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혈관질환 위험 관리에 중점 둬야

 

고혈압은 여전히 환자의 절반 이상이 정상혈압에 도달하지 못하는 ‘절반의 법칙’ 꼬리표를 떼내지 못하고 있다. LIFE, ASCOT-BPLA 연구 등을 주도한 비요른 존 다뢰프(스웨덴 살그렌스카대학병원) 교수는 고혈압에 대해 “검증된 다양한 치료선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통제가 충족되지 않는 미해결 과제”라고 적시하고 있다.

미국의 JNC 8차 고혈압 가이드라인을 주도한 미국 알라바마의대의 Susan Oparil 교수는 “최적의 조건에서 최고의 전문가들이 치료를 제공하는 무작위·대조군 임상시험(RCT)에서조차 혈압 조절률이 70%를 넘는 경우가 드물다”고 지적했다.

“혈압만의 문제 아니다”
관동의대 제일병원 심장혈관내과의 박정배 교수는 그 이유를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치료가 늦어지는 것에 더해 환자의 대부분이 이상지질혈증·고혈당·비만·대사증후군·신장기능장애 등 다른 질환을 동반하는 고혈압의 특성에서 찾았다. 특히 당뇨병이나 신장질환이 동반되는 고혈압 환자의 경우 혈압이 조절됐다 해도 합병증과 사망위험이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사증후군은 더 나아가 고혈압 발생 기전의 핵심요인인 RAAS(레닌-안지오텐신-알도스테론계)를 활성화시킨다. RAAS의 활성화가 혈관내 플라크 파열과 혈전증의 위험을 증가시켜 심혈관질환 발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국 대사증후군을 동반한 고혈압 환자들은 혈압 자체를 조절하는 것이 힘들 뿐 아니라 심혈관질환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더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상의 근거들은 혈압만 보고 접근해서는 고혈압 및 관련 합병증 예방을 충분히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고혈압 환자에서 이상지질혈증·당뇨병 등의 위험인자가 동반될 위험이 높다는 것은 이미 기초 및 임상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이들 다중 위험인자의 발현이 심혈관질환 위험을 배가시킨다는 점 또한 주지의 사실이다. 바로 이 때문에 고혈압을 단지 혈압의 높고 낮음이 아닌 심혈관질환과 그 기저질환인 동맥경화증을 야기하는 위험인자 집단의 교차대화(cross talk)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심혈관증후군으로 봐야
“고혈압은 복잡하고 상호관계를 맺는 병인(위험인자)들로부터 기인하는 진행성 심혈관증후군이다. 고혈압의 진행은 심장 및 심혈관의 구조적·기능적 장애와 강력한 상관관계가 있으며, 이는 심장·신장·뇌를 비롯해 여타 기관에 손상을 입혀 조기 유병 또는 사망을 야기한다(J Clin Hypertens 2005;7:505~512).” 2005년 미국고혈압학회(ASH)는 고혈압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제안했다. 혈압수치보다는 심혈관장애의 관점에서 고혈압을 바라본 것으로 최근의 심혈관계 위험인자 종합관리 패러다임과 맥을 같이 한다.

심혈관계에 구조적·기능적 손상을 유발하는 여러가지 원인들(다중 위험인자)로 인해 유발된 심혈관장애 증상의 집합이 고혈압이라는 것인데, 다뢰프 교수는 “높은 혈압이라는 단일 위험인자에서 더 나아가 전체 심혈관위험도(다중 위험인자)의 관점에서 고혈압을 바라보고 치료전략을 짜야 할 것”이라고 새로운 정의에 대해 부연했다.

혈압조절 + 심혈관보호효과
이는 또한 고혈압 환자에서 혈압을 낮추는 것 이외의 혜택을 담보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측면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LIFE와 HOPE 연구에서는 안지오텐신전환효소억제제(ACEI)와 안지오텐신수용체차단제(ARB)가 여타 약물과 비교해 혈압강하 효과는 대등하나 심근경색증이나 사망(심혈관사건) 등에서는 보다 우수한 효과를 나타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혈압조절 이외의 부가혜택을 두 계열 약물의 특이점인 내피세포기능장애와 인슐린저항성 개선에서 찾고 있다. 동맥경화증 진행 과정에서 일관되게 관찰되는 두 요인은 교차대화를 통해 심혈관질환 위험을 악화시키는 장본인들이다.

여타 위험인자 종합관리
고혈압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임상에 적용하면, 다양한 원인이 상호작용한 심혈관장애를 차단하기 위해 여타 위험인자를 함께 공략해야 하는 새로운 전략을 만나게 된다. 여러 요인들이 겹쳐 심혈관계 이상이나 대사장애가 유발되는 고위험군 환자에서 높은 혈압이라는 단일 위험인자만을 공략해서는 인자 간 교차대화의 결과를 공략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새로운 패러다임의 고혈압 치료를 위해서는 혈압조절 이상의 확대된 치료전략이 필요하다.

가천대 길병원 심장내과의 고광곤 교수는 동맥경화증 치료에 있어 약물 병용요법이 심혈관질환 예방에 어떤 부가적 혜택을 가져다 주는지에 관한 임상적 근거를 제시해 왔다. 다중 위험인자 발현시 인자 간 교차대화 결과(내피세포기능장애와 인슐린저항성)를 표적으로 한 종합관리의 실효성을 고위험 고혈압 환자 사례를 통해 입증한 것이다. 그는 ‘고콜레스테롤혈증·고혈압 환자에서 심바스타틴·로살탄 병용요법’, ‘고중성지방혈증·고혈압 환자에서 페노피브레이트·칸데살탄 병용요법’ 등의 연구를 통해 이들 요법이 혈압조절뿐 아니라 내피세포기능장애와 인슐린저항성에도 영향을 미쳐 심혈관의 구조적·기능적 개선에 기여한다고 보고했다.

혈압조절은 신속하게
심혈관장애의 측면이 강조됐다고 해서 혈압조절의 중요성이 간과되는 것은 아니다. 혈압조절이 고혈압 치료의 본질적인 측면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ASH가 말하는 심혈관장애, 즉 새로운 정의의 고혈압은 그 표지인자가 혈압상승 이전부터 관찰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다중 위험인자가 발현되는 심혈관질환 고위험군 환자들의 경우, 혈압수치에 의한 고혈압 진단시점에서는 이미 심혈관장애(고혈압)가 어느 정도 진행됐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고위험군에서 신속한 항고혈압제 투여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즉 혈압이 140/90mmHg 미만이더라도 여타 위험인자와 표적장기 손상 여부에 따라 보다 신속하게 약물치료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발표된 2013 대한고혈압학회 고혈압 진료지침은 2기 고혈압전단계일지라도 당뇨병, 신장질환, 심혈관질환이 있으면 항고혈압제 치료를 시작할 수도 있도록 했다.

항고혈압제 병용요법
고혈압 관리와 관련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주장의 또 다른 핵심은 초기에 공격적인 치료를 통해 우선적으로 혈압을 목표수치로 끌어내리거나 혈압조절 이외의 부가적 혜택을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작용기전이 다른 항고혈압제 간 병용요법이 초기부터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고광곤 교수는 항고혈압제 병합요법과 관련해 “서로 상관이 없는 약을 뒤죽박죽 쓰는 것이 아니다. 혈압조절은 물론 위험인자 간 교차대화의 결과인 혈관의 구조·기능적 변화, 즉 동맥경화증 악화의 차단에 상호보완적인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약물을 선택해 조합하는 것이 바로 병합요법의 새로운 개념이다. 이같은 조합을 통해서만 비용효과와 함께 궁극적인 심혈관질환 예방에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혹자는 위험인자가 여럿 나타나면 이들을 모두 치료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심혈관질환 고위험군 환자에서 병합요법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제기한다. 고 교수의 연구에서 중요한 점은 위험인자 간 교차대화에서 파생되는 내피세포기능장애에 주목했다는 것이다. 종합하면 위험인자 치료시 병합요법이란, 단순히 드러나는 위험인자를 모두 치료한다는 것 보다는 궁극적인 심혈관질환 또는 기저병태인 동맥경화증 진행 차단에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상호보완적 개념이 반영돼야 한다. 즉 병합의 선택에 있어 각각의 위험인자 조절은 물론 위험인자 간 교차대화를 막아낼 수 있는 약물이 고려돼야 한다는 것이다.


 

 

1. 2013 대한고혈압학회 고혈압 진료지침
“대사증후군을 동반한 고혈압 환자에서 고혈압 치료의 목표는 심혈관질환 발생을 예방하고 사망률을 낮추는 것 뿐만 아니라, 특히 당뇨병 발생의 위험을 낮추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비약물 치료로서 생활요법, 특히 체중감량과 규칙적 운동은 모든 환자에게 권고한다. 생활요법은 혈압을 낮추고, 대사이상을 개선하며, 당뇨병 발생을 지연시킨다.

고혈압 약물을 선택할 때는 강압효과 뿐만 아니라 대사이상과 인슐린감수성에 유리하거나 적어도 해로운 영향이 없는 약을 선택한다. 아테놀롤 등 구세대 베타차단제는 당뇨병 발생을 증가시키고 혈청지질에 불리한 영향이 있으므로 단독으로 장기간 사용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혈관확장 효과가 있는 베타차단제는 혈당, 혈청지질에 해로운 영향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ACEI 또는 ARB를 사용할 수 없는 경우에 적용하거나 이들 약물과의 병용요법에 사용할 수 있다. ACEI 또는 ARB와 베타차단제의 병용은 칼슘길항제와의 병용에 비해 혈압강하 효과가 열등함을 고려해야 한다.

티아지드 또는 티아지드 유사 이뇨제는 단독 또는 고용량으로 사용하는 것은 피하고, 저용량 병용요법으로 사용하도록 한다. 고용량 이뇨제는 저칼륨혈증으로 당뇨병 발생을 증가시키고 혈청지질에 불리한 영향을 미친다.

병용요법으로 사용할 경우에는 구세대 베타차단제와의 병용은 피하고 칼륨 보존 약의 병용투여를 고려한다. 또한 이뇨제를 병용요법으로 사용할 경우, 혈당 및 지질에 미치는 불리한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ACEI 또는 ARB와의 병용투여를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2. 2013 유럽고혈압학회(ESH)·유럽심장학회(ESC) 고혈압 가이드라인
- 모든 대사증후군 환자에게 운동과 체중감량을 중심으로 한 생활습관개선을 권고한다. 생활요법을 통해 혈압 뿐만 아니라 대사증후군 구성인자를 개선할 수 있고, 당뇨병 발생을 지연시킬 수 있다(Class I, Level B).
- 대사증후군은 당뇨병전단계 상태로 고려될 수도 있는 만큼, 항고혈압제의 선택은 인슐린민감도를 개선 또는 적어도 악화시키지 않는 RAAS 억제제와 칼슘길항제의 고려가 우선된다. 베타차단제(혈관확장 효과의 베타차단제는 제외)와 이뇨제는 추가약제로만 고려돼야 하며 이뇨제 투여시에는 칼륨 보존 약물과의 병용을 고려한다(IIa, C).
- 혈압이 140/90mmHg 이상이며 대사장애가 있는 고혈압 환자에게 항고혈압제 투여를 권고한다(I, B).
- 대사증후군이 있는 높은 정상 혈압(high normal BP, 130~139/85~89mmHg) 환자에서는 항고혈압제 치료가 권고되지 않는다(III, A). 


대사증후군 진단을 위한 혈압 기준
▶1999년 세계보건기구(WHO): 140/90mmHg 이상
▶ 2001년 미국 NCEP ATP III: 130/85mmHg 이상 또는 약제치료를 하는 경우
▶ 2005년 국제당뇨병연맹(IDF): 130/85mmHg 이상
▶ 2009년 미국심장학회(ACC)·IDF: 130/85mmHg 이상 또는 약제치료를 하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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