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질환치료제 지고 희귀·항암약물 떴다

후보물질 발굴 어려움, 제약사 매출 급감, 연구개발비용 축소 등 다양한 이유로 신약개발이 줄고 있다는 보고가 있지만 그래도 미국은 여전히 신약 강국이다. 지난 10년간 허가 통계를 보면 큰 변화가 없다. 평균 26개가 꾸준히 허가됐다.

2013년 한해 동안에도 모두 27개가 허가돼 역대 최고는 아니지만 평균보다는 높아 외형적으로 신약부재 현상을 겪고 있는 모습은 아니다. 허가 신청서 개수면에서도 36개로 평균 이상이다. 다만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만성 질환 치료제들이 사라지고 항암제와 희귀약들의 비중이 꾸준히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보면 앞으로 미국제약시장의 무게 중심이 어디로 이동할지 예측도 가능하다. 지난해 미국에서 승인된 신약을 분석해봤다.

지난해 27개 신약 승인

최근 미국식품의약국(FDA)이 발표한 지난해 승인받은 신약 보고서를 보면 2013년 한 해 동안 모두 27개의 신약이 허가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10년간 평균 허가개수보다 1개 더 많은 수치다.

참고로 지난 10년간(2004~2013년) 가장 많은 허가가 이뤄진 해는 2012년으로 무려 39개였으며, 반대로 가장 적은 해는 2007년으로 18개였다. 평균으로는 26개다.

 
전문가들은 지난 2012년에 허가가 큰 폭으로 늘어난 것은 빅파마들이 개발이 완료된 품목을 보유한 제약사들을 대거 인수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보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고혈압과 같은 만성 질환 치료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있다고 해도 희귀질환 분야이다.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치료제가 활발하게 개발되기는 했으나 임상과정에서 효과가 크게 뛰어나지 않았거나 안전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자연스럽게 퇴출됐다.

반면 항암제와 희귀질환 약물은 대거 늘어나고 있다. 이번 허가 내용을 보면 혈액암 또는 고형암 분야를 겨냥한 의약품은 모두 8개가 허가됐다.

◆ 혁신형 신약 9개

좀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전체 27개 중 이른바 혁신형 신약이라고 할 수 있는 퍼스트인클래스(First-in-Class)가 9개로 비중으로는 33%를 차지하고 있다. 퍼스트인클래스는 작용기전에 있어 지금까지 나온 약물과는 다른 새로운 기전을 가진 약물을 말한다.

아뎀파스(Adempas), 임부르비카(Imbruvica), 인보카나(Invocana), 카드실라(Kadcyla), 키나므로(Kynamro), 메키니스트(Mekinist), 소발디(Sovaldi), 텍피데라(Tecfidera), 조피고(Xofigo) 등이 그 주인공이다.

◆ 희귀질환의약품 9개

희귀질환 약물로 구분하면 모두 9개가 포함됐다. 이 또한 전체비중에서 33%를 차지하고 있다. 아뎀파스(Adempas), 가지바(Gazyva), 질로트립(Gilotrif), 임브루비카(Imbruvica), 키나므로(Kynamro), 메키니스트(Mekinist), 옵수밋(Opsumit), 포말리스트(Pomalyst), 타핀라(Tafinlar) 등이다. 대부분 항암제가 많다.

◆ 신속심사·우선심사로 각각 10개 승인

'FAST TRACK'으로 불리는 신속심사는 아직까지 충족되지 못한 의료상의 니즈에 부응이 기대되는 신약후보물질을 대상으로 임상시험 완료 이전에 허가검토 절차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임상적 효용성이 클 것으로 기대되는 중요한 신약들이 빠른 시일 내에 환자들에게 공급될 수 있도록 뒷받침하려는 취지에서 마련된 제도다. 이번 전체 허가 품목 중 신속심사 프로그램에 적용된 품목은 모두 10개이다. 질로트립(Gilotrif), 임브루비카(Imbruvica), 카드실라(Kadcyla), 메키니스트(Mekinist), 올리시오(Olysio), 포말리스트(Pomalyst), 소발디(Sovaldi), 타핀라(Tafinlar), 티비케이(Tivicay), 조피고(Xofigo) 등이다.

신속심사와 달리 우선심사(Priority Review)는 아직까지 충분한 치료대안이 존재하지 않는 분야에 획기적인 진보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는 신약후보물질들에 한해 우선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FDA는 처방약허가신청자 비용부담법(PDUFA)에 따라, 신청 접수 후 6개월 이내에 심사를 마쳐야 한다.

여기에 포함된 약물도 아뎀파스(Adempas), 도타렘(Dotarem), 가지바(Gazyva), 질로트립(Gilotrif), 임부르비카(Imbruvica), 카드실라(Kadcyla), 올리시오(Olysio), 소발디(Sovaldi), 티비케이(Tivicay), 조피고(Xofigo) 등 10품목이다.

◆ 획기적 치료제 3개…가속승인 2개

이번 허가가정에서 획기적 치료제(Break through)는 가지바(Gazyva), 임브루비카(Imbruvica), 소발디(Sovaldi)가 선정됐다. 획기적 치료제는 2012년 'FDA 안전성 및 혁신법(FDASIA)'의 일환으로, 중증 혹은 치명적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단독제제 또는 타 제제와의 병용으로 이뤄진 예비적 임상결과가 적어도 하나의 목표에서 기존의 치료를 뛰어넘는 개선효과를 보인 경우, 개발과 승인검토과정을 신속하게 진행하기 위해 지정된다.

또 가속승인(Accelerated Approval) 품목으로는 임브루비카(Imbruvica)와 포말리스트(Pomalyst) 2품목이 포함됐다. 가속승인은 중증 질환 또는 의학적 필요가 있는 경우 가속 심사를 통해 약물의 승인 과정을 단축하는 제도로 시판후 연구결과를 추가로 제출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절반(48%)에 가까운 약물이 하나 이상의 제도가 적용돼 심사를 받았다. 신속심사, 획기적 치료제 지정, 우선심사, 가속승인 등 FDA가 제시한 모든 빠른 허가 절차를 밟은 치료제로는 임브루비카(Imbruvica)가 유일했으며, 소발디(Sovaldi)는 가속승인을 제외한 신속심사, 획기적 치료제 지정, 우선심사를 거친 약물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그 외 신속심사와 우선심사를 적용받아 나온 약물은 질로트립(Gilotrif), 임브루비카(Imbruvica), 카드실라(Kadcyla), 올리시오(Olysio), 소발디(Sovaldi), 티비케이(Tivicay), 조피고(Xofigo) 등 7품목으로 집계됐다. 그 밖에 전체 약물 중 89%(24개)가 첫번째 검토과정에서 허가를 획득했는데 이는 추가적인 자료 요청을 필요로 하지 않았고 허가심사과정이 연기되지 않았다는 점을 의미한다. 또 74%(20개)는 미국에서 처음 허가되는 약물이었다.

 

인보카나·소발디, 블록버스터 예고

허가된 약물 중 주목을 끄는 만성질환 치료제로는 인보카나(Invocana)와 소발디(Sovaldi)가 있다. 인보카나는 카나글리플로진 성분의 1일 1회 복용하는 경구용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현재 DPP-4 억제제를 대체할 차기 품목이라는 점에서 블록버스터로 예견되는 품목이다. 혈당 강하는 물론 체중을 감소시켜주고, 혈압과 지질도 일부 개선시켜주는 다재다능한 약물이다.

아울러 소포스부비르 성분의 소발디(Sovaldi)는 만성 C형간염 치료제인데 표준요법인 인터페론 주사제를 쓰지 않는 시대를 여는 혁신적 약물이라는 점에서 전 세계가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기존 치료 경험이 없는 환자들에게 리바비린과 같이 복용할 경우 67%의 반응률(SVR12)을 나타내며, 치료옵션이 없는 2형 또는 3형 환자들에서도 78%의 반응률을 보인다.

이상지질혈증 약물로는 키나므로(Kynamro)가 허가됐는데 이는 희귀질환에 속하는 동질접합 가족성 고콜레스테롤증(homozygous familial hypercholesterolemia) 치료제로 주사형태이다. 주요 성분은 미포메르센(mipomersen). 임상시험 결과 키나므로를 투여한 환자의 LDL 콜레스테롤 수치를 22% 낮춰준다.

눈길 끄는 항암·희귀약물들

◆ 폐동맥 고혈압 치료제 아뎀파스

희귀질환약제인 아뎀파스(Adempas)는 리오시구아트 성분의 폐동맥 고혈압 치료제로 수술 후 또는 수술이 불가능한 만성 혈전색전성 폐고혈압(CTEPH) 환자와 각종 원인의 폐동맥 고혈압(PHA) 환자의 운동능력 개선에 사용할 수 있다.

특히 이 약물은 sGC(가용성 구아닐산 고리화효소) 촉진제 계열에 속하는 약물로, 수술이 불가능한 CTEPH 환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시험에서 임상적으로 유효성을 확인한 최초의 약물이다.

◆ 림프구성 백혈병 치료제 가지바

이와 함께 가지바(Gazyva)는 오비누투주맙 성분의 만성림프구성 백혈병 치료제로 림프종의 원인이 되는 B세포를 공격하도록 고안된 항체 약물이다. 클로람부실과 병용투여하는 약물이다. 특히 환자의 생존기간을 기존 약제인 리툭산보다 무려 1년 이상 연장시키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주목받은 바 있다.

올해 NEJM에는 이 약물의 연구가 실렸는데 781명을 무작위로 나눠 관찰한 결과 가지바와 화학요법제를 병용한 환자의 경우 암이 악화되지 않고 26.7개월 생존해 리툭산의 11.1개월보다 15개월 이상 더 길었다. 가지바는 면역계가 림프종의 원인이 되는 B세포를 공격하도록 고안된 항체 약물이다.

◆4개 허가제도 적용된 임브루비카

무려 4개의 허가제도가 적용돼 온갖 수혜를 받은 임브루비카(Imbruvica)도 향후 기대신약으로 꼽히고 있다. 이부르티닙 성분인 이 약은 BTK 공유결함 억제제로 12개의 초기 임상에서 B셀에 대한 항종양 효과를 입증한 바 있다.

지난해 8월 NEJM에는 이 약의 2상 결과가 게재됐는데 총 111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평균 15.3개월 동안 관찰한 결과, 반응률은 68%(완전 21%, 부분 47%, 비반응 32%)로 나타났다. 또 반응 기간은 17.5개월이었다. 무진행 생존율은 이전에 보르테조밉을 사용하지 않은 군에서 7.4개월인 반면, 사용한 군에서 16.6개월로 차이를 보였다.

◆에이즈 치료제 티비케이

에이즈 치료제로는 티비케이(Tivicay)가 승인됐다. 이 약은 랄레그라빌에 이은 새로운 돌루테그라비르 성분의 통합효소 억제제이다.

NEJM에 실린 연구 결과를 보면 톨루테그라비르+아바카비르+3TC 병용군의 바이러스억제율이 에파비렌즈+테노포비어+엠트리시타민 병용군보다 더 우수했으며(88% vs 81%), 반응시간도 더 짧았다(28일 vs 84일). 티비케이는 치료 전력이 없는 감염자는 물론 다른 약이나 치료법으로 에이즈 치료를 받아오던 감염자에게도 처방할 수 있어 기존의 약물보다 치료대상이 포괄적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게다가 이전에 약물치료를 받아본 적이 없는 12세 이상의 아동 감염자에 대한 티비케이 사용도 승인했다.

◆ 흑색종 치료제 타핀라·메키니스트

두 개의 흑색종 치료제도 눈길을 끈다. 타핀라(Tafinlar)와 메키니스트(Mekinist)가 그 주인공인데 전자는 BRAF V600E 유전자 변이된 환자에 사용하며 후자는 BRAF 600E는 물론 V600K 유전자 변이된 환자에도 적용이 가능한 약물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8만여 명의 흑색종 환자가 있으며 이 중 절반이 사망하고 있다. 또 국내도 등산 등 외부활동이 많아지면서 피부암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현실이어서 이 약이 국내에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

국내 한 신약개발 담당 관계자는 "진단용 의약품인 조영제 등을 제외하면 항암제와 희귀약물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항체약물의 허가가 늘어나고 있다"면서 "이는 다국적 제약사들이 경쟁이 심하지 않으면서 의학적 충족 요구가 있는 영역을 발전시키려는 의지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울러 "절반에 가까운 약물이 아직 치료제가 없는 분야라는 점에서 신속승인 또는 우선승인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빨리 승인될 수 있었다는 점도 지난해 승인받은 약물들의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이 약물들을 국내에 들여오기 위한 절차도 속속 진행 중이다. 그러나 대부분 고가일 가능성이 높아 급여가 원할하게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한편 FDA의 신약허가 심사의 통과는 여러 의미를 갖는다. 우선 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했다는 점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미국이 신약허가 신청 시 요구하는 자료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따라서 사전에 얼마나 협의와 소통을 했느냐에 따라 신약허가 기간이 달라진다는 게 매년 방한하는 미국 허가 담당자들의 한결같은 조언이다.

또한 전 세계 제약시장 변화를 읽을 수 있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통상 미국에서 시판허가가 이뤄지면 얼마 후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지역에서 허가가 이뤄지는데 이는 제약 및 의료 수요의 트렌드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그만큼 미국 신약허가는 국내외 시장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그 밖에 전 세계적으로 어떤 약을 개발해야 하는지에 대한 개발 지표도 읽을 수 있어 전 세계 많은 신약개발 및 전문가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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