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병상 규모의 A중소병원은 병원 자체 건물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비싼 임대료 부담은 없다. 그러나 직원수가 150명에 달하고 인건비 비중이 높아 1년 전체 매출액 130억원에 비해 순수익은 5000만원에 불과했다. 월수입은 10억 남짓이고 하루라도 문을 열지 않으면 하루 5000만원 가량의 매출액이 고스란히 빠지게 된다. 제반비용과 직원들의 인건비는 나가야 한다. 게다가 월요일에는 내과, 소아과 등의 외래 환자가 가장 많다. 월요일 하루 휴진하면 평소보다 많은 금액인 6000~7000만원이 빠지게 된다.

A병원장은 “파업에는 찬성한다. 의원을 운영하고 있었다면 아마 눈 딱감고 파업 참여가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루에 어느 정도의 손실을 떠안아야 하는 만큼, 휴진을 할 경우 마땅한 방법이 없다. 일을 안해도 인건비가 그냥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그저 참여하지 않는 병원을 욕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월요일 하루조차 아마 휴진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400병상 규모의 B요양병원은 휴진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선언했다. 환자들이 가득 차 있고 심지어 입원 대기까지 하고 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장기입원이 불가능한 대학병원에서 의뢰를 받는 형태로 운영되며, 의뢰시스템이 안정될 때까지 인근 대학병원과의 친분은 물론 직원들이 전방위로 뛰어다녔다. 또한 노령 환자가 대부분인 만큼, 실시간으로 진료를 봐줘야 하고 어떻게 될지 모르는 환자들이 가득이다. 보호자들에게 만약 휴진을 한다고 선언한다면 지금껏 쌓아왔던 전달체계가 망가지는 것은 물론, 병원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B원장은 “당장 돌봐야 할 환자가 많은데, 휴진을 한다면 몰려오는 환자를 어떻게 책임져야 할지 모른다. 또 갑자기 진료가 필요하고 입원하게 되는 환자도 문제시된다. 인근 경쟁병원으로 환자가 갈 수도 있는 일이고, 만약 휴진을 선언해도 남들이 다 문을 열면 우리 병원만 바보된다. 휴진의 손실에 대해서는 의협에서도 책임져주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1000병상 규모의 수도권 C대학병원은 파업은 꿈도 못꿀 일이라고 토로했다. B병원 교수들은 파업 소식 자체에는 귀를 기울였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조만간 발표되는 인사 문제라고 밝혔다. 새로 보직자를 선임하면서 주임교수 자리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분위기다. 병원 윗선에서는 파업에 대한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고 가급적 동요되지 말라는 이야기만 오갈 뿐이었다. 교수들 역시 당장 인사 문제에 솔깃할 수밖에 없고, 파업보다 자신의 승진과 보직에 쏠린 문제가 더 크게 부각되고 있다. 게다가 병원이 어려워지는 시기에 괜히 휴진하자고 나섰다간 불이익을 받을 지도 모른다는 부담감이 크다.

C병원 교수는 “파업 투표에 찬성했지만, 병원 정책과 인사 시기로 조용히 지내고 있다. 개원의들이 대학병원이 참여하지 않는다고 지적하지만 조직의 구성원에 불과하다. 교수라고 마음껏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며 파업에 참여할 수 있는 현실적인 여건은 다르다”고 토로했다.

대한의사협회가 파업 로드맵을 확정했다. 10일 전일 파업에 이어 11~ 23일은 환자 15분 진료하기, 전공의 하루 8시간 주 40시간 근무하기 등의 준법진료·준법근무를 실시한다. 이어 24~29일 6일간 전면 총파업에 돌입한다.

특히 10일엔 필수진료를 제외하지만 24~29일 6일 동안은 필수진료인력도 포함하기로 했다. 그러

▲ 의협 노환규 회장이 총파업 투표결과를 설명하고 있는 장면.
나 반응을 살펴본 병원들은 동참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의협도 병원 참여 문제를 인식한 듯 “3월 10일부터 무기한 파업 돌입을 원하는 회원들이 대다수이지만, 일부 의료계 지도자들의 조직적 불참운동 움직임에 대한 대처방안 마련과 전공의·대학교수의 총파업 참여 제고를 위한 준비기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투쟁방안을 계획하게 됐다”고 밝혔다.

전국의사총연합도 “대학병원 급의 참여와 전공의 동참이 투쟁의 핵심이므로, 이 부분을 성사시킬 방안을 제시하고, 의대생 의식화 및 조직화에 적극 개입하고 군의관 공보의 준법 진료 요청서를 발행하라”고 주장했다.

실제 2000년 파업에서는 전공의의 참여가 주를 이뤄 폭발력을 가지게 됐다. 전공의 참여를 설득해야 하는 입장에서 전공의를 수용하는 병원들의 미적미적한 반응은 의협으로서도 힘 빠지는 모양새가 되고 있다.

그러나 대한병원협회는 파업에 부정적이다. 김윤수 회장은 원격진료, 투자활성화대책을 찬성하는 입장인 가운데 “어려운 병원 환경에서 얻어진 이익금은 어려워져 가는 의료법인에 재투자돼 더욱 안정되게 만든다”라고 분명히 했다.  

보건복지부 권덕철 보건의료정책관도 "의협의 집단휴진 투표 찬성률은 높은 수준이나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이 높다는 뜻일 뿐, 실제 참여율은 낮을 것"이라며 "의원은 전국에 2만8370곳이지만 집단휴진에 돌입해도 정상적으로 진료하는 병원, 보건소, 한방병`의원 등은 모두 3만5000여 곳이어서 이를 확대운영하면 환자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병원 내에서는 아직 많은 진료할 날이 더 많이 남은 30~40대 젊은층이 원장, 보직자들에게 설득하려는 모습도 보이지만, 월급쟁이 신분으로는 한계가 많다고 토로했다.

한 봉직의는 “의협에서 보다 강력한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지금 병원장들은 문을 닫고 휴진하면 손해라는 생각만 팽배하고,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생각한다”며 “파업의 동력을 얻기 위해서는 중증 환자들이 더 많이 몰리는 병원들의 관심과 참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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