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정총 종합] 이사 불신임.노 전 회장 피선거권 박탈까지

2달짜리 회장직대도 자격미달 주장...논란 속 인준 통과

'대통합'을 외친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가 첫째도, 둘째도 '노환규 전 회장'을 집중 타격했다.

당초 대의원회는 세월호 등 사회 전반 분위기를 의식해 조용히 지나가기로 사전결의하고 논란이 된 정관과 운영위원회 규정 개정은  다루지 않기로 했다. 막상 27일 제66차 의협 정기대의원총회 뚜껑을 열어보니, 무엇보다 노환규 전 회장의 싹을 자르고 싶어 하는 모습을 여실히 드러냈다. 
 

▲정기대의원총회를 진행 중인 변영우 의장

대의원회 변영우 의장은 개회사에서 "의협이 존경과 신뢰를 회복해야 하고 대학병원·종합병원·병원 봉직의, 개인의원, 전공의 등의 불만을 해결해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회장·의장·임원·대의원의 선출부터 의협의 구성에 이르기까지 정관을 두루 살피고 하나된 의협을 만들어 나갈 것"을 희망했다.

실상은 다른 분위기를 의식한 듯, 김경수 회장 직무대행은 처음 인사말에서부터 상정된 이사진의 불신임안건을 제고해 달라고 호소했다.

김경수 회장직대는 "방상혁 기획이사, 임병석 법제이사 등 두 이사 모두 의협, 의사를 위해 헌신했고, 특히 임병석 이사는 변호사임에도 삭발까지 할 정도로 의사보다 더 의협을 아끼고 사랑해왔다. 잘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회원들의 넓은 아량과 포용력을 발휘해 달라"고 말했다. 

일부 대의원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김경수 회장 직무대행의 자격 여부부터 따졌다. 한 대의원은 "대의원에서 회장직대를 선출하지 않은 만큼 정식 대의원회 인준 절차가 필요하다. 노환규 회장이 불신임을 받았기 때문에 그가 선임한 회장직대도 신뢰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 회장직대는 "회장이 유보됐으니 단 2달간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것이다. 오자마자 믿을 수 없다거나 자격 미달이라 물러나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며 "있는 기간만큼은 중립적이고 공정하게, 업무 공백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임무를 수행하겠다"고 피력했다.

특히 대의원들이 의식한 것은 불신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다. 가처분이 승인되면 노환규 전 회장이 다시 회장으로 돌아올 것을 우려하고, 남은 집행부에 재판부가 아닌 대의원회에 일임해줄 것을 당부했다.

의협 집행부는 노환규 전 회장의 불신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시 의협의 대처는 대의원회가 아닌, 사법처리에 맡기겠다는 의미심장한 여지를 남겼다. 최재욱 상근부회장은 "가처분 소송과 관련해 의협에서의 상대는 재판부가 판단하는 것이다. 재판부의 직권으로 집행부가 회장직대를 정하거나 제3자를 통해 선임될 것"이라고 밝혔다.

과열된 조짐을 보이자 변영우 의장은 "김경수 직대는 2개월간의 한시적인 회장으로, 대의원들이 합동으로 추인하길 바란다"고 정리하고 투표에 부쳤다. 회장직대 인준에 찬성하는 대의원 137표(80.59%), 반대 27표(15.88%), 기권 6표 등으로 논란 속 인준이 최종 결정됐다.

 

두 이사 끝내 불신임...노 전 회장 피선거권도 박탈

'2개월'이라는 단서에 무사히 인준된 김경수 회장직대, 최재욱 상근부회장과 달리, 방상혁 기획이사와 임병석 법제이사는 끝내 대의원회로부터 불신임을 받았다.

의협 대의원회는 비공개 투표에 부친 결과, 방상혁 기획이사 불신임 찬성 100표(55.25%), 반대 79표(43.6%), 기권 2표로 불신임이 확정됐다고 발표했다.  임병석 법제이사 불신임안도 찬성 104표(58.43%), 반대 74표(41.57%)가 나와 통과됐다.
 

▲불신임안이 통과되자 괴로운 표정을 짓는 방상혁 기획이사

대의원회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의협 중앙윤리위원회로부터 위반금 500만원 이상을 확정받은 회원에 대해 5년이 경과하기 전까지는 의협회장에 출마하지 못하게 개정했다.

노 전 회장은 지난해 6월 경만호 전 회장 시절 계란 투척 등을 사유로 중앙윤리위원회로부터 1000만원의 벌금을 받은 바 있다. 즉, 의협 역사상 5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유일하게 선고받은 노 전 회장은 이번 보궐선거는 물론, 2015년 선거, 2018년 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된다.

노 전 회장은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즉각 페이스북을 통해 반발하고, 1~2일 내로 '의협회장 불신임에 대한 효력정지가처분신청'을 접수하겠다고 응수했다. 방상혁·임병석 두 이사에 대한 효력정지가처분신청도 동시에 접수하기로 했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1~2달가량은 대의원회 개혁과 사원총회(의사총회) 분위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집행부 회무 엉망...재정 악화에 업무 공백 일쑤  

의협의 내부분열 속에서 집행부 업무가 제대로 이뤄질리 만무하다.

이날 회무보고에서는 빈번한 상임이사회의 사표 제출로 인해 협회 업무의 연속성이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됐다. 특히 기획, 보험, 의무, 정보통신 등 핵심부분은 주의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정협의가 수차례 무산되거나 보험정책의 뚜렷한 성과가 없다는 지적이 나왔고, 심지어 정보통신이사 공백 1년 만에 협회 홈페이지 해킹을 당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회비 납부에 의존하고 있지만, 회비 납부율이 떨어지면서 의협 존립 자체의 위기감도 제시됐다.

감사결과 경만호 집행부 이전 70%에 달하던 회비 납부율이 2013년에는 68%로 감소했다. 특별분회 납부율은 대부분 90% 이상이지만 인천(41%), 대전(68%), 경기(58%)가 특히 낮아 납부율 제고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입 다양화를 위해서는 회원전용 신용카드 및 복지몰, 사이버 강의, 의협명칭 및 로고사용, 국책사업 적극 참여 등 추가적인 창출 방안이 제시됐다.  지출 중에서는 관리비, 인건비 등이 가장 심각하다고 봤다. 올해 상임이사진과 집행부, 의협 직원들이 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흔들리는 의협 분위기로 예전과 다르게 노조가 매우 강경하게 나오고 있어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홍승원 대전 대의원은 분위기를 통감하면서 "의협 내부에서 단결이 잘 될 때는 일하는 사람도 힘이 나고, 복지부와 이야기할 때도 힘이 실린다. 그러나 2달 뒤 또다시 집행부가 바뀌고, 업무의 연속성이 떨어질 수 있다. 의협이 흔들려도 안심하고 할 수 있도록 대의원과 사무국 모두 힘을 합쳐 안정적인 회무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의협 한 상임이사는 "의협 회무를 제대로 하는지 점검하는 대의원회 제도가 정작 업무를 망치고 있다. 대의원들은 노 전 회장을 아예 매장시키려고 한다"며 "당초 그들이 추진하려던 정관개정 등은 법논리에 맞지 않고 시대에 역행한다. 투표도, 총회도, 비대위도 모두 의협회장 위에 대의원회가 있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일 뿐이다"라고 성토했다. 


대의원회 개혁 지적에 시도의사회장단 겸직 안하기로

대의원회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전국의사총연합 정인석 공동대표는 이날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전의총에서는 지속적으로 의협 대의원회의 겸임 반대, 연임 금지, 정관 개정, 인원 재구성 등 4대 개혁안을 주장하고 있다"며 "현재 대의원 개혁은 불가피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대의원회 개혁을 주장하는 전의총의 피켓시위

결산보고에서는 대의원회 운영위원회의 활동비가 지나치게 많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인건비는 2012년 수준으로 낮추고 홍보비나 연석회의비용 등과 신설된 관련 예산을 모두 삭감하기로 결정됐다. 

한 대의원은 "임원들의 인건비는 작년과 비슷한데, 대의원 운영위는 인상됐고 신설된 예산 항목도 있다. 일괄적으로 30% 정도 삭감해야 한다"며 "운영위 존속 자체에도 의문이 든다. 운영위가 만들어진 후 집행부와의 불협화음이 발생했고, 대의원들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운영위원회에 참여하는 대의원은 "필요없다고 생각하면 삭감해도 되지만, 모두 필요해서 쓰는 것"이라고 해명하고 "자신의 업무를 제쳐놓고 의협을 위해 일하는 데 지원해주는 것은 당연하다. 많은 돈도 아니다"라며 대립각을 세웠다.

반면, 불신임안 등의 소식을 기사로 접한 일부 회원들은 대의원도 투표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회원은 "대의원은 소위 말하는 기득권을 가진, 명예욕과 권력욕으로 똘똘 뭉쳐진 나이먹은 의사 집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들은 투표로 뽑힌 의협회장을 발 밑으로 보고,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라며  "대의원회는 선거로 뽑지 않고 돌아가면서 하는 식이며,  시도의사회장들의 인맥"이라는 온라인 댓글을 남겼다. 

논란이 커질 것을 의식한 듯, 시도의사회장단 역시 한 발 빼는 모습을 보였다. 대의원을 겸직하지 않기로 선언한 것이다.


새로 구성된 비대위, 의협 집행부 참여하나?  


비상대책위원회의 의협 집행부 참여도 관건이다.

비대위는 이날 제2차 회의를 열고 위원장에 김정곤 울산시대의원회 의장을 선출했다. 부위원장에 조인성 경기도의사회장, 이관우 서울 강남구의사회장, 노만희 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장을 선임했으며, 대변인에는 정성일 연세티트리의원 원장(가정의학과의사회)을 임명했다. 간사에는 경남 양산의 이정근 원장(서창연합외과의원)을 뽑았다. 

회의에는 최재욱 의협 상근부회장이 의정협의 내용을 브리핑했으며, 지속적으로 비대위와 접촉하기로 했다. 그러나 의협 집행부는 아직 비대위에 참여하지 않고 있으며, 대의원들이 상임이사진의 비대위 활동을 설득하는 중이다. 제3차 비대위 회의는 5월 10일 열릴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노환규 전 회장은 미온적인 비대위를 비판하며 의료영리화 찬성 입장을 밝힌 장성인 대한전공의협의회장과의 전쟁마저 선포했다. 

노 전 회장은 "이번 비대위에는 장 회장처럼 의료민영화 찬성론자뿐 아니라 원격의료 찬성론자, 투쟁반대론자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이번에 만들어진 새 비대위가 대의원들이 주장하는 제대로 된 투쟁을 위한 비대위가 될지 의문"이라며 "장 회장이 그저 자신의 앞날을 염려해서라면, 아직 임기 몇 개월 남았더라도 즉각 전공의대표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성인 회장은 처음엔 비대위에 명단을 올렸으나 의협총회 하루전 전공의협의회 총회에서 원격의료를 반대하는 전공의로 비대위원을 교체한 상태다.

대의원들도 보다 강경한 투쟁을 주문하면서 '원격의료 원천적 반대'를 주장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으나, 비대위에 역할을 위임하자는 변영우 의장의 정리에 의해 '원천적'을 뺀 '원격의료 반대' 결의문을 낭독하면서 정기총회는 마무리됐다.  
 
한 대의원은 "현재의 의협 모습은 매우 한심하다. 원격진료 반대를 추진하고 적정수가를 인정받기 위해 비대위와 집행부에 힘을 실어줘도 모자른데, 쓸데없는 소모전이 이어지고 있다. 대의원회는 노환규 전 회장을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대의원은 "노 전 회장 한 사람이 야기시킨 의료계 혼란이 너무 심각하다. 의사사회를 모두 적으로 만들어 교묘하게 분열시키고, 대의원에 전공들까지 타격해 자신의 세력을 끊임없이 확인받고 싶어한다"며 "의협의 화합을 위해 대의원들이 그간 많이 참았지만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고 격분했다.  

의협의 실상을 보면 변영우 의장이 제안한 '의료계 대통합 혁신위원회'를 구상하기까지 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노 전 회장을 중심으로 가처분 신청 확답을 받을 때까지 대의원회 개혁에 목소리를 내고 사원총회에 총력을 다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집행부와 대의원회 간 갈등의 불씨는 당분간 사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정기대의원총회 종합=손종관, 임솔, 서민지, 김지섭 기자, 고민수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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