만 명당 10대가 5.1명, 20대는 19.5명인 반면, 70대는 73.1명, 80대 104.5명으로 조사됐다. 고령화 사회에 들어서면서 경제적인 어려움, 정신적·육체적 질병에 대한 두려움이 증가하면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대한노인정신의학회 20주년 학술대회에서는 경북의대 김병수 교수가 노인환자에서 자살의도를 드러내는 임상 양상으로 개인 위생 및 외모 관리에 소홀해지고 의도적으로 식사를 하지 않는 행동을 보인다고 했다.

이밖에도 최근에 유서를 쓰거나 가족들에게 소유물, 재산 등을 나눠주고 책임지고 있는 일들을 남에게 양도한다 등이 있다.

치료 전략으로 김 교수는 먼저 자살 사고 및 행동과 연관된 정신과적 증상에 대해 치료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 다음 환자의 증상을 감소시키기 위해 앞으로 어떤 치료를 받게 될 것인지 논의하고 치료자가 지속적으로 경과를 관찰하며 치료할 수 있음을 알려야 한다고 부연했다.

약물을 처방할 때는 과량 복용해도 위험성이 적은 약 위주로 사용해야 하며, 한 번에 일주일씩 짧은 기간만 처방하도록 권했다. 주요 우울장애가 동반된 경우에는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 부프로피온, 미르타자핀, 벤라팍신 등을 처방하고 자살사고가 동반된 노인 우울증 환자에서는 전기경련요법(ECT)이 효과적이라고 했다.

 

■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춘계학술대회
 

 

모바일 활용한 질병 양태 조사 눈길
우울·자살 행동 평가로
위험군 조기선별 관리 가능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도 정신건강질환 환자에서 나타나는 자살 양상에 대한 다양한 논문이 발표됐다. 이 중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한 새로운 치료법의 가능성을 제시한 연구가 눈길을 모았다.

원광의대 양찬모·김대진·노승호·이상열 교수와 남원 성일병원 홍정완·여의도성모병원 박원명 교수팀은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해 우울증 유병률과 자살행동에 영향을 주는 요인을 분석했다.

연구팀은 2011년 11월부터 2013년 6월까지 안드로이드폰과 아이폰 사용자들 중에서 '우울증 테스트'란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한 20만8682명을 대상으로 우울증 유병률과 자살행동의 가능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관찰했다.

우울증에 대한 조사도구는 The Center for Epidemiologic Studies Depression Scale(CES-D)을, 자살행동 가능성에 대한 조사도구는 The Suicidal Behavior Questionnaire-Revised(SBQ-R)를 사용했다.

그 결과 전체 대상자의 우울증 유병률이  69.4%로 측정됐는데 이는 연령대, 치료경험의 유무, 치료 받았던 질환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또 우울집단이 비우울집단에 비해 SBQ-R 총점 및 하위항목 모두에서 점수가 의미있게 높았다.

이에 연구팀은 자살사고의 빈도, 자살시도, 우울, 자살에 관한 표현이 향후 자살행동의 가능성에 중요한 설명 변인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연구팀은 "자살행동의 가능성에는 자살 빈도가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고 자살시도, 우울, 자살에 관한 표현 역시 유의한 영향을 미쳤다"면서 "추후 우울과 자살행동에 대한 평가를 통해 위험군을 조기 선별하고 관리하는데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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