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경종 울렸다"vs"긁어 부스럼만 만들었다"

헌법재판소에서 당연지정제 위헌 소송에 대해 '기각' 결정이 나오면서, 후폭풍을 자각했음에도 충분한 준비 없이 무리하게 소송을 진행했다는 평가가 일고 있다.

게다가 이번 소송으로 인해 앞으로의 위헌소송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난 2012년 9월 대한의사협회 노환규 前회장은 당연지정제 위헌소송을 위한 청구인을 모집했다.

이어 송형곤 대변인을 통해 "헌재 결정 후 10년이 지났으나 의료수가가 여전히 불균형하고, 의료분야에 대한 특수성과 다양성의 반영이 미흡한 상태"라면서, "경종을 울리는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이라고 추진 의사를 밝혔다.

앞서 지난 2002년 판결에서는 "충분한 숫자의 공공의료시설이 확보될 때까지는 강제지정제를 채택해야 하며, 모두 확충된 후 그때 계약지정제를 채택하면 된다"는 결과가 도출된 바 있다.

하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공공의료시설에 대한 노력이 없자 의협 전 회장 및 집행부에서 다시 소송을 제기한 것.


이번 역시 결과는 의협의 참패였다.

지난 24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 일치의 의견으로 의료법에 따라 개설된 의료기관이 건강보험의 요양기관이 되도록 한 건강보험법 조항이 의료기관 개설자들의 직업 수행의 자유와 의료소비자들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선고했다.

또 헌재 선례에서는 '공공의료기관이 전체 의료기관의 10%에 불과해 민간의료기관을 의료보험체계에 강제로 동원하는 것이 의료보험 시행에 있어 불가피하다'는 측면이 지적됐는데, 올해도 마찬가지의 결론이 나왔다. 2011년 기준으로 봤을 때 전체 의료기관 중 공공의료기관이 차지하는 비중이 병상 수 기준으로 11.8%에 그쳐 "여전히 당연지정제 폐지는 이뤄질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시했다.

더욱이 2012년 대법원 판례를 통해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임의비급여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허용된다는 판시를 근거로 "의료행위의 선택의 기회가 확대됐고, 이후 요양급여 기준과 비용산정 기준 등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헌재는 "오히려 그간 의료기관 개설자의 직업 수행 자유나 의료소비자의 제한정도는 다소 완화됐으므로 선례의 결정을 유지하기로 한다"고 결정했다.

즉 당연지정제를 굳이 폐지하지 않더라도 공급자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해석한 것이다.

 

일부 의료계에서는 "정부가 공공의료시설 확충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하면서 의료기관 개설자의 직업수행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이에 대해 소송을 제기해 정부에 일침을 놓는 것은 적절했다"고 평했지만, 대다수 의료계 관계자들은 "경종은 커녕 '기각'이라는 나쁜 선례를 남기면서 앞으로 위헌소송을 통한 강제지정제 폐지는 더욱 어려워지게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실제 지난 27린 열린 의협 정기총회 분과토의에서도 대의원들은 "국민 행복권을 추구하는 입장에서 접근해야지 지금처럼 '의사의 직업 자율권'으로 접근해서는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지 않다"고 내다봤다.

집행부인 의협 연준흠 보험이사 역시 "임의비급여나 원외처방약제비 관련 법안에 대해 헌법소원 심판청구 요구가 많지만, 헌재에서 패소하면 사실상 다음에 나아갈 길이 없다"면서 "헌법소원을 청구할 때는 이같은 점을 충분히 고려해서 결정해야 한다"고 '신중한 접근'을 강조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당연한 결과며, 이미 예상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폐지됐을 때 그것이 국민에게 이득이 될지 1차의료기관에 이득일지, 아니면 빅5기관만 좋을지 등 '유불리'에 대한 아무런 연구나 자료가 없는 상황에서 지나치게 무리한 추론으로 시행했다고 볼 수 있다"며 소송 근거가 부적절했음을 지적했다.

또한 "개인의 직업 자유 보장 보다는 당연지정제 폐지로 인한 '국민피해'가 더 우선 순위에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좋은 계기가 됐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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