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권 잡아라"…특허 공방전 '신호탄'

신약개발에 막대한 자금과 오랜 시간이 투자되는 제약산업의 특성상 지식재산권 취득과 보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한미FTA 비준으로 인한 '허가특허연계제도' 발효가 내년 3월 15일로 다가오면서 제약사의 움직임이 분주해지고 있다.

내년 3월 15일 허가특허연계제도 발효

지금까지는 적절한 생동시험이나 임상시험 결과를 제출하면 특허침해여부에 상관없이 제네릭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허가특허연계제도가 도입되면, 특허등재목록(일명 그린리스트)에 수재된 품목을 허가받기 위해 해당 특허에 대해 소송 등의 과정을 통해 무효나 비침해를 입증해야 한다. 가장 먼저 특허를 무력화시키면 1년간 제네릭 독점권이 주어진다.

때문에 오리지널사는 제도 도입 후 특허 방어를 위해, 제네릭사는 특허 소송을 통해 퍼스트제네릭 독점권을 확보하고자 준비하고 있으며, 특히 일부 제약사는 국내 제약산업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성장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허무효소송 201건 진행

 

 

 

제약사가 특허무효소송 등을 통해 기존오리지널의 특허를 무효화시키는 것은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 보령제약은 글리벡의 고용량 제품과 관련된 조성물특허에 대해 노바티스와 대법원 특허무효소송에서 승소하고 2023년 4월까지인 특허를 무효화시켰다.

제약분야 정보제공업체 비투팜에 따르면 4월 17일 기준 그린리스트 등재 특허 중 특허 소송은 201건(소송청구 기준)이 진행됐다.

이 중 동아쏘시오홀딩스가 18건으로 가장 많은 특허소송을 진행했으며, 한미약품이 15건, 오츠카제약이 9건, CJ헬스케어와 종근당이 8건으로 뒤를 이었다.

소송 종류별로는 조성물특허가 103건(52%)으로 가장 많았고 용도특허가 66건(34%), 물질특허가 27건(14%)이었다.

허가특허연계제도가 시행되면 이 같은 특허소송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비투팜 이홍기 부사장은 "이미 소송이 급증하는 추세고 앞으로 제네릭 독점권을 위해 더 늘어날 것"이라며 "독점권을 받는 회사는 이를 발판으로 성장가도를 달리겠지만, 반대로 몇 차례 독점권의 기회를 놓치면 1년 늦게 시장에 진입하면서 고전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허팀 인력 꾸리고 소송전 채비

이를 대비해 국내 제약사들도 특허팀을 신설하는 등 인력 보강에 힘쓰고 있다. 한미약품은 상무이사를 포함해 10명으로 구성된 특허전담팀을 운영하고 있으며, 보령제약도 이사를 포함해 4명의 특허팀을 꾸렸다.

동아쏘시오홀딩스는 7명의 담당자를 뒀으며, 한올바이오파마도 3명이 특허팀을 맡고 있다.

반면 유한양행이나 녹십자처럼 큰 규모에 비해 따로 특허전담팀은 꾸리지 않는 등 아직 미흡한 곳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허가팀과 특허팀이 분리된 경우도 있어 허가특허연계제도 시행에 따라 조직적으로도 재조정이 필요할 것으로 확인됐다.

"소송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

보령제약 특허팀 김광범 이사는 "아직 제도 시행 전이지만 예전보다 많이 특허팀의 필요성에 대해 인식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 보령제약 김광범 이사

이어 허가특허연계제도 시행으로 지식재산권에 대한 제약업계의 인식이 올라가는 것은 긍정적인 부분이며, 이를 통해 글로벌 퍼스트 제네릭이 탄생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또 의약품 허가 건수가 급증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존에 공동생동성시험을 진행할 경우 주관업체만 소송을 추진한 것에 비해 이제는 개별 업체들이 모두 소송 당사자로 참여해야 하기 때문에 소송 건수 자체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같은 품목에 대해서도 개별적인 판례가 나올 수 있다. 물론 대부분 병합하겠지만 특허 전략을 어떻게 공유하고, 중소업체는 어떻게 정보를 얻어 판에 끼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머리싸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비투팜 이 부사장은 "과거에도 허가와 특허 회피를 모두 감안해 연구했지만, 이제는 적극적으로 소송을 통해 확인받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특허는 공개되면서부터 만료되기 전까지 언제든지 무효 또는 비침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타사의 소송을 적극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제약업계 특허소송을 다수 진행한 한 변리사는 "허가 3년 전부터 그린리스트 등재 특허의 존속기간이 언제까지고 무효가능성이 있는지 미리 전략을 짜야 한다. 특허권자도 특허가 부실하지 않게, 제3자가 들어올 수 없게끔 이를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아직까지 세부적인 시행령이 도출되지 않아 빠른 확정이 필요하다"며 "예를들어 특허권자가 45일 이내에 침해소송을 제기하면 판매 제한을 시키는 데 45일이 넘어가면 어떻게 되는지, 소송을 개별적으로 진행해 10곳 이상의 제네릭사가 동시에 쟁송을 하면 특허권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정부가 빨리 발표해야 우왕좌왕하는 시간이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이번 허가특허연계제도 시행으로 국내 제약사의 특허 도전이 본격화될 텐데, 제도의 기본적인 취지를 살려 진정 특허에 도전하는 업체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위 법령을 정비해 줬으면 한다"고 요청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제도 시행 약 1년을 앞두고 제약사별로 준비와 기관의 교육이 한창인데 사실 담당자나 실무자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해도 정작 중요한 것은 CEO의 마인드"라며 "국내시장뿐만 아니라 미국시장까지 검토하고 본격적으로 특허 부문을 강화시키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식약처 "국내 여건에 맞게 설계"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해 10월 TF였던 허가특허 관리과를 정규직으로 전환해 허가특허연계제도와 관련 지원 대책을 적극 수립키로 한 바 있다.

식약처 허가특허연계과 정용익 과장은 "중요한 것은 한미FTA에 의해 제도가 도입되지만 국내 산업의 여건이나 법체계에 딱 맞도록 설계하는 것"이라며 "미국 해치왁스만 법이 그대로 들어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우리는 타당성 여부를 판단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또 정책적으로는 허가특허연계제도 시행으로 다국적 제약사에도 영향이 있지만 국내 기업들이 특허에 대해 친밀해지고 도전하면 새로운 시장 영역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허가·특허 종합정보제공 서비스 '특허 인포매틱스'를 만들어 지원 중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제약산업이 다른 산업분야보다 규모가 작아 특허팀 등에 전문가 교육 프로그램이 미미한데, 제약협회, 특허청 등과 협력해 담당자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고 관련 인재가 양성되도록 돕겠다고 전했다.

아울러 CEO 간담회나 포럼 등을 통해 제약업계 수장들에게도 특허의 중요성을 전파하고, 영업도 중요하지만 지식재산권 전략을 기업 경영전략 차원에서 고민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어 식약처 내 특허전문 심판위원회 설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심판위원회는 의약품 허가특허연계가 전문분야임을 고려해 의·약학, 특허, 법률 분야 전문가로 구성해 운영한다고 3월 21일 입법예고에서 언급했지만, 국민권익위원회 등의 반대가 있어 지연되는 상황이다.

권익위는 별도 심판위원회를 조직하기보다 행정심판을 일원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니 중앙행정을 활용하며 전문성을 키우자는 입장인 것.

이에 정 과장은 "의약품 분야는 전문성과 특수성이 요구되며, 시판중지기간과 제네릭 독점 기간이 12개월이기 때문에 2~3개월 내 처리할 수 있는 신속성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행정심판의 경우 1년이 지나도 결론이 안 나는 경우도 있어 독점기간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도 있으며, 전문심판위원회가 없으면 오리지널 업체와 제네릭사 간 당사자 대립구조가 불가능해 식약처는 실제 주장을 펼 수 없는 허수가 되는 복잡한 상황도 생길 수 있다고 염려했다.

한편 식약처는 부처 협의와 제약산업의 의견을 수렴한 후 5월 20일까지 입법예고를 마무리하고 법 시행령을 결정지어 내년 3월 15일 시행에 대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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