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이관 10개월 … 변화추이 비교도 못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동차보험 심사업무 위탁에 빨간불이 켜졌다.

손명세 심평원장이 취임식에서 "합리적이고 근거중심적인 심사를 통해 의사들과의 관계회복에 주력하겠다"는 약속이 자보심사에서만큼은 이뤄지지 않고 있는 모양새다.

수개월전 개원의들이 자보센터로 보낸 종합민원에 대해 현재까지 답변조차 없으며, 손해보험사들로부터 자료를 받지 못해 위탁심사 후 변화 추이는 비교도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해당부서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노력보다는 오히려 자화자찬식 발언이나 추측성 대답만 늘어놓은 것이다.

 

최근 대한정형외과개원의사회 김용훈 회장은 "지난해 추계학술대회에서 회원들의 자보에 대한 불만을 모아 일괄적으로 이의제기를 했다"며 "그러나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 장의 답변서는 물론 이와 관련한 말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고 성토했다.

지난해 12월초 개최된 추계학술대회에서 주제강의에 나선 심평원 자보센터 담당 차장은 "자보 심사가 보다 강화되면서 정형외과를 비롯한 관련 개원가에서 불만이 많은 점을 잘 알고 있다"며 "동시다발적으로 민원을 제기하기보다는 협회 차원에서 이를 하나로 모아 중복된 민원을 제거 후 심평원으로 보내면 바로 답변을 줄 것"이라고 약속한 바 있다.

이같은 심평원 요청에 따라 김 회장은 학회장에서 즉각 자보에 관한 설문조사지를 돌려 의견을 수렴했고, 이를 정리해 심평원에 제출했다. 하지만 여전히 심평원은 묵묵부답, 개원의들의 불만이 더 높아졌다.

의사들의 민원에만 무반응인 것은 아니었다. '삭감'에 대한 기록도 모두 남기지 않았다.

의도적인지, 아니면 귀찮아서인지 정확한 배경은 말하지 않았으나, 심평원에서는 '그냥'하지 않고 있다는 황당무계한 답변을 내놨다.

자보센터 황용상 부장은 "진료비나 환자수, 청구건수 등은 통계화하고 있으나, 건강보험과 달리 '삭감'에 대한 비율, 횟수 등은 전혀 관리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이유를 묻자, "그냥 하지 않고 있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라며 "보험사에서 시킨 업무가 아닌데 우리가 삭감관리를 왜 해야 하느냐"며 되려 반문했다.

▲ 심평원 자보센터의 진료비 청구 및 지급 방식.


심평원 자보센터는 답변도, 삭감기록도 없을 뿐 아니라, 근거자료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심사 위탁이 시작된 7월을 기점으로 전·후를 비교하기 위해, 본지는 자보센터로부터 지난해 1~6월/7~12월 자동차보험 진료비 청구건수·진료비·환자수 자료를 요청했으나, 센터에서는 7~12월 청구건수·진료비 자료만 제출했다.

황용상 부장은 "손해보험사에서 자료를 주지 않아 없다"며 "굳이 주지 않는 자료를 센터에서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냐"고 되물었다.


또 "수년치는 물론, 앞으로도 단 6개월치 자료도 요청할 계획이 없다"고 못박았다. 즉 우리나라에서 환자가 얼마나 진료를 받고 이동하고 비용을 쓰는지, 또 무슨 상병으로 방문을 했는지 조사, 확보하는 기관에서 '이것들을 왜 해야 하느냐'고 반문한 것이다.

황 부장은 "현재 손해보험사들이 센터 업무에 별다른 지적을 하지 않고 있다"며 "손보사들이 심사, 삭감을 할 때보다 우리가 심사, 삭감을 할 때 더 유리하다보니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며 흐뭇해했다.

이는 심평원으로 업무이관후 보험사에 더 이익이 되고 병의원들의 수익은 날로 악화되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불성실한 자보센터 일처리에, 진료비 급감까지...개원가는 '울상'


심평원에서 제공한 자보 심사위탁 후(7~12월)의 자동차보험진료수가 월별 심사결정 현황(정형외과 의원)자료를 보면 지난해 하반기 총 외래 심사결정건수는 110만1687건, 심사결정금액은 212억37만7290원이었고, 총 입원 심사결정건수는 10만8179건, 결정금액은 460억3905만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비용이 이전에 비해 늘었는지 줄었는지 명확하지 않다. 개원의협의회 관계자는 "자동차사고 환자들을 주로 보는 정형외과 개원의들 대부분이 지난해 삭감으로 인한 어려움이 컸다"면서 "심평원이 이전 자료를 받았거나 받을 수 있을텐데 그렇지 못한 것은 문제가 있고 이것은 오히려 손해보험사에 절절 매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같은 전반의 상황을 지켜본 의료계 고위관계자는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 관계자는 "심평원이 수동적인 업무를 한다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고, 이것에 대해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며 "하지만 자신들이 꼭 해야 하는 업무마저 책임회피를 하는 것은 분명한 잘못"이라고 꼬집었다.

▲ 정형외과에서 진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의 모습. 위 사진은 본 기사 내용과 무관함.

그러면서 "적어도 삭감에 대한 자료나 센터에 업무를 이관하기 전 손보사에서 어떤 업무를 해왔는지 최소한의 근거는 있어야 한다"며 "공공기관에서, 또 심평원에서 해야 할 일은 잊은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아무리 손보사에서 돈을 받고 일하고 있더라도 결국 자보센터 사람들은 손보사 직원이기 전에 심평원 직원이다. 국감을 떠나 감사원 감사라도 받아야 할 정도의 업무 회피로 볼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보 심사가 위탁된지 10개월째. 심평원은 손해보험사들로 부터 '성과가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있지만, 심평원의 고객인 '의사'에게는 여전히 불친절, 불확실, 침묵, 외면으로 일관하는 대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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