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본래의 업무에는 소홀한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심사권 이양과 담배소송에만 집중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건보공단 김종대 이사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서슴없이 "심평원의 심사권 때문에 막대한 재정 손실이 있으며, 사전관리 체계가 아닌 사후관리 체계로 사무장병원이나 부당청구 등을 색출하기가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선 김 이사장은 올해를 시작하는 신년사를 통해 현재 가장 잘못되고 비정상적인 관행은 '진료비 청구·심사 지불체계'를 꼽으면서, "가입자 자격관리는 공단이, 진료비 청구는 타 기관(심평원)이 하면서 부정수급 및 부당청구를 사전에 막을 수 없다"고 성토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거의 공식홈페이지처럼 운영하고 있는 김 이사장의 공부방블로그에도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게시글이 빼곡하다.

블로그 이용법이라는 게시글에는 "현재의 공단은 지출관리를 하지 못하는 '반쪽'보험자"라며 "진료비 청구·심사체계에 대한 개선이 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언급했다.

2만명 돌파 이벤트에서는 "가장 인기있던 게시글은 지난해 게재된 '진료비 청구·심사·지불·사후관리체계'였다"면서 "이 글에서는 심평원의 업무인 진료비 청구 및 심사권을 공단으로 이관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처럼 방문객 이벤트에서도 알 수 있듯 급여비의 청구, 심사로 느끼는 국민들의 문제 인식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즉 본인 스스로만 '심평원 업무의 공단 이관'을 생각하는 것이 아닌, 일반 시민들도 이를 수긍한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지난해 10월부터 한달간 연재했던 해당 게시글은 총 8편에 달하며, 주요 내용으로는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진료비 청구 및 심사·지불체계의 문제점은 행정력 낭비, 부당청구의 적발시점 지연, 세부자료 미제공 등으로 이에 따라 재정이 낭비된다는 것과 △대만, 프랑스, 일본, 벨기에, 독일 등 해외 국가들의 건강보험 청구·심사·지불체계는 보험자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마지막편에서는 또다시 심평원의 업무 이관을 들먹이면서, "외국사례를 참고해야 할 때다. 갈수록 지능화되고 있는 보험사기, 사무장병원을 적발하기 위해 반드시 심사권을 공단으로 가져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공공기관 개혁을 위해 '비정상을 정상화'할 것을 주문하자, 곧바로 김 이사장은 이달초 공단 내에 '건강보험 정상화 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 이달초 발족한 정상화 추진위에는 청구 및 심사권 이양을 직접적으로 주장하는 재정누수클린업추진단, 담배소송을 준비하는 흡연피해구제추진단 등이 있다.


위원회 산하에 '누수클린업추진단'을 뒀는데, 여기에는 '재정누수방지팀'을 만들었다. 누수방지팀의 슬로건은 심사체계 일원화를 통한 정상적인 건강보험 운영시스템 만들기로 정했고, 이는 즉 심평원 업무를 가져오는 자체를 공식적인 업무의 하나로 설정한 것이다.

하지만 공단을 제외한 나머지 전문가 집단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보건의료단체 한 전문가는 "현재 징수에서 급여지급, 심사권한까지 모두 공단이 가지고 있는 장기요양보험을 봐라. 잘 이뤄지는가"라고 반문하면서 "공단 내부감사 자료를 보면 대부분의 부정이나 뇌물 수수 등이 장기요양보험, 관련 업체 등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징수업무가 국세청으로 내년까지 이관되면서 줄어들 일자리를 걱정해 공단의 파이를 확장하려는 속셈이며, 그간 방만운영의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도구일 수도 있다"면서, "업무확대에만 혈안이 되기 보다,  현재 잘 이뤄지지 않는 건강예방사업이나 징수관리, 체납관리 등에 신경써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한 보건복지위원회 의원 보좌관은 "이미 건보법상 명확인 제한돼 나눠져있는 업무를 '효율성'이라는 이유로 마음대로 바꾸라마라 하고 있다"면서 "지난해 국감과 전체회의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시정을 요구했으나 막무가내"라고 지적했다.

실제 상위기관인 복지부는 지난해 국감에서 이를 제지할 것을 주문받자 "그만하라는 경고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으나, 공단에서 시정하고 있지 않다"는 답변을 내놓은 바 있다.

 

▲ 건보공단이 지향하는 심사지불체계로, 심평원의 청구 및 심사 기능을 공단에 가져온 후 전문적인 심사만 자동차보험처럼 위탁심사를 맡기는 구조로 돼 있다.


A의원은 "공단 이사장이 시정하지 않아 복지부 장관에게 시정과 제지를 요구한 바 있다"면서 "하지만 좋아지기는 커녕 이제 복지부의 말마저도 듣지 않고, '박근혜 대통령이 발표한대로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개혁의 일환'이라는 억측만 늘어놓고 있다"고 꼬집었다.

얼마전 임시국회에서는 새누리당 김명연 의원이 "김종대 이사장이 심사권이 심평원에 있어 낭비되는 재정이 수천억원에 이른다고 말하는데, 현재 건보공단의 본래 업무인 체납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발생하는 누수액은 2조원을 넘는다"고 말했다. 

이어 "재정누수의 가장 큰 원인은 공단이 본연의 업무를 제대로하지 않으면서 발생하는 것"이라며 "체납징수팀들을 만나 업무 이해도 등을 물은 적이 있는데 형편없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 건강보험증 관리 소홀로 인한 재정누수도 수천억원에 달한다는 지적을 하면서, "의료기관은 증도용 환자든 아니든 진료를 해야 수익이 나는 기관이다. 의료기관에 증도용 책임을 주는 것은 맞지 않다"면서 "보험증을 본인확인이 가능하도록 개선하는 업무, 또 이를 관리하는 업무 등 공단 업무에 보다 충실히 하라"고 주문했다.

 

▲ 지난달 24일 열린 건보공단 이사회에서 담배소송이 의결됐다.


한편으론 외부적으로 담배소송에도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모든 직원들의 시선와 열정은 '담배'에 꽂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지난해 건강보험 빅데이터를 이용해 3차례나 흡연과 관련된 폐해를 연구, 발표하는 것은 물론 공단 홈페이지에는 담배소송과 관련된 페이지가 마련돼 여러 부서에서 담배소송을 준비하는 자료를 취합하고 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공단이 국민들의 보건의료정책에 관한 의견을 묻는 '국민토론방'에는 3대비급여나 원격의료, 의료영리화 등 당장의 뜨거운 감자는 제쳐두고 '흡연피해, 담배회사는 책임이 없는가?'를 선정했다.

이와 더불어 공식홈페이지에 김종대 이사장 블로그로 가라는 좌표를 설정했고, 블로그로 가면 '담배소송'과 관련된 법적, 보건의료적 근거자료와 김 이사장의 주장 등이 빼곡하게 정리돼 있다.

 

게다가 공단은 건보료 고지서, 영유아 건강검진 안내문, 일반검진 안내문 등의 우편물에 흡연 경고문을 삽입해 발송할 예정이고, 직원들이 거리로 나와 금연캠페인, 금연교육 등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열정은 김 이사장과 몇몇 직원들만 가지고 있을 뿐 대부분의 직원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A실 실장은 "위에서 어떠한 방향으로 가자고 결정하면 그에 따를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심사권 이양'을 공공연히 주장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하는 편이나 '담배소송'에는 사실상 회의적"이라고 했다.

이어 "미국의 사례만 봐도 수십년 수백년이 걸릴지도 모를 소송이다. 흡연으로 매년 1조7000억원의 피해금액이 발생한다고 하는데, 이를 소송으로 회복하기 보다는 낭비되는 돈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올해말 김종대 이사장의 임기가 끝난다. 이제 임기를 마치고 가시면 직원들이 남아서 소송을 이끌어 가야 하는데, 추진동력이 사라지는 마당에 잘 이뤄질지 의문"이라고 회의감을 드러냈다.


공기업 및 공공기관의 업무범위가 정해져 있지만 얼마든지 수정되고 개편될 수는  있다. 하지만 국회, 정부, 관련 전문가가 동시에 반대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 마치 '꼭 바뀌어야 하고 언젠가는 바뀔 것'처럼 여론을 호도한다면 국민들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공단이 심사업무를 가져오고 싶다면,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막무가내로 주장할 것이 아니라 정부와 국회를 설득해 법안을 마련한 뒤, 이후 국민의 의중을 묻는 절차를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담배소송을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막대한 '건보료'가 사용되는 만큼 이사회 의결을 한 사항이라고 밀어부칠 게 아니라, 우선 국민 의중을 묻고, 이후 전문가 자문을 통해 승소 가능성을 확실히해야 한다.

그 후 이사장과 그 측근이 아닌 진짜 공단에서 일하는 직원들, 즉 담배소송을 위해 업무가 증폭되는 직원들에게 '정말 이를 준비할 마음이 있는지'부터 확인하는 것이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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