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대병원 조홍래 원장

보이지 않는 곳에 더 먼저 투자하는 병원

“수술실, 중환자실, 응급실, 임상검사실에 먼저 투자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이지만 정말 중요한 곳에 가장 먼저, 가장 많이 투자했지요. 천장을 뜯어보거나 수술실에 직접 들어가보지 않는 이상 일반인들은 잘 모릅니다. 그럼에도 건물만 보고 병원을 판단하는 환자, 보호자들이 아쉽습니다. 울산대병원의 경영 철학은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거든요.”

 

울산대병원 조홍래 원장(외과, 사진)은 겉치레에 연연하고 있는 병원들의 세태를 아쉬워하면서 보이지 않는 곳에 더 많이 투자한 병원을 자신있게 소개했다.

과거 전임 원장들을 어깨너머로 보더라도 병원에서 의료진 간 신경전을 벌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모든 진료과에서 서로 장비를 사줘야 한다거나 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 영역마다 소중하지 않은 곳이 없다는 판단이다. 한정된 예산이 있기 때문에 우선순위를 정하기도 애매하다. 순서가 있더라도 지키는 일조차 만만치 않다. 조 원장이 선택한 것은 꼭 필요하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투자다. 

그는 “시설 설비를 담당하는 이들이 옥상의 공조시스템을 보고 놀라고 돌아갈 정도다. 남들이 볼 때는 보이지 않는 곳에 허튼 돈을 쓴다고 볼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 대한 투자가 진짜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마찬가지로 진료수익에 따른 성과 평가도 하지 않는다. 의료진 개개인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적정진료를 하기 위해서다. 수술을 몇 건 하고 환자를 얼마나 보는지를 성과측정 잣대로 정하지 않는다. 대신 환자가 많은 진료과는 일을 덜어줄 수 있도록 인원을 늘려준다.

조 원장은 “매년 적자보는 진료과가 있기 마련이다. 진료수익대로라면 해당 진료과 의사들은 아무런 인센티브를 가져갈 수 없게 된다"며 "그들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의료수가 체제가 잘못됐을 뿐인데, 잘못된 시스템에서 의사, 환자가 희생될 수는 없다. 적자는 적자대로 놔두고 업무 효율을 도모해야 적정진료가 가능해진다”고 부연했다.


하루에 수술 10케이스, 과연 정상인가?

어느 날은 이런 일도 있었다. 신경과 외래 환자수가 줄어들었지만, 갑자기 수익이 늘어나 있었다. MRI, CT 건수가 급증했던 탓이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조 원장은 혹여나 진료과정에서 과잉진단을 부추긴 것이 아닐지 크게 우려했다. 알고 보니 직원 하나를 더 뽑아 업무의 효율이 늘어난 것이 원인이었다. 덕분에 일은 열심히 하되, 업무가 많은 진료과에 인원을 늘려주는 계기가 됐다.

환자가 병원을 찾으면 검진부터 하고 보는 젊은 세대의 의사들도 질타했다. 촉진부터 하던 맹장염 진단도 이젠 무조건적인 검진에 의존한다. 외과의사로서 최근의 수련교육에 아쉬움이 따르는 대목이다.

검사에 의존하다 보니 전공의들도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다. 검사가 늘어나면 환자에게도 부담을 가중시키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CP(Clinical Pathway)에서 벗어나 있거나 삭감대상이 되면 검사를 쉽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조 원장은 “병원은 환자들에게 교과서 안에 있는 지식만 전달하는 곳이 아니다. 병동에서 이뤄지는 실제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며 “맹장환자가 오면 거의 전공의들이 CT, 초음파부터 하고 기초 검사를 잘 하지 않는다. 여러 번 고치도록 지시한 결과 이제는 촉진부터 실시한 다음 진단을 통해 확진한다”고 자신했다. 

울산대병원은 펠로우를 두지 않는 대신 과잉수술을 삼간다. 외과의사 1명이 전담하는 위암 수술도 1년에 200~250건 정도만 시행한다. 외과의사는 보통 일주일에 2일 정도 수술하며, 많이 하면 일주일에 5케이스로 한정한다.

일부 대형병원 교수가 하루 10개에 달하는 수술을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펠로우 등이 다 준비하고 교수 스스로 처음부터 끝까지 관여한 수술이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병원 외과의사들로부터 수술 실적에 따른 인센티브를 공정하게 나눌 수 없다는 불만도 많이 나오는 이유가 된다. 

그만큼 과잉진단, 과잉진료, 과잉수술에는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병원 재단의 취지이기도 하다.

또 다른 병원의 자랑을 꼽자면 직원들의 복지가 좋다고 소문나 있어 취업 경쟁이 치열하다. 뽑기 어렵다던 지방의 간호사 경쟁률이 15대 1, 20대 1에 달한다. 평균 근속년수도 8.6년으로, 경영압박이 되는 측면도 있지만 전문성을 쌓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간호사 기숙사를 제공해 10년 동안 무료로 운영하는 것도 한몫했다. 병원 내 어린이집도 병원계 처음으로 운영했다. 간호사들이 중공업 직원들과 결혼해 자리를 잡다 보니, 다행히 안정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다음 단계 도약은 상급종합병원 지정 신청

현재 울산대병원이 가장 크게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은 상급종합병원으로의 도약이다. 

아직 울산에는 상급종합병원이 없다. 인구 100만명이 넘는 광역시지만 상급종합병원 부재로 울산광역시의 독자적인 보건의료정책사업 참여가 어렵다. 또한 병상총량제가 시행되면, 울산지역과 달리 부울경지역 전체 상급종합병원 병상수가 타지역보다 높아 이번이 최대 기회라 보고 있다.

특히, 영남권에는 기존 병원 외에 양산부산대병원, 해운대백병원, 삼성창원병원 등이 동시에 신청할 예정이어서 치열한 경쟁을 할 것으로 예고됐다. 대신 울산대병원의 경쟁력도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중증환자 비율이 현재 상급종병과 맞먹는 27% 수준이며, 의료진도 전문의 170명, 전공의 145명, 835병상 등의 규모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조 원장은 “지역사회의 숙원사업인 실질적 지역거점병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울산대병원을 중심으로 울산권역 의료전달체계가 확립되면, 중증환자 역외 유출을 예방할 수 있다”며 “초기 외래환자가 감소해 병원경영의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종별가산율에 따른 수가인상(5%)으로 장기적으로 점차 회복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상급종병을 준비하면서 새 병원을 짓고 시설 보수도 하고 많은 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지역사회에서 1,2차 병원과 협업하는 것이 관건이지만, 지역의사회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특별히 적을 두지 않는 것도 강점”이라고 소개했다. 
 

눈앞의 수익말고 올바른 의료에 관심가질 때

조 원장은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정성으로 진료하고 수술하는 것이 곧 병원 경쟁력이라고 자신했다. 빅5병원에도 밀리지 않으려면 바로 묵묵히 지금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뚝심이라는 것이다.  

조 원장은 “명성 있는 스타교수에게 수술을 대거 밀어주는 것이 요즘 말하는 비정상의 정상화인지 의문이다. 의사가 수술할 때 인센티브를 의식한다면 자칫 환자를 위한 판단은 등한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3대 비급여가 폐지되면 서울이나 지방이나 모두 의료비가 저렴해지면서 의료왜곡이 심해질 것으로 우려했다. 선택진료비가 생긴 원인이나 순기능에 대한 고민없이 무조건 폐지를 단행하면, 정부 스스로 많은 혼란을 초래한다는 것.  

그는 “외래에서 재진환자 비중이 90%에 달한다. 1,2차로 보내야 하는 환자들이 있는데, 지금 같은 시스템에서는 다른 병의원에 가라고 해도 안 간다. 외래환자가 줄어든다는 고민도 있지만, 대학병원이라면 상급종병으로 가는 것이 맞고, 문턱을 더 높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대신 모든 것이 똑같은 시스템이면서 그저 가격만 올리면 환자 컴플레인이 늘어날 수 있다. 지금부터 환자를 위한 전략도 구상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대신 수익에 의존하는 판단은 버리기로 했다.  

그는 “울산대병원은 동료애를 강조한다.  나 혼자만이 아니라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먹고사는 문제도 관심을 둔다. 약속을 어기고 일을 안 한다면 지적하지만, 돈을 못번다고 질책하지 않는다"며 "열심히 했는데도 수익이 나지 않는다면 의사 탓이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닌, 올바른 의료를 위해 병원 수장들이 나서야 할 때”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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