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적자에 대한 논의 시작 ... 착한 적자에 대한 개념, 영역 등 아직 없는 상태

 
지방의료원 등 공공병원들이 대부분 적자를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착한 적자' 혹은 '건강한 적자'에 대해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착한 적자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조차 잡혀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 논의가 어떻게 진행돼야 할지 의견이 분분하다.

지방의료원의 경영 적자는 하루 이틀 된 이야기가 아니다. 2012년 기준으로 전국 주요 지방의료원의 누적적자를 보면 서울의료원 709억원, 군산의료원 536억원, 인천의료원 466억원, 남원의료원 381억원, 부산의료원 318억원, 원주의료원 287억원 등이다.

이렇게 엄청난 누적적자 때문에 의료원들은 병원의 투자를 감소할 수밖에 없다. 결국 우수한 인력을 뽑지 못하고 이로 인해 경쟁력이 약화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악순환의 결과는 평가로 드러나고 있다. 2013년 지역거점 공공병원 등급별 평가 결과를 보면 80점 이상의 A등급을 받은 곳은 청주의료원과 김천의료원 뿐이고 대부분 B,C 등급에 머물러 있다. 속초, 제주, 인천적십자, 거창적십자 등은 60점 미만을 받아 D등급이다.

착한적자란 도대체 무엇?

착한 적자란 말은 지난해 2월 경상남도 진주의료원 폐원 논란이 있으면서 시작됐고, 박근혜 대통령도 지역발전위원회 회의에서 공공의료를 할 때 필요한 부분이면 정부가 지원하고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후 착한 적자에 대해 본격적 논의가 이뤄지고 있고, 국회와 보건복지부도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까운 시기에 국회 토론회도 열릴 것으로 보인다.

 
병원들이 적자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해도 마이너스를 기록할 수밖에 없는 영역에 대해서는 정부가 투자해야 한다는 게 착한 적자의 기본 이론이다. 진주의료원이 응급실, 분만실, 중환자실 등 돈이 안 되는 필수의료를 유지하고 있었고 또 과잉진료도 다른 사립병원들보다 70% 정도 적었지만 적자를 봤다는 것이 한 예라 할 수 있다.

착한 적자에 대해 많은 사람이 동의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고도 험해 보인다. 기본적인 개념조차 합의돼 있는 것이 없고 오히려 민간과 공공의 싸움으로까지 번질 수도 있는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건국의대 예방의학과 이건세 교수는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 포럼을 통해 착한 적자는 공익적 의료의 제공, 사회적 안전망의 유지, 중앙 및 지방정부의 정책 수행, 지역사회의 공익적 활동을 위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손실이라고 정의했다.

이 교수는 "착한 적자의 개념에는 게으르고 의도적인 도덕적 해이는 없다. 착한 적자는 수익성보다는 환자의 입장에서 최선의 진료를 수행하려는 적극적 의지를 전제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착한 적자가 날 수 있는 영역으로 특정집단의 진료로 인해 발생하는 적자를 꼽는다. 노숙자 진료나 응급환자 진료, 의료급여나 차상위계층의 진료가 여기에 속한다. 또 선택진료비를 받지 않는 것이나 낮은 비급여 수가, 기준병실 4인실 운영도 착한 적자의 영역에 포함된다.

이 교수는 "감염환자 격리병동 설치나 노숙인 응급진료를 위한 시설,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등에 대한 의료적 지원 등을 꼽을 수 있다"며 "지역사회 무료 진료나 무료 수술, 건강증진 병원 등도 해당되고 연구개발이나 인력 교육 및 훈련, 공공사업 조직 운영 등이 착한 적자 영역이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북부병원 권용진 원장은 착한 적자에 대한 개념이 좀 세밀하게 보완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진료과, 환자풀, 신의료기술, 위치 등 여러 상황에 따라 병원이 적자가 날 수도 있고 흑자가 날 수도 있는데 이를 단순하게 구분하는 건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권 원장은 "우리나라는 정부가 의료기관들을 민영화 하고 상황이 악화되면 여기에 투자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문제"라며 "외부환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공공의료를 만들어 놓는 것이 착한 적자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착한 적자에 대한 개념과 영역이 정해졌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많은 숙제가 남아 있다. 공익적 활동에 대한 정의는 있지만 의료의 공공성에 대한 시각은 학자들마다 다르고 몸담고 있는 직종에 따라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또 지방의료원의 착한 적자에 대해 구체적인 수입과 지출에 대한 자료가 수집되고 분석할 수 있느냐도 문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지방의료원의 정체성과 나쁜 적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난제임에는 틀림없다.

 
공공병원의 착한 적자는 지원해야
그렇다면 현장의 목소리는 어떨까? 의료원에서 경영하는 하는 원장들은 착한 적자를 정부가 지원하는 게 절실하다고 요구한다. 9일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공공보건의료 심포지엄에 참석한 포천의료원 오수명 원장은 많은 지방의료원이 의사, 간호사를 제때 채용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오 원장은 "지방의료원들은 지역 여건상 우수한 의료진을 확보하는 것이 어렵다. 일단 젊은 친구들이 지방에 잘 오려 하지 않는다"며 "의사 구하는 것도 어렵고 간호사 구인도 힘들다. 그런데 최근에 보호자 없는 병원을 추구하면서 간호사 채용이 더욱 곤란해졌다. 이런 부분은 정부가 적극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부진한 진료과를 폐쇄하고 임상과장 성과 목표 관리제를 시행했다. 또 성과급 지급 보상체계를 확립하고, 임상과장의 요구들도 충분히 반영했다"며 "연차휴가를 적극 사용하게 한다거나 인력을 동결하고 인쇄비, 냉난방기 중앙 통제로 에너지 절감 등의 관리비 절감을 위해 노력하는 등 아무리 노력해도 근본적인 대책이 없으면 적자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의료원 등 공공병원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려면 정부나 지자체가 인력지원과 인건비 지원 등이 절실하고, 필수진료과 개설 운영에 따른 인력과 예산의 지원도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또 우수 의료진의 역량 강호를 위한 교육과 보상체계도 정부가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의료는 그 자체로 공공성이 있다

만일 정부가 착한 적자에 대해 지원하면 공공과 민간의 영역에 대한 문제도 잠재돼 있다. 공공분야의 적자는 착한 적자이고, 민간분야의 적자는 나쁜 적자냐라는 논란이 발생한다는 우려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요양기관당연지정제가 운영되는 나라에서 민간의료기관이 보험제도 틀 속에서 제공하는 의료는 모두 공공의료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공공의료기관의 착한 적자를 지원한다면 민간의료기관의 착한 적자도 같은 대우를 해야 한다는 것.

북부병원 권용진 원장은 "의료행위는 그 자체로 공공성을 갖고 있다. 또 국각가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시키는 것은 너무 당연한 과제"라며 "민간에서도 지역사회 의료에 기여하고 환자의 예방의학에 관심을 가지는 등 공공적인 활동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서울의대 김윤 교수도 착한 적자를 공공의 영역에 제한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는 "모든 의료는 공공적이다. 의료가 공공기관에서 이뤄졌을 때만 공공적이고 민간에서 이뤄졌다고 공공적이지 않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민간에서도 환자와 사회를 위한 방식으로 진료를 했고, 특별히 비효율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진료를 했음에도 적자가 난다면 국가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또 "의료 취약지역의 병원이 있다고 가정 했을 때 환자 수가 적어 적자가 날 수 있는 구조에서 공공의 병원은 착한 적자고 민간은 나쁜 적자라는 구조는 맞지 않는다"며 "착한 적자라는 단어 자체가 의료기관의 책임보다는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착한 적자에 대한 논의가 더 진전되려면 착한 적자와 나쁜 적자를 구별하는 객관적인 방법과 지표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이러한 추세와 맞물려 최근 보건복지부도 민간의료기관의 공공의료 참여 확대를 꾀하고 있는 추세다. 공공의료기관의 양적 확충보다 민간의료기관이 공공의료기능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방안을 찾고 있다.

복지부 권준욱 공공보건정책관은 '민간의료기관 공공성 평가 및 공공보건의료 수행방안'에 대한 연구결과가 5월달 안에 나오면 하반기에는 의료기관의 공공성 평가제도 시행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권 정책관은 "공공과 민간의료기관의 공공성 정의 및 평가지표를 개발하고 공공의료 기능을 수행하는 역량을 평가해 국가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을 강화할 것"이라며 "공공성과 연계한 보건의료사업 지원도 진행한다. 보건의료분야 국가사업 수행시 공공의료수행 역량기관 우선 선정을 통해 양적으로 부족한 공공보건의료기능을 확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민간의료기관의 공공의료 참여 확대 논의에 대해 한 공공병원장은 부정적인 시각을 보인다.

그는 "정부가 민간의료기관에 공공성을 강화하는 무언가를 시키겠다는 발상이 잘못됐다. 국가가 민간의료기관에게 무언가를 강제로 시킬 수 있는 것은 효과를 볼 수 없다"며 "정부는 공공성을 위해 무언가를 하려면 투자를 더 많이 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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