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쏠림, 터무니없는 보험수가, 허다한 심평원 삭감 등 "이 정도일 줄이야"

#A내과 원장은 지난해 대학병원을 그만두고 개원을 선택했다. 기존에 개원하고 있던 동기가 만성질환 진료센터를 확충하면서 동업을 제의했다. 일부 장비와 병원 확장에 자금을 투자하면서 동업자가 됐다. 수익은 각자 벌어들이는 비율에 따라 나누기로 했다.

그가 대학병원에 있을 때는 나름대로 환자들에게 인기도 있었고 진료 대기시간도 길었다. 다른 과에서의 의뢰도 많았다. 자리를 옮긴 다음 기존 환자들에게 홍보하고 대학병원 교수 출신이라는 광고를 내걸기도 했지만, 도무지 환자가 늘지 않고 있다. 본인의 명성보다는 대학병원이기 때문에 환자가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전쟁터와 같은 개원가에서 자리잡고 꾸준히 확충해온 동기가 대단해 보일 정도였다.

“아, 우리나라 의료전달체계에 정말 문제가 많구나. 환자들이 고혈압 약 처방받으러 동네의원에 오는 것이 바람직할텐데, 대학병원에 더 많이 몰리는 것을 몰랐네.”

#B정형외과 원장은
올 초 개원했다. 그는 근골격계 질환 치료와 수술을 특화해보고 싶었다. 환자는 많았지만, 대학병원에서는 공간과 진료 시간에 한계가 있었다. 상급종합병원 지정 신청을 위해 상대적으로 경증질환 투자는 소홀한 탓이기도 했다.

그는 해보고 싶은 일을 위해 주위 우려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개원을 선택했다. 근골격계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이나 시합이 임박한 운동선수들이 그를 찾아오고, 제한된 시간이 아닌 하루종일 환자를 보는 것을 최대 장점으로 꼽았다. 다행히 그를 믿고 찾아오는 환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의사로서 내심 행복했다.

다만 10여개의 수술병상을 운영하면서 식당 운영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 환자들은 보통 2~3일 가량 입원하게 되지만, 매번 꽉 차있지 않고 주말에는 아예 비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식당직원 한 명을 추가로 고용하는 것은 부담이었다. 게다가 음식 맛이 없다고 해서 사람을 쉽게 그만두게 하기도 힘든 현실. 결국 매일 밥과 반찬을 배달 주문하고 있지만, 적자를 감수한 선택이었다. 입원환자 식대는 1끼에 고작 3390원이 책정돼 있으며, 그나마 영양사, 조리사 등을 둘 때만 약간의 가산료를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병원에 있을 때도 8년간 동결된 식대가 큰 문제라는 것은 알았지만, 외주업체가 알아서 해결해줄 거라 생각했다. 막상 닥쳐보니 냉혹한 현실이 됐구나.”

#C외과 원장은 대학병원에서의 알 수 없는 인사 관행과 승진 제한에 불만을 품고 몇 달 전 개원을 선택했다. 내심 보직에 욕심이 있었지만, 진료과장과 위원장에 머물렀다. 환자도 제법 많고 학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그였기 때문에 개원도 자신 있었다. 확장 이전하면서 비우게 된 선배 병원을 인수했다. 개원 초기에는 편했다. 가만히 앉아서 환자를 보고, 다소 심심하긴 하지만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간단한 수술만 하면 됐다. 각종 위원회, 진료과장 회의 등 불필요한 시간 할애도 없었다.
 
그런데 몇 달 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계속 삭감이 통보되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포괄수가제인 치질수술 등에 묶이면 더욱 가차없다. 이미 냉정한 현실은 잘 알고 개원했다. 돈 욕심을 부리는 것도 아니었다. 삭감될 정도로 추가 처방이나 과잉청구를 한다기 보다는, 청구오류나 기재오류가 많은 것으로 보였다. 대학병원에서는 행정인력이 지원되지만, 단독 개원하는 입장에서는 직접 살펴보고 이의신청을 해야 한다. 그는 여간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포기하고 싶어진다. 심지어 그렇게 노력해도 받아들여진다는 보장도 없다.

“아, 개원의들이 심평원을 왜 그렇게 싫어하는지 이제서야 이해간다. 누군가 이의신청을 대신 해줬으면 좋겠네.”  


최근 개원한 A, B, C원장 사례는 일선 개원의들의 고민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대학병원으로 쏠리는 환자들, 터무니없는 입원식대 등 보험수가, 거기에 무지막지한 삭감 통보가 악재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병의원 수가협상 기간이긴 하지만 이미 가이드라인이 제시된 만큼 큰 기대는 할 수 없고, 심지어 총액계약제 언급과 포괄수가제 확대 등의 소식만 전해지자 더욱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이들 원장은 “예전에는 개원하면 빌딩 하나 세운다고 할 정도로 모든 의사들의 꿈이 개원의였다. 하지만 더 이상 그렇지 않고, 막상 개원을 해보니 생각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어려움이 뒤따른다”라며 “안전한 직장에서 월급쟁이로 살아가는 것이  나을 수 있지만, 대학병원도 진료실적 압박, 인센티브 삭감 등으로 마냥 편하진 않다. 사회 전반이 그렇지만 의사 직역 자체에  뒤따르는 위기”라고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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