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불안장애, 선택적 언어함구증, 분리불안장애, 발모광

청소년 23% 한가지 이상 불안장애 겪어
인지행동치료, 특정 행동에 대한 세부 치료기법 필요
단순한 증상경감 넘어 인격 성숙·발달 정상화 목표로 해야

 

소아는 성장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스트레스에 노출되고 그에 따른 적절한 불안과 공포 반응을 통해 세상에 적응하고 생존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이처럼 일생을 살면서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감정 중 하나가 '불안'이지만 정도가 심하고 오래 지속돼 생활과 발달에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 이를 '불안장애' 라고 부른다.

불안장애는 소아청소년기에 가장 흔히 나타나는 정신건강문제다. 2005년 서울시에서 시행한 연구결과를 보면 전체 소아청소년의 23%가 한 가지 이상의 불안장애를 경험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발생하는 불안장애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강박장애(OCD), 공황장애(panic disorder) 등이 있다.

최근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춘계학술대회서도 소아청소년기에 나타나는 주요 불안장애와 증상에 따른 진료지침이 공개됐다.

이 중 임상에서 자주 발생하는 범불안장애(GAD), 선택적 함구증(selective mutism), 분리불안장애(separation anxiety disorder), 발모광(trichotillomania)의 양상과 치료전략을 알아보고 자칫 간과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불안이론에 대한 학문적 접근을 통해 질환을 보다 심층적으로 살펴봤다.

 

정통 정신분석에서 시작된 불안이론

불안은 잠재적 또는 조짐이 보이는 애매한 위협에 따라 일어나는 행동과 관련된 동기를 뜻하는데 생물학적으로는 설명이 어려웠던 과거 초기 정신분석 이론에서는 심리학적 해석과 관찰을 토대로 불안을 설명했다. 이후 동물실험과 루마니아 고아 연구 등을 통한 인간 연구에서 불안의 해부학적 경로 및 신경내분비 물질의 규명을 통해 불안의 실체가 밝혀지고 있다.

이러한 불안이론은 오스트리아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Sigmund Freud에서 구체화되기 시작했고 영국 심리학자 John Bowlby의 애착이론에서 체계적으로 정리됐다. 최근에는 생물학적 연구 방법론의 발전과 더불어 불안의 기전을 밝히려는 노력이 진행 중이다.

여기서 하나의 의문이 생기는데 바로 '불안발생에 결정적 또는 민감한 시기가 존재할까?'라는 것이다.

이러한 의문은 2000년 미국 연구자들이 실시한 Bucharest Early Intervention Project(BEIP)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올해 최종 연구결과가 발표된 BEIP는 루마니아 고아들을 실험군, 정상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을 대조군으로 분류해 약 12년에 걸쳐 신체발육, 인지기능, 뇌 발달, 사회성 발달 등을 평가한 연구다.

고아들이 시설에 수용됐던 기간은 출생 후 7~35개월까지로 달랐는데, BEIP 연구자들은 수용 기간에 따라 치료 효과 및 시간에 따른 자연 치유력 등을 평가했다. 뇌파, 지능지수(IQ), 상동행동, 사회기술, 애착, 신장 및 체중 등이 평가지표였다. 특히 불안과 우울상태도 함께 포함됐다.

이들은 연구결과 도출에 앞서 좌측 전두엽은 긍정적 정서 자극에 의해 활성화되고 접근 행동을 촉진시키며, 우측 두엽은 부정적 정서 자극에 의해 활성화 되며 사회적 철퇴 및 회피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가설을 내놓았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고아원 수용 유무를 떠나 초기 뇌파 소견은 좌반구 전두엽에 비해 우반구 전두엽 뇌파 활성도가 높고, 이후 좌반구 기능이 증가하면서 역전된 것이다.

고아들의 경우 수용소에 있다가 정상 가정으로 입양된 뒤에 좌반구 활성도가 회복되는 경향이 있으나 이는 24개월 미만 기간 동안 수용소에 있던 집단에 국한됐다. 이러한 전두엽 뇌파 비대칭 형태는 54개월째 되는 시점에서 우울과 불안 같은 내재화 장애의 예측인자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경희의대 정신건강의학교실 반건호 교수는 "이 연구는 대상이 7개월 이상 35개월 미만의 소아를 대상으로 해 7개월 미만이나 35개월 이상 된 소아에서 수용소 생활과 같은 환경 인자가 뇌의 특정 부위 발달에 미치는 효과를 여러 가지 측면에 대해 확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면서 "불안과 같은 정서문제에 대해서는 24개월 전후가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정신과 전문의들은 수년간 진행된 다양한 불안 발생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소아에서 동반되는 불안장애 증상을 파악하고 이들에게 맞는 치료전략을 세운다. 

 

"태양 폭발 때문에 다 죽는 건 아닐까?"

범불안장애(GAD)는 특별한 원인 없이 막연하게 불안을 느끼거나, 매사에 걱정이 지나쳐서 생활에 지장을 받거나 고통스러워하는 증상이 6개월 이상 지속되는 질환이다.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 5판(DSM-5)에서는 사건이나 활동에 관한 과도한 불안과 걱정이 6개월 이상 지속되고 소아가 불안을 통제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지 눈여겨보라고 강조했다. 단 증상이 약물의 생리적 효과나 의학적 원인에 의한 것은 아니어야 한다.

또 △안절부절·초초함 △쉽게 피로해진다 △집중을 못한다 △짜증이 난다 △근육 긴장 △수면 장애 등 6개 증상 중 3개 이상을 동반한 경우(적어도 이 중 몇개는 6개월 이상 지속돼야 하고 소아에서는 한 개만 만족해도 된다) GAD로 진단한다고 명시됐다.

하지만 위와 같은 기준으로도 진단하기 어려운 복잡한 양상의 증상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2006년 존스홉킨스대학 Golda Ginburg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GAD 소아 가운데 74%가 근육긴장과 관련된 신체적 증상을 동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다음으로 복통(70%), 얼굴이 붉어짐(51%), 호흡곤란(48%), 다한증(45%) 등이 뒤를 이었다.

이처럼 GAD 소아는 양상이 다양하고 불안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걱정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전문의들은 장기적인 치료계획을 짠다. 먼저 약물치료에는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 삼환계 항우울제(TCA), 알프라졸람이 주로 쓰인다.

인지행동치료(CBT)도 빼놓을 수 없는데 근육이완훈련, 모델링, 탈감작 등을 이용한 '행동 치료적 기법'과 부적응적인 자기지시의 교정, 문제해결 훈련, 자기조절법 훈련 등의 '인지 치료적 기법'을 병행해서 사용한다. 또 의사소통 및 문제해결기술을 증진시키기 위해 가족을 참여시키는 경우도 있다.

정선주 정신과의원의 정선주 전문의는 장기적인 치료효과를 위해서라도 CBT를 꾸준히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아가 불안을 다룰 수 있는 자아의 힘을 길러주기 위해 가장 적합한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면서 "증상 경감에 대한 단기적인 치료 효과를 비교하는 차원이 아닌 소아의 인격 구조의 성숙과 발달 과정의 정상화를 목표로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밖에 나가면 말을 못해요"

선택적 함구증은 18세 이하 소아청소년기의 장애 중 하나로, 언어발달이 정상적으로  이뤄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상황에서 말을 하지 않는 증상이 1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를 말한다. 전체 불안장애 유병률의 0.47~0.76%를 차지하며 특히 여아에서 1.2~1.6배 더 흔하게 나타난다.

대개 5세 이전에 발병하지만 학교에 진학한 이후인 5~8세 사이에 진단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한쪽 혹은 양쪽 부모가 사회성이 떨어지거나 패닉상태를 경험한 적이 있다면 같은 불안 증상의 병력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

DSM-4-R에서 선택적(elective) 함구증이라는 명칭을 사용했고, 지속적인 거부가 진단기준에 포함됐다. 하지만 이후에 개정된 DSM-4에서는 지속적인 실패라는 용어로 변경됐는데 이는 선택적 함구증이 두려움과 불안에 의해 유발된 것이지 자발적이고 저항적인 원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로 분석된다.

DSM-4에서는 선택적 함구증을 소아가 말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사회적 상황에서 말을 하지 못하고 장애의 기간이 적어도 한 달간 지속돼야 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단 입학 후 초기 1개월은 제외된다.

더불어 장애가 학업·직업적 성취나 사회적 의사소통을 저해하는 경우와 광범위성 발달장애, 정신분열증, 다른 정신증적 장애의 기간 중에만 발생되는 것은 예외라고 기술했다.

현재 선택적 함구증의 예후나 치료에 대한 자료는 매우 적어 진단이 보다 정확하게 시행되고 있다.

소아 및 부모는 물론 담임교사의 면담을 기본으로 정신과적 증상, 인지기능, 학습 능력에 대한 평가, 청력평가, 언어평가, 심리학적 검사가 체계적으로 실시된다. 이후 소아의 증상에 맞게 치료 계획을 세우는데 여기에는 행동, 가족, 약물, 학교 기반 치료가 있다.

약물치료에는 SSRI와 페넬진이 주로 사용된다. 5~14세 소아청소년에게 하루 10~60㎎의 플루옥세틴을 처방한 국내 연구결과를 보면 9주 이후에 76%에서 치료 효과가 나타났다. 또 선택적 함구증 환자 15명에서 0.6㎎의 플루옥세틴을 복용하도록 했더니 12주 이후 일부 증상이 호전됐다.

선택적 함구증 역시 GAD와 함께 행동 및 가족 치료가 중점적으로 시행된다. 행동 치료는 표 1과 같은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이뤄진다.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정신건강의학과 김효원 교수는 "행동 치료와 더불어 가족을 치료과정에 참여시키는 것이 소아의 회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부모와 형제를 이해시키고 협력하게 하면 소아가 불안과 회피를 극복하는 것을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학교 못 가는 아이

소아가 애착대상(부모, 조부모) 혹은 익숙한 환경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6~7세 이후에도 이러한 불안이 계속돼 일상적인 활동에 장애를 준다면 분리불안장애(SAD)를 의심해 봐야 한다.

SAD는 학령기 소아들 중에서 3~4%의 유병률을 보이는데 초등학생은 5%, 중학생에서는 2%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DSM-4는 18세 이전에 표 2의 증상 중 3가지가 4주 동안 관찰되고 이러한 증상들이 사회·학업적은 물론 다른 중요 기능영역에서 심각한 불편이나 장애를 일으키면 SAD로 진단하기를 권고했다.

 

치료에 앞서 전문의는 소아가 가지고 있는 불안상황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소아가 주 애착대상과 분리되는 것을 왜 불안해 하는지와 그 불안의 원인이 무엇인지 명확히 파악한 후 본격적인 치료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후 전문의와의 면담을 통해 인지행동치료를 시행한다. 1차적으로 치료근거와 목표를 수립하고, 소아의 분리상황에서의 감정, 행동, 생각을 분석한다. 그다음 이완훈련 등을 통해 불안을 야기하는 상황에서 소아가 떠오르는 비이성적인 자동적 사고(irrational automatic thought)를 이성적인 사고로 수정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 SAD를 동반한 소아 대부분이 자신감이 부족하고 내성적인 경우가 많아 자기 주장적 행동과 의사소통기술 향상이 필요하다. 방과 후 심부름 하기 등을 통해 스스로 일을 수행할수 있도록 해 독립심을 길러주는 것이 하나의 예다.

SAD는 양육태도나 집안환경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어 부모나 가족의 변화가 없이는 치료의 효과를 기대하기가 어려워 부모의 상담과 교육이 함께 이뤄진다. 하지만 만약 소아가 지속적으로 등교를 거부할 경우에는 SSRI와 벤조디아제핀 등을 이용한 약물 치료를 병행한다.

 

머리카락 뽑는 아이

발모광(trichotillomania)은 즐거움, 만족감, 긴장완화 등을 위해서 반복적으로 자신의 털을 뽑아 현저한 털의 상실을 초래하는 충동조절장애로, Thrix(털)+Tillein(당기다)+Mania(광기)로 풀이된다. 1889년 프랑스 피부과 의사 Hallopeau가 젊은 남자에서 자신의 머리털을 뽑는 증례를 처음 보고하면서 알려졌다.

소아청소년기에서의 유병률은 1% 미만이고 성인에서는 0.6~10% 정도로 여성이 대부분이다. 대개의 발모광 환자들은 증상을 감추려하고 미용적 혹은 정서적으로 불편감을 느꼈을 때 내원한다.

발모광의 원인으로는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다. 몇몇 연구결과를 통해 외상후스트레스 장애(PTSD)에서 발모광 과거력이 매우 높았고, 애착대상과의 분리 입원과 같은 환경의 변화, 동생의 출생, 형제자매간의 경쟁관계, 학습 부담 등이 보고됐다. 동반질환에는 주요 우울증, 물질의존, 주의력결핍장애(ADHD), 강박장애(OCD) 등이 있다.

발모광 환자에서는 약물보다는 CBT에 비중을 두고 있다. CBT로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모델인 미국의 발모광학습센터의 치료전략은 표 3과 같다.

 

전문가들은 CBT는 발모광에서 가장 안전한 초기치료 방법이며 이후 부가적인 치료전략으로 SSRI , 클로미프라민, 플루옥세틴 등의 약물치료가 우울장애, OCD 등이 발모광에 동반돼 있을 때에 고려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단국대 심리학과 임명호 교수는 "인지전략에서 팔목에 방울을 다는 것과 같은 광범위한 방법보다는 소거하고자 하는 목표행동, 발모행동만을 변별할 수 있는 보다 세밀한 기법이 고안될 필요가 있다"며 "발모 증상뿐 아니라 좌절된 정서적 욕구에 대한 갈망, 우울감 등과 같은 요소가 동반되어 있을 때 특히 환경 전략이 도움이 된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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