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등 지난해 마이너스 경영 돌입
병원 “저수가 탓”…일각에선 ‘병상수 확대’ 비판

의료계 내부 “지방·중소병원은 더 어려워”
수가적정화·의료자원 효율 사용 방안 모색 과제


철옹성처럼 보였던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등의 병원 수익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지난부터 병원들은 비상경영을 외치며 수익감소를 막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적자경영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월 30일 공시된 12월 법인들의 공공기관 알리오와 국세청 공익법인 2013년 회계결산 조회 결과 서울대병원의 의료수익은 8277억1596만원으로 당기순이익이 -251억 9726만원, 전년대비 이익 증감액이 -285억1581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서울병원 의료수익은 1조1253억5197만원으로 당기순이익 -619억6140만원, 전년대비 이익 증감액은 -171억9892만원이었다.

서울아산병원 외 7개 병원의 의료수익은 1조4974억1847만원, 당기순이익은 41억 1526만원이었고, 전년대비 이익 증감액은 -334억5128만원이었다.

물론 좀 더 세밀하게 재무제표를 들여다봐야 하지만 표면적으로 국내 내로라하는 병원들의 수익이 하락하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의료전달체계의 최상위에 있는 이들 병원이 흔들린다는 것은 의료계 전체가 어려움에 빠졌다는 하나의 지표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의료계는 저수가와 정부 정책이 병원을 도탄에 빠뜨리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일각에서는 빅5병원 등이 변화하는 의료 환경을 예측하지 못하고 병상수 확대에만 몰두해온 책임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모든 것이 저수가 때문"

서울아산병원 등을 포함한 빅5병원들조차 적자를 기록하는 현실에 대해 병원 경영진들은 저수가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의료보험 도입 초기부터 원가에 못 미치는 수가를 갖고 지금까지 끌어온 것만도 대단한 일이었는데 이제는 한계에 도달했다는 주장이다.

빅5병원의 한 병원장은 "정부는 의료보험을 도입할 당시 국민 저항을 줄이기 위해 저부담 저급여 기조로 출발해 현재 급여항목의 원가 보존율은 70% 수준에 불과하다"며 "그동안 병원들은 원가보전이 힘든 급여 수가로 버텨왔고, 경영을 위해 비급여수가를 통해 재정손실을 보완해 왔는데 정부와 국민은 비급여수가에 대해 비난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 "정부의 삭감 일변도 의료정책으로 병원들의 경영수지는 계속 악화되고 있다"며 "최근 5년간 수가 인상률이 물가 상승률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상태에서 병원들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고 정부를 비판했다.

서울대병원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저수가 기조를 바탕으로 진행하는 수가계약제도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점수당 단가(환산지수)만을 대상으로 수가를 체결하는 방법과 반복적으로 파행적으로 운영되는 수가 계약은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상대가치점수 부분 개정, 본인부담률 축소, 급여범위 확대, 보장성 강화 등은 보험재정에 커다란 압박요인으로 환산지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데 정부는 환사지수만을 대상으로 수가를 체결하고 있다"며 "매번 정부와 하는 수가체결은 결렬되고 이후 복지부 고시로 대체되는 것도 병원 경영을 더욱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대학병원 관계자는 "일각에서 대학병원들이 CT, MRI 등의 고가장비를 경쟁적으로 도입하거나 암센터, 뇌혈관센터 등을 지어 병원의 적자를 자초한다지만 그것은 현실을 모르고 하는 얘기"라며 "병원들은 마른 수건에 물기를 짜는 것도 한계 수준에 다다른 상황에서 그것마저 하지 않으면 병원은 주저앉게 된다"고 말했다.

또 "가격 결정의 자율권도 없고, 핵심가치의 원가도 반영할 수 없는 분야가 의료다. 게다가 공공성 확보를 위해 생존을 위협받는 산업은 아마 의료밖에 없을 것"이라며 "정부가 공공성 강화 및 보장성 강화를 하려면 원가보장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괄수가제도 시행 수익 악화 요인

최근 보건복지부가 진행하는 포괄수가제 등의 의료정책도 무풍지대로 여겨졌던 빅5병원 수익에 빨간불이 켜지게 한 요인이다. 실거래가상한제·쌍벌제 등으로 약가 인센티브가 없어졌고, 2012년부터 CT 15.5%, MRI 24%, PET 10.7% 인하 등의 고가장비에 대한 수가가 인하되면서 병원에 타격을 준 것도 사실이다. 또 7개 질병군의 포괄수가제 실시와 초음파 급여화 등도 병원 수익을 악화시켰을 것이다.

병원들이 데이터를 근거로 수익이 악화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당장 오는 8월부터 선택진료 의사 수를 병원별로 80%로 줄여야 하고 내년부터는 진료과목별 65%, 2017년에는 선택진료의사를 없애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동안 선택진료비는 의사들의 인센티브나 병원에 필요한 비용으로 사용됐지만 이제는 질평가를 통해 그 비용을 받게 된 것이다. 여기에 상급병실료도 정책도 병원 경영에 적신호를 밝히고 있어 상급종합병원들은 그야말로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저수가 때문이라는 주장은 핑계”

빅5병원 등이 저수가 때문에 경영이 최악의 상황까지 왔다고 하지만 시민단체와 몇몇 의료계 관계자는 이는 핑계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수가의 원가 보전율이 70~80%라는 것은 지난 2006년 의료행위별 상대가치점수 1차 개정을 목적으로 시행된 조사내용을 근간으로 한다는 게 시민단체의 주장이다.

건강세상네트워크는 "원가 자료 중 직접비용(인건비, 재료비, 장비비)은 원가 수준이 상대적으로 상급종합전문병원을 중심으로 제공된 자료이기 때문에 신빙성이 없다"며 "2012년 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의료행위별 원가보전율을 보면, 검체 검사가 151%, 영상검사가 128%를 육박한다. 수술, 처치, 기능검사의 원가보전율은 61~73% 범위로 행위 유형간 원가보전율의 상대적 격차가 심하다"고 말했다.

또 "행위에 따라 원가보전율은 매우 높은 행위도 있고 낮은 행위도 있는데 이를 두고 마치 전체 행위들의 원가수준이 '절대적'으로 낮은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의료계는 근거를 갖고 저수가 주장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빅5병원들이 병원의 시설 투자에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적자라고 얘기하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다는 주장도 나온다. 최근 지속적으로 암병원을 비롯한 심혈관센터, 뇌신경센터 등 특성화센터를 내세워 병상수를 증가시켜 주변 중소병원 등도 어렵게 만든 장본인들이 이제와 누구 탓을 하냐는 지적이다.

서울대병원은 첨단외래센터에 지난 2011년부터 오는 2016년까지 941억원을 투자하고, 메디컬HRD센터에 2010년부터 올해까지 199억원, 심장뇌혈관병원에 2010년부터 올해까지 584억원을 투자하면서 비상경영 등을 외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얘기도 있다.

김동근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은 "서울대병원이 4년 동안 흑자경영을 하고서도 부채가 계속 증가했다. 유동비율 역시 2010년 161%에서 2012년 132%로 감소하는 등 재무유동성이 악화됐다"며 "서울대병원이 최근 몇 년간 대규모 투자로 인한 영향 때문이다. 투자 확대는 장기적 관점에서 산업의 성장세가 예상되거나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때 이뤄져야 하는데 서울대병원은 수도권 환자 공급이 포화상태에서 병상을 증축했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병원 경영진들이 인구 구조의 고령화와 저출산, 질병구조의 변화, 소비자 권익 신장 등의 변화에 대비하지 못하고 병상 수를 늘리는 정책을 고수한 것에 대해 깊은 반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래서인지 빅5병원들의 경영악화를 지켜보는 의료계의 시각은 이들의 어려움에 동감하면서도 그동안 중소병원이나 동네병원들의 환자를 잠식하며 독불장군식으로 성장해온 빅5병원들에 대한 서운한 마음도 엿볼 수 있다.

지방의 모 대학병원 기획실장은 "KTX가 생긴 후 환자들이 빅5병원에 마치 블랙홀에 빨려드는 것처럼 쏠리면서 지방의 병원들은 한층 더 어려워졌다"며 "빅5병원들이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잊고 독주해온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 개원가 원장은 "많은 개원의들이 보건소가 하는 일에 대해 사사건건 불만을 표시하지만 사실 개원의들이 분노해야 할 대상은 빅5병원"이라며 "이들이 개원의들이 해야 하는 모든 영역을 독식하고 있다"고 불편함을 드러냈다.

수가 조정 역할 분쟁조정위원회 필요

병원 경영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논란에서 복지부도 자유로울 수 없다. 복지부는 가격을 규제하는 방식으로만 의료계를 통제해 왔고, 의료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기피하고 자원관리를 방치했다. 또 비급여에 대한 풍선효과를 가져오게 한 책임이 크다. 무엇보다 의료계가 정부를 불신하도록 만든 게 복지부의 가장 큰 잘못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서울대병원의 한 관계자는 수가가 낮든 적당하든 수가계약의 개선이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키워드라고 강조한다. 의료계와 공단, 정부가 공동심의기구를 구성하고 연구 개선안을 도출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계약 당사자간 원만한 계약체결과 계약불체결시 조정, 중재할 수 있는 분쟁조정위원회의 신설이 필요하다. 위원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며 "의학적 비급여 운영에 대한 법령개정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의학적비급여보다는 ‘의학적 비급여’ 혹은 ‘보험 외 진료’ 등의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병원들도 경영 합리화를 위해 애써야 한다. 우선 진료과별 질환별 진료패턴을 분석하는 일이 급선무다. 이를 통해 진료프로세스별 표준지료지침을 만들고 경영합리화까지 고려한 적정 진료 패턴을 만들어야 한다. 또 적정수가 산정을 위한 수가별 원가 시스템 구축과 인력, 공간, 장비 등 효율적인 자원관리도 병원들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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