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현장 약물 선호도 변화 반영
초기치료 효과 부진땐 병용요법 전환

양극성장애는 조증과 우울증의 양극단의 상태가 불규칙적으로 반복해서 나타나는 질병으로 대중적으로는 조울증, 조울병이라는 말이 더 익숙하다.

대개 발병 시기가 사춘기 이후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는 소아에서도 발병빈도가 증가하고 있으며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도 조증의 전조증상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전 세계 성인의 2~3%가 양극성장애를 동반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그 수가 급증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07~2011년) 양극성장애로 인한 건강보험 진료환자가 2007년 4만 6000명에서 2011년 5만 8000명으로 46% 증가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임상에서는 양극성장애에 대한 표준 진단기준이 없고 진료의 근거자료마저 취약해 전문의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해외 가이드라인도 있지만 실제 한국 임상에 적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대한정신약물학회 및 대한우울·조울병학회가 지난 2002년 한국형 양극성장애 알고리듬을 처음으로 발표한데 이어 지난 3월 세 번째 업데이트를 발표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48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통해 환자의 증상 개선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궁극적 치료전략에 대한 의견을 종합적으로 담아냈다. 즉 근거중심보다는 현장의 전문가 목소리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가톨릭의대 박원명 교수와 국립나주병원 윤보현 진료부장이 공동위원장을 맡아 이뤄진 이번 한국형 양극성장애 약물치료 알고리듬 업데이트 'KMAP-BP 2014'의 구체적인 내용과 변화를 살펴봤다.

급성조증 치료 올란자핀 뜨고 카르바마제핀 주춤

조증·경조증의 치료 방법은 유쾌성 조증, 혼재성 및 불쾌성 조증, 정신병적 조증, 경조증으로 나눠서 선택하도록 명시했다.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들은 유쾌성 조증과 혼재성·불쾌성 조증, 정신병적 조증인 경우 기분조절제(MS)와 비정형 항정신약물(AAP) 병용을 가장 먼저 선택했다. 단 유쾌성 조증에서는 병용 또는 MS 단독요법을, 정신병적 조증에서는 AAP 단독요법을 1차치료에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표 1>.

초기 치료의 반응이 불충분할 때는 단독보다는 병용을 선택하는 전문의가 대다수였고, 치료의 저항성 측면에서는 전기충격요법(ECT) 사용이 점진적으로 감소했다.

 
지난 2010년과 비교했을 때 약물의 선호도 면에서도 약간의 변화가 감지됐다. 급성 조증의 초기 치료전략에서 정형 항정신병 약물의 선호도는 크게 저하됐고, AAP의 선호도가 높게 유지되고 있었다.

세부적으로는 올란자핀, 쿠에티아핀, 리스페리돈의 처방이 많고 최근 아리피프라졸의 선호도 증가가 두드러졌다. 반면 카르바마제핀 사용이 지속적으로 감소했고, 리튬은 선호도 면에서 유의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가톨릭의대 여의도성모병원 우영섭 교수는 "리튬의 선호도가 발프로에이트보다 떨어졌다"면서 "약물이 전형적인 유쾌성 조증에는 효과가 있지만 혼재성 조증에는 별다른 효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항우울제 부작용 주의해야

양극성 우울증은 조증과 달리 치료전략이 매우 다양하다. 우울삽화의 초기 치료전략에서 경도·중등도 우울 환자에서는 라모트리진(LMT)과 AAP를, 정신병적 양상을 동반하지 않는 중증 우울증 급성기에서는 AAP와 LMT 선택이 가장 많았다.

급성 우울삽화의 초기 전략은 복잡해지고 처방되는 약물의 양은 증가했다. 양극성 우울증은 치료가 매우 어려운 질환으로 한 가지 약물을 단독으로 쓰기보다는 병용치료를 선택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이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건국의대 충주병원 서정석 교수는 "LMT가 새로이 출시되고 비정형 항정신약물(AAP) 등 약의 종류가 다양해졌다. 또 진단명 자체도 광범위해지고 환자의 증상도 빠르게 변화한다는 점을 감안해서 처방하다 보니 약물의 종류가 그만큼 늘었다"고 답했다.

또한 MS가 2010년과 비교했을 때 거의 동일한 선호도를 보였고, AAP 사용이 주를 이루는 경향이 많았다. 구체적으로는 쿠에티아핀과 올란자핀이 가장 높은 선호도를 보였다. 리스페리돈은 선호도가 감소했고, 아리피프라졸 사용의 증가는 특징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2차 선택에서는 단독 약물에 반응이 불충분하면 다른 약물을 추가한 병합요법을 선호했다. 더불어 환자가 이미 두 약물을 병용한 경우는 전략을 두 가지로 분류했다.

전문의들은 부분반응이 있을 경우에는 새로운 약물을 추가했고, 세 가지 약물에서 무반응이 나왔을 때는 기존의 약물 교체 또는 추가하는 방법을 택했다. 마지막으로 AD는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재흡수 차단제(SNRI) 계열, 부프로피온, 미르타자핀이 주로 사용됐고,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 중에서 추가와 교체가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 삽화의 항우울제(AD) 사용기간도 함께 조사했는데 반응이 없는 경우 'AD를 얼마나 유지해야 되는가?'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전문의가 3~6주 정도 기다리다가 다음 전략을 고려한다고 답했다.

그럼 전문가들에서 항우울제(AD) 선택을 두고 어떤 변화를 보였을까?

서 교수는 "양극성 우울증 환자에서 AD를 사용했을 때 부작용은 무시하지 못한다"면서 "지난 2010년부터 항우울제를 대체할만한 약물로 올란자핀, 쿠에티아핀 등이 언급됐었고, 이번 알고리듬에서 AAP 선호도가 증가하는 등의 변화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소아청소년·노인 환자 치료 전략 추가
특수한 상황에 맞는 약물 선택 권고안도 마련

이번 알고리듬에는 이전에는 다루지 않았던 소아·청소년 양극성장애에 대해서도 조사했다.

알고리듬에 따르면 전문의들이 소아 조증 삽화의 1차 치료전략으로 MS+AAP 병용요법이나 AAP 단독을 가장 많이 사용했고 주요 약물에는 발프로에이트, 아리피프라졸, 리스페리돈, 쿠에티아핀의 선호도가 높았다. 우울 소아환자의 경우 MS+AAP 병용요법으로 아리피프라졸과 쿠에티아핀이 상위 2차전략에서도 처방됐다. 청소년의 경우 소아의 치료전략과 유사했지만 조증치료에서 AAP 단독요법은 제외됐다.

순천향의대 정신건강의학과 심세훈 교수는 "소아·청소년 조증에 있어서 AAP가 MS에 비해 높은 효용도를 보였다. 하지만 양극성장애 우울증 소아의 약물치료에 대해서는 캐나다 가이드라인에서도 언급이 없을 정도로 연구가 부족해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지난해 발표된 CANMAT(Canadian Network for Mood and Anxiety Treatments) 가이드라인은 치료전략보다는 약물의 효능에 중점을 뒀다. 소아·청소년 양극성장애 조증·혼재성 삽화 치료약물로 디발프록스에 한 표를 던졌다. 리스페리돈, 리튬, 디발프록스 순으로 조증·혼재성에 빠른 호전과 더 나은 관해율을 보였지만, 리스페리돈에서 체중, BMI, 혈중 프로락틴 수치가 유의하게 증가했다고 명시됐다.

양극성장애 환자의 특수 상황에 맞춘 약물치료도 추가됐다.

먼저 항정신약물로 인해 3개월 이상 고프로락틴혈증이 지속되면 프로락틴 증가를 적게 일으키는 약물로 변경했다.

LMT에 의한 양성 피부발진이 발생했을 때는 걈량 후 관찰하고, 약물 순응도가 좋지 않은 과거력의 환자는 하루 한번 복용으로 처방을 조정하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환자와 양극성장애의 유전 가능성에 대한 상담 시 확률적 가능성은 있지만 예측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고 제시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더불어 노인 환자의 치료전략도 포함됐다. 여기에는 조증삽화의 경우 AAP(아리피프라졸, 쿠에티아핀, 올란자핀) 또는 MS(발프로에이트, 리튬) 단독치료를 1차 치료전략으로 선택했다.

우울삽화를 보이는 환자에서는 MS(발프로에이트)+AAP(아리피프라졸, 쿠엘티아민, 올란자핀) 병합치료 또는 AAP 단독치료, AAP와 라모트리진 병합을 1차 전략으로 권하고 있으며, 만약 노인환자에서 치매가 동반된 경우에는 아리피프라졸이나 쿠엘티아핀을 1차 약물로 처방했다. 

이 밖에 특수한 상황에서의 치료전략(1차선택 약물)에는 △현저한 정신지체를 보이는 경우: 아리피프라졸 △현저한 초조증상과 수면장애: 쿠에티아핀, 올란자핀, 발프로에이트 △공격성과 폭력성: 올란자핀, 쿠에티아핀, 발프로에이트, 리스페리돈, 리튬 △인지기능 저하: 아리피프라졸 △공황장애, 강박장애, 알코올 사용장애와 뇌졸중 혹은 두부손상이 동방된 경우: 발프로에이트 △식사장애나 당뇨병, 심장·신장 질환을 동반한 경우: 아리피프라졸 △간질환 동반: 리튬, 아리피프라졸 △단 임신시도, 향후 임신을 원하거나 임신 1기에 사용하는 있은 1차 선택 약물은 없었으며, 임신 2기에 아리피프라졸, 쿠엘티아핀, 올란자핀, 리스페리돈, 지프라시돈, 클로자핀을 2차약물로 선택

[인터뷰]"임상현장 실태조사 통해 마련한 가이드라인"
절대적 기준으로 삼기보다 환자 특성따라 판단해야

 
우영섭 가톨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지난 2002년 대한정신약물학회는 한국형 양극성장애 약물치료 알고리듬을 처음으로 발표했다. 4년마다 개정판을 새로이 발간하기로 해 2010년 두 번째 개정이 된 후 올해 세 번째 업데이트다. 이번 개정안 실무위원회의 위원으로서 조증·경조증 약물치료 알고리듬 개정의 전반적인 조율을 맡은 가톨릭의대 여의도성모병원 우영섭 교수에게 새 알고리듬이 나오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물었다.

- 이번 알고리듬 개정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지난 2013년 초에 한국형 양극성장애 약물치료 알고리듬 2014 개정 프로젝트 실무위원회를 구성했다. 가톨릭의대 여의도성모병원 박원명 교수와 국립나주병원 윤보현 진료부장 교수를 위원장으로 몇 차례의 회의를 거쳐 설문지를 완성했다.

전문학회 정회원으로서 학회 및 학술적 활동이 많고 양극성장애에 대한 임상적 경험이 풍부한 148명의 전문의를 대상으로 했다. 대학병원에 근무 중인 전문의와 종합병원 및 정신과 전문병원에 근무하는 전문의와 개원의를 선정해 다양한 임상경험을 포함할 수 있도록 했다. 회수율은 58.2%였다.

하지만 설문지 제작에 앞서 가능한 많은 치료적 선택을 넣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렇게 하면 문항수가 급격히 늘어나게 된다. 이럴 경우 참여율이 떨이지고 그만큼 알고리듬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설문지 문항의 내용 등에 대한 균형을 맞추는 데 어려운 점이 있었다.

- 한국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해외학회 가이드라인과 차이점이 있다면?

가장 큰 차이점을 꼽는다면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실무위원회가 충분한 논의를 거쳐 알고리듬을 구성했다는 점이다. 순수 국내 데이터를 이용하고 싶지만 아직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다. 해외 가이드라인은 근거 중심이 대부분이다.

다양한 논문을 면밀히 분석하고 이후 검토과정을 거쳐 발표된다. 무작위대조연구(RCT)를 바탕으로 해 신뢰도가 높지만 외국 데이터를 사용해 국내 임상에서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또 환자군을 선별하는 기준 역시 다른 경우가 많아 이를 임상에 일반화시키는 데도 어려움이 있다.


마지막으로 어디에 중점을 두는가에 따라서 다르긴 하지만 이번 알고리듬이 근거중심 가이드라인과 전문가의 의견에서의 갭을 메꾸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 지난 알고리듬에서 가장 크게 변화하거나 새롭게 추가된 내용은?

약물 선호도에서 약간의 변화가 있는데 특히 올란자핀의 선호도 증가가 두드러진 변화라고 평가된다. 혼재성·불쾌성 조증과 정신병적 조증에서 올라자핀이 1차약물에서 최우선 치료로 상승한 점이 눈여겨볼 만하다. 쿠에티아핀과 리스페리돈도 1차 약물이긴 하지만 전문의의 절반 이상이 올란자핀을 선택했다.

요즘 국내외적으로 혼재성·불쾌성 조증에 대한 관심이 크다. 혼재성 조증 환자에서 기능상의 손실이 더 많이 나타나 이에 따른 심각성이 부각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치료약물로 리튬에 비해 발프로에이트가 조금 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조사돼 전문의들 사이에서도 선호도가 더 높았다.

또 소아·청소년 양극성 장애 알고리듬이 새롭게 추가됐다. 양극성 장애는 만성적으로 진행하는 질환으로 조기에 발병하면 예후도 나쁘다는 보고가 많은 연구를 통해 발표됐지만 외국에서도 근거뿐만 아니라 가이드라인도 없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번에 새로 개정된 가이드라인은 전문가의 의견을 통해 작성된 한국형 소아·청소년 양극성장애 약물치료 알고리듬으로 의미가 크다.

- 이번 개정이 임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번 알고리듬이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기 때문에 아주 적극적인 영향을 미치기보다는 일종의 참고사항으로 쓰이기를 바란다. 설문지에 가능한 다양한 임상 상황에 대한 질문을 담아내려 노력했다. 그럼에도 아주 전형적인 상황들을 토대로 했기 때문에 알고리듬을 환자에게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모든 환자에게 사용하기에는 환자 개개인의 특징이 다르기 때문에 적용에 앞서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단 아주 전형적인 케이스라면 선호도를 최우선 순위로 넣어서 약물 치료전략을 짜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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