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병 환자 4명 중 3명 정상체중 초과

'뚱뚱한 사람이 성격도 좋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됐다.

비만이 고혈압, 고지혈증, 관상동맥질환, 당뇨병을 비롯 각종 암과 관절질환을 유발한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고, 정신건강에도 해롭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은  지 오래다. 그런데 최근에는 역으로 정신건강질환자에서 동반되는 대사증후군과 비만에 정신의학계의 학문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신건강질환자의 비만 치료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아직까지 기분장애와 비만의 선행관계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고, 어떤 치료가 우선돼야 할지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없다. 다만 기분장애 환자에서 비만 동반율이 증가하고 있고, 두 질환 모두 환자 개인뿐 아니라 사회 경제적 차원에서 관리가 필요한 질환임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논란을 의식한 듯 지난 3월 14일 개최된 2014년도 대한우울·조울병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도 '기분장애와 체중조절' 세션이 별도로 마련됐다. 여기서는 조울병(bipolar disorder) 환자에서 과체중 또는 비만이 인지기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언급됐다(Eur Psychiatry 2012;27:223-8).

또 18일부터 열린 국제조울병학회(ISBD 2014)에서도 '기분장애 환자에서의 체중관리 전략'이 소개된 바 있다.

 

■ 기분장애·비만 동반이환율 증가

정신건강질환, 특히 기분장애 환자에서 비만 유병률이 증가하고 있다. 각 질환의 유병률 증가에 따른 현상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학계에서는 두 질환이 동반될 경우의 위험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2008년 Fiedrowicz 등의 보고에 따르면 외래에 내원하는 조울병 환자의 평균 체질량지수(BMI)는 30.8㎏/㎡로 비만이었다. 환자분포를 살펴보면 27%가 과체중, 48%가 비만에 해당됐다. 이는 조울병 환자의 4분의 3이 정상 체중을 초과함을 의미한다. 2012년 Goldstein 등이 발표한 연구에서도 비만 유병률은 조울병 환자에서 1.65배(95% CI: 1.45-1.89), 주요우울장애 환자에서 1.58배(95% CI: 1.46-1.71) 높았다.

게다가 비만 환자에서 정신건강질환 발생 위험이 높다는 연구도 있다. 미국에서 성인 4만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고도비만인 사람은 정상 체중인에 비해 기분장애, 인격장애, 범불안장애, 공황장애 등의 발병 위험이 2배 높았고, 특히 이들 중 56%가 기분장애 발생 위험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우울증 환자, 비만 발생 위험 2배
대사증후군은 4.8배나 높아

이러한 현상은 국내 환자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말 Psychosomatics 온라인판(2013년 12월 23일자)에는 우울증 환자의 비만 또는 대사증후군 발생률에 관해 국내 연구진이 진행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우울증으로 새롭게 진단받은 노인 환자를 대상으로 대사증후군 발생 및 C-반응성단백질(CRP) 수치 변화를 평가한 이 연구에서는 두 군간 사회인구학적 특성이나 생활습관에 유의한 차이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울증 환자에서 건강한 대조군에 비해 비만 발생 위험(OR)이 1.97배(95% CI, 0.70-5.54), 대사증후군 발생 위험이 4.75배(95% CI, 1.58-14.25) 높았다.

또한 CRP 수치 상승은 우울증 발생 위험 증가와 유의한 연관성을 나타냈다(OR=4.57, 95% CI, 1.45-14.39).

 

■ 왜 증가하나…이론·현실 사이 괴리

기분장애 환자에서 높은 비만 유병률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지만 원론으로 돌아가면 체중증가가 유발되는 원인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다.

상식적으로 기분장애 환자는 삶의 의욕이 없고 입맛이 없어 살이 빠진다고 생각하기 쉽고, 임상적 진단기준을 살펴봐도 체중감소가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정신질환진단통계편람 5판(DSM-5)에 따르면 주요우울장애의 임상적 증상은 유의한 체중감소, 식욕감소로 제시돼 있고, 조울병 환자에서도 조증 증상은 △수면요구가 감소하고 △수다스러워지며 △활동이 증가하거나 △주의가 산만해지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Hamilton이나 Beck이 제시한 우울평가척도(HAM-D & BDI)에서도 우울증의 전형적인 증상은 식욕 및 체중감소로 분류된다. 일부에서는 우울증 환자에서 과식이 동반될 경우 비정형(atypical) 우울증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비만한 조울병 환자들을 분석해보면 고령이거나(adjusted OR=1.01, 95% CI: 1.00-1.02), 우울증 에피소드 지속기간이 증가할수록(adjusted OR=1.02, 95% CI: 1.00-1.05) 비만 유병률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불안장애가 동반되거나(adjusted OR=1.41, 95% CI: 1.03-1.94) 우울증으로 입원병력이 있는 환자(adjusted OR=1.46, 95% CI: 1.01-2.10)에서 많았다(Goldstein et al. 2012).

약물 부작용·신체활동 저하·심리적 요인

약물치료보다 생활습관 개선 요법 먼저

최근 개최된 대한우울·조울병학회 춘계학술대회 연수교육에서 '기분장애와 체중변화' 강연을 맡은 남원성일병원 홍정완 대표원장은 기분장애 환자에서 체중이 증가하는 원인에 대해 "약물치료로 인한 부작용을 첫 번째로 들 수 있고, 우울 증상에 따른 신체활동 저하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음식섭취를 통해 안정감 또는 쾌락을 추구하려는 심리적 요인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최근에는 기분장애 환자에서 발생하는 병태생리학적 변화가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했다.

홍 원장은 "우울증 환자의 신경내분비 변화에 관한 최신 연구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가 심리적 안정을 얻기 위해 과식을 할 경우 지방축적 및 체중증가로 이어지게 되고, 이는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축(HPA axis)의 조절장애로 이어져 우울증이 심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강조했다. 

조울병 환자에서 대사증후군 발생이 빈번한 이유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울증 환자에서 관찰됐던 HPA axis 조절장애와 코르티솔 조절이상, 교감신경계 활성의 증가, 염증성 사이토카인, 산화스트레스 등은 조울병과 대사증후군의 공통된 병태생리적 요인이다. 
 

■ 기분장애 환자의 비만 치료 전략

울산의대 김병수 교수(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는 대한우울·조울병학회 춘계학술대회 연수교육에서 "정신건강질환자라고 해서 비만 치료법이 달라질 것은 없다"고 말했다.

비만한 기분장애 환자에서 생활습관 중재요법의 기본적인 원칙은 일반인과 동일하다. 우선적으로 운동량을 증가시키는 것과 더불어 행동수정요법이 필요하다. 식이요법은 5~7% 체중감량을 목표로 평소에 섭취하던 열량보다 500~1000kcal 정도를 덜 섭취하고, 중등도 강도의 운동을 하루 30분씩 일주일에 3~5일 이상 꾸준히 시행하도록 권장하고있다.

다만 환자의 동기수준을 고려해 지속적으로 동기부여를 제공하고 환자의 증상에 대한 자세한 사전평가가 선행돼야 한다(Am Fam Physician 1995;52:543-50).

운동량 늘리고 열량 섭취 줄여야…일반인보다 초기반응은 느려

기분장애 환자의 경우 잔여증상이나 환경적 요인, 사회적 낙인(stigma)으로 인해 일반인보다 치료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일반인들은 체중조절을 위한 프로그램에서 체중감량 효과가 초기 6개월에 정점(peak)에 도달하지만, 정신건강질환자의 경우 초기 반응이 느리다는 연구 결과도 제시된 바 있다.

운동은 체중감량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매우 중요한데, 운동을 하더라도 체중조절 효과는 미약할 수 있으므로 비현실적인 기대를 갖지 않도록 해야 지속할 수 있다. 즉 체중감량 자체보다 활동증가에 목표를 두는 것인데, 최근에는 운동의 항우울효과에 대해서도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치료저항성 주요우울장애 환자를 대상으로 약물요법과 중등도 강도의 유산소운동을 병행한 연구에서는 12주 후 주요우울장애 환자의 우울 증상과 기능 파라미터가 개선됐고, 전체 환자의 26%에서 증상이 완화된 것으로 확인됐다(J Psychiatr Res 2011;45:1005-11). 

이에 앞서 미국에서는 심폐능력과 우울 증상에 대한 전향적 연구가 진행됐는데 심폐활량이 좋을수록 우울증 발생 위험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J Psychiatr Res 2009;43:546-52). 이는 운동요법이 단순히 비만 치료뿐 아니라 기분장애의 예방적 측면에서도 효과적임을 입증한 좋은 예다.

약물치료보다 생활습관 개선 요법 먼저

미국국립보건원(NIH)에서 제시한 가이드라인에서는 과체중(BMI≥25㎏/㎡) 환자에서 식이요법, 운동, 행동치료가 선행돼야 하고 비만(BMI≥30㎏/㎡)부터 약물요법을 고려하되 BMI 27~30㎏/㎡에 해당하더라도 동반질환이 있을 경우 약물요법을 시작할 것을 권고했다. 초고도비만(BMI≥40㎏/㎡) 또는 고도비만(BMI≥35㎏/㎡)에 해당하면서 동반질환이 있는 경우 외과적 수술을 고려할 수 있다.

단, 미국심장·폐·혈액연구원(NHLBI)에서는 비만 치료제의 금기대상으로 임신부 또는 수유부, 불안정형 심장질환, 조절되지 않는 고혈압(SBP>180,DBP>110mmHg) 또는 거식증의 과거력이 있는 환자 등을 꼽았고, MAO 억제제, 아드레날린성 약물 등과의 병용을 금지했다.

국내의 경우 대한내분비학회의 비만 치료 가이드라인을 따르고 있는데, 가이드라인에서는 약물요법의 적응증으로 비만(BMI>25㎏/㎡, 국내 기준)에 해당하거나 체중감소를 통해 한 가지 혹은 그 이상의 합병증이나 상태가 호전될 것으로 기대되는 경우, 식이요법과 운동요법 등의 고식적인 방법을 사용한 치료에 실패 경험이 있는 경우로 제시했고, 구체적으로는 6개월 동안 체중감소율이 10% 미만이거나 0.5㎏/주 미만의 체중감소를 보이는 경우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약물치료를 시작하기 전 2~4주간 식사요법과 운동요법 등의 시도로 초기 변화를 유도하는 것과 주기적인 추적 관찰에 동의하는 것을 전제로 했고, 가임기 여성일 경우 임신반응검사 등을 통해 임신이 아닌 것이 확인돼야 한다고 정했다.   
 

■ 손인기 대한우울·조울병학회 교육이사

"비만치료제 사용은 최후의 선택"

우울감·조증 같은 부작용 나타날 수 있어

조울병 환자 비만 동반땐 자살과도 연관성

▲ 손인기 대한우울·조울병학회 교육이사
손인기 대한우울·조울병학회 교육이사(계요병원)는 "약물요법은 기분장애 환자의 비만 치료에서 현실적 선호도가 높고 빼놓을 수 없는 치료법이지만 최후의 선택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반적인 비만 치료와 같이 운동과 식이요법 등 생활습관 개선이 먼저 시도된 후 보조적 수단으로 사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일반인들은 건강 또는 미용상의 문제로 비만 치료에 적극적인 데 비해, 기분장애를 포함한 정신건강질환자들은 자신의 비만 문제에 상대적으로 소홀한 것이 사실"이라면서 "그렇게 된 데는 의사들이 적극적인 치료를 시도하지 않는 것도 영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지적대로 기분장애 환자에서 비만 치료는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나기 쉽다. 그러나 2012년 발표된 리뷰 논문에 따르면 조울병 환자에서 대사증후군이 동반될 경우 경과가 복잡해지고, 회복 가능성이 감소하며, 삽화 빈도 및 자살시도가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됐다(CNS Neurosci Ther 2012;18:160-6).

앞서 다른 연구에서도 조울병 환자에서의 비만은 자살 가능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고(Bipolar Disord 2005;7:424-30), 대사증후군 및 심혈관계 질환이 동반될 경우 우울증에서 회복될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과체중이거나 비만인 조울병 환자들은 만성화의 가능성이 증가하고, 심한 우울 증상과 관련이 있었다(Bipolar Disord 2010;12:404-13).

손 이사는 "기분장애 환자에서 약물요법은 거꾸로 비만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눈여겨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항정신병 약물의 부작용으로 비만이 발생하는 비율도 높음을 의미한다.

2012년 Hasnain 등이 항정신병 약제 사용을 조사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단기사용 시 체중증가 발생 위험이 가장 높은 약물로 클로자핀, 올란자핀이 지적됐다. 이들 약물을 1년간 복용한 환자는 평균 5㎏ 이상의 체중증가를 보였고, 전체 환자의 30~60%에서 베이스라인 대비 7% 이상의 체중증가가 관찰됐다.

약물선택은 환자 증상·동반질환 고려해 신중히

비만치료제 사용의 부작용으로 우울감이나 조증 출현과 같은 심리정신적 증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기분장애 환자에서 약물요법을 까다롭게 하는 요인이 된다.

그는 "비만 치료에 사용되는 약물의 종류는 기전에 따라 크게 식욕억제제와 지방흡수 억제제로 나눌 수 있는데, 국내에서 장기간 사용이 허가된 약물은 오르리스타트가 유일하다"면서 "현재 개발 중인 약제로는 부프로피온 + 날트렉손 복합제와 리라글루타이드, 테소펜진 등이 있다"고 언급했다.

치료제 선택 시에는 "환자별 증상과 동반질환을 고려해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우울증을 동반한 비만 환자에서는 부프로피온과 벤라팍신을 사용하고 비만한 제2형 당뇨병 환자에서는 메트포르민이나 리라글루티드가 권장된다. 신경정신계 증상이 동반된 환자에서는 토피라메이트나 조니사마이드 사용을 고려해 볼 수 있다.

또한 "시부트라민이 출시된 이후 뛰어난 체중감소 효과로 주목을 받았지만 심혈관계 부작용 위험성을 이유로 2010년 시장에서 퇴출됐다"면서 비만치료제 사용 시 부작용과 의존성 발생, 심혈관질환 및 자살충동 발현에 유의할 것을 강조했다.

2014년 한국형 양극성장애 약물치료 지침 출시 예정

한편 대한우울·조울병학회는 조만간 기분장애 환자의 비만 치료전략을 포함한 가이드라인을 내놓을 계획이다. 오는 28일 대한정신약물학회는 'Update on Integrative Approach of Psychopharmacotherapy'라는 주제로 2014년도 춘계학술대회를 개최하는데, 이번 학술대회에 맞춰 '2014년 한국형 양극성장애 약물치료 지침서(KMAP-BP 2014)' 공청회가 진행된다.

손 이사는 "기존에는 CANMAT(Canadian Network for Mood and Anxiety Treatments) 가이드라인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면서 "캐나다와 임상적 차이를 반영해 국내 환자에게 맞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함으로써 기분장애 환자의 비만 치료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것"으로 기대했다.

아울러 "이번 대한정신약물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는 2002년 개발된 이후 세 번째 개정판인 '한국형 양극성장애 약물치료 알고리듬 2014' 결과에 대한 첫 심포지엄도 진행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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