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근거 부족한 M사 PRP제품 적응증 명시 허가 변경 추진

비밀리에 진행된 15일 민원조정위원회, 무슨 일이 있었나?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임상근거가 부족한 특정업체 제품에 적응증을 명시해 허가를 내주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관료+마피아의 ‘관피아‘ 논란에 휩싸이고, 안전을 중시하고 있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복수의 제보자에 따르면, 식약처는 지난 15일 철저한 비공개를 원칙으로 ‘민원조정위원회’를 열고 외부위원들에 PRP업체인 M사의 허가를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식약처 역사 상 최초로 진행된 민원조정위원회 공문. M사를 위해 10명의 외부위원들이 식약처를 방문해 3시간 가량 회의를 하고 돌아갔다.  

이날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3시간 가량 진행된 위원회는 식약처 민원조정위원장, 기획조정관, 바이오생약국장, 의료기기안전국장, 감사담당관 등 식약처 내부 5명에 외부에서 초청된 전문가위원 10명 등 총 15명이 참석했다.

회의의 핵심 내용은 M사의 혈액처리용기구(PRP) 허가사항 중 사용목적 변경이다. M사는 기존 허가된 제품을 ‘건·인대 조직수복, 피부조직재생, 구강조직재생 등의 치료’라는 분명한 적응증의 추가기재를 요청했다. 

위원회는 PRP의 효능·효과를 의료기기 사용목적에 기재하는 것이 가능한지를 판단하고, 인정이 가능하다면 허가신청 당시의 근거자료를 채택할 수 있을지를 주된 안건으로 제시했다.

즉, 기존 허가받은 제품을 허가받을 당시의 자료를 토대로 의료기기 허가 내용에 적응증을 명시해달라는 것이다.

PRP(Platelet-Rich Plasma)의 정확한 개념을 보면, 환자로부터 혈액을 채취해 원심분리기로 혈소판을 분리한 뒤 농축된 혈소판을 인대·연골에 주사하는 자가 유래 혈소판 재생치료술을 말한다.

혈소판에는 조직의 치유를 촉진하는 여러 종류의 성장 인자들이 함유돼 있다. 혈소판을 농축하면 그 안에 함유된 여러 성장인자를 고농도로 사용할 수 있게 되고, 손상된 조직의 치유와 재생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M사는 2012년 연골결손 환자에서 PRP 제품에 대한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와 보건복지부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의 안전성, 유효성에 대한 최종 심의를 통과했다.

업체 홈페이지에는 “이 제품은 자가혈이나 골수를 추출해 분리, 농축시킨 후 추출한 세포 농축액에 존재하는 줄기세포이다. 세포 농축액에는 줄기세포와 성장인자, 혈소판이 포함돼 있다”라며 “하버드의대 기술력으로 특수고안된 디자인과 장비를 이용해 세계에서 가장 스마트하고 활발한 줄기세포만을 분리·농축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M사, 임상근거 없이 적응증 명시 요구

문제는 M사가 명확한 임상 논문없이 ‘건·인대 조직수복, 피부조직재생, 구강조직재생 등’의 적응증 기재를 요구한데 있다.

참석한 외부위원은 “허가 신청 당시 논문은 SCI 논문이긴 하지만, 국내 임상 논문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수입한 해외 업체의 논문일 뿐이며, 그 논문에도 분명한 적응증이 명시되지 않았다”고 우려를 표했다. 

M사는 국내에서 임상을 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해 제품을 판매할 수 없으며, 해외에서의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신속한 허가를 내달라고 요구했다. 

해당업체 대표이사는 “PRP 시장이 매우 혼탁해 제품의 우수성을 보장하기 위한 이해가 전혀없이 허가를 내주면서 경쟁이 치열해진 상태다. 이 제품은 하버드가 개발한 좋은 기술이기 때문에 환자를 위해 필요하다”라며 “신의료기술 인정을 위해 보건의료연구원에 3번이나 갔으나 취하했다. 다른 제품과 비교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허가 내용에 제품의 분명한 효능·효과를 넣어 달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PRP 업체 관계자는 “PRP는 SCI논문 등에 효능·효과가 나와있지만 특별히 적응증을 명시하는 경우는 극히 소수 사례에 불과하고, 국내 임상은 전무하다”라며 “효과가 증명되긴 했으나, 국내 근거부족을 이유로 PRP 자체가 제한적으로 허가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적응증 명시를 위한 별도의 허가 절차는 업계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해석했다.


특정업체를 위한 식약처 최초의 민원조정위원회

그만큼 특정업체의 과도한 제품 판매 욕심이라고 볼 수 있다. 주장이 불합리하면 규제 당국에서 무시하면 된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상식적이지 않은 주장을 사상 초유의 민원조정위원회까지 열어 허가를 내주려던 식약처에 있다는 지적이다. 

▲ 민원조정위원회 회의진행 안내문. 주된 안건은 M사의 PRP 허가사항 중 사용목적을 변경하기 위한 민원 타당성 여부를 심의하는데 있었다.


민원조정위원회란, 개별적인 민원담당 공무원에 맡길 수 없는 민원이나 맡기는 것이 적절치 않은 민원을 심의·조정하기 위해 설치된다.

지난 2009년 관련 근거가 만들어졌지만, 그간 단 한번도 열린 적이 없다.

대부분의 민원은 각 부서에서 처리 가능하며, 위원회 위원들을 소집하기에는 비용, 시간, 행정력 등이 낭비되기 때문이다.  

식약처 민원조정실 관계자는 “민원조정위원회를 연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민원인이 지속적으로 민원을 제기하다 보면 열릴 수 있으나, 해당 부서에서 모두 민원처리가 가능하다. 그러나 부서에서조차 해결이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하면서 이례적으로 이번 위원회가 열린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민원조정위원회에 참석한 외부위원들은 철저히 비밀서약까지 했다. 그러나 식약처의 이상한 행태에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전언이다.

한 외부위원은 “외부위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식약처는 마지막까지 주장을 밀어부쳤다”라며 “품목허가에 사용목적을 명시할 수 있는지, 임상근거가 있더라도 인정하지 않을 수 있는지를 되물었다. 논문에 효능·효과를 인정하고 있는 만큼 적응증 명시가 크게 문제될 것이 없지 않냐는 식이었다”고 귀띔했다. 

다른 외부위원은 “특정 회사 제품에 특혜를 주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상식적으로도 맞지 않고 근거도 전혀 없다”라며 “식약처가 진행한 위원회로 10명이나 되는 전문가 집단이 먼 길을 오가며 시간을 소요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비판했다.

 

근거부족으로 부결됐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날 외부위원들은 근거 부족을 이유로 업체 요구를 반대했다. 제품 기준, 시험에 따른 검토, 적응증을 한정하는 이유, 과학적인 실증 자료 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위원들의 비공개 찬반투표를 거쳐 최종적으로 9대 1로 부결됐다. 하지만 식약처가 아직 보고 절차를 완료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심지어 위원회를 묵살하는 허가를 내주기 위해 고심한다는 이야기마저 들려왔다.

식약처에 정확한 내용 확인을 위해 의료기기 부서 몇 곳에 연락을 시도했으나 자리에 없다거나 회의에 참석 중, 메모를 남겨놓고 연락을 주지 않는 등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M사 대표는 해외 출장 중으로 조만간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다.

외부위원은 “삼성전자가 웨어러블기기를 출시하면서 의료기기가 아닌 레저용 제품으로 쉽게 허가 변경을 받으면서 M사 역시 임상절차 없이 지름길로 가려는 방법을 모색한 것으로 보인다”라며 “식약처도 실무진에서는 반대하는 표정이 역력했지만, 윗선에 누군가가 추진하는 것으로 예상된다. 일련의 사건으로 더욱 안전성을 중시해야 하는 상황에서 행정당국의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쓴소리를 냈다.

학계의 한 교수도 “PRP는 효능·효과를 인정받아 제한적으로 신의료기술에 등재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제품"이라며, "분명한 허가절차를 무시하고, 임상 근거없이 적응증을 한정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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