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위험인자 갖고 있을 뿐”vs. “심혈관질환 위험상승 지표”

“명확한 의학적 증거가 규명될 때까지 대사증후군(metabolic syndrome) 진단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 이는 환자로 하여금 별도의 질병이 있다고 믿도록 오도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들은 기존에 정립된 심혈관질환 위험인자들을 갖고 있을 뿐이다.”
- 미국당뇨병학회(ADA), 유럽당뇨병학회(EASD) 공동성명 - 2005년


“대사증후군은 동맥경화성 심혈관질환(ASCVD)과 제2형 당뇨병 발생을 직접적으로 촉진하는, 상호 연관된 대사성 위험인자들의 집합체이다. 이는 실제로 ASCVD 위험인자들이 무리를 이루는 하나의 증후군이며, 이를 통해 ASCVD 위험이 상승된 환자들을 확인할 수 있다.”
- 미국심장협회(AHA), 미국국립심장·폐·혈액연구원(NHLBI) 대사증후군 가이드라인 - 2005년

 

 

지난 2005년 대사증후군의 존재를 둘러싼 학계의 커다란 논쟁이 있었다. 내분비학계가 대사증후군의 존재와 역할의 임상적용을 전면 유보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자, 심장학계는 그 존재를 더욱 지지하며 임상치료의 역할을 강조하고 나섰다.

① 미국당뇨병학회(ADA)와 유럽당뇨병학회(EASD)는 ‘Diabetes Care 2005;28:2289-2304’에 ‘대사증후군: 재평가의 시간’ 제목의 공동성명을 발표, 추가적인 대사증후군 연구를 비롯해 진단 및 치료 유보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양 학회는 “대사증후군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아 임상에서 일관되게 적용되지 않고 있으며 이를 별도로 치료해야 할지,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추가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 미국 콜레스테롤 가이드라인(NCEP ATP III), 국제당뇨병연맹(IDF)이 정의한 대사증후군의 진단기준이 일정 정도 차이를 보였다.② ADA와 EASD는 이를 근거로 ‘심혈관질환 위험인자들이 동시다발되는 환자들을 대사증후군으로 진단하지 말 것’과 ‘명확한 과학적 증명 전까지는 이를 별도의 질환으로 떼내어 치료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두 학회는 또 다중 심혈관 위험인자들의 동시발현이 각 위험인자의 합산보다 심혈관질환 위험을 높이지는 않으며, 각각의 인자들보다 더 높은 심혈관질환 위험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들어 대사증후군을 별도질환으로 치료하는데 의문을 제기했다. 각각의 위험인자들과 비교해 추가적인 위험을 주지 않는다면, 대사증후군을 별도의 질병으로 치료하는 것 보다는 각각의 위험인자가 발현할 때 마다 개별 치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반면 이런 주장이 제기된지 몇 개월 후 미국심장협회(AHA)와 미국국립심장·폐·혈액연구원(NHLBI)은 공동으로 대사증후군 진단 및 치료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AHA와 NHLBI 가이드라인은 대사증후군 진단 및 치료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ADA와 EASD에 배치되는 입장이었으며, 대사증후군 기준의 경계치를 낮춰 진단의 폭을 이전보다 더 넓게 잡고 있다.

대사증후군의 정의는 지속적으로 진화해 왔다. 1980년대 미국 스탠포드의대의 Gerald Reaven 교수는 당뇨병·고혈압·고지혈증·비만 등이 한 환자에게 동반될 경우 심혈관질환이 발생할 확률이 크게 증가하고, 이는 인슐린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인슐린 저항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③ Reaven 교수는 이같은 현상을 하나의 증후군으로 바라보고 X증후군 (syndrome X)이라 명했다. 이로써 각각의 위험인자에 개별적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하나의 증상군으로 보고 총체적인 관리를 시도하게 된 것이다. 대사증후군은 이 외에도 인슐린 저항성과의 관련으로 인슐린저항성증후군(insulin resistance syndrome)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어 1998년 세계보건기구(WHO)가 X증후군을 대사증후군으로 개칭, 이 증후군을 공식 인정하면서 본격적인 임상적용의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④

 

 


 

정확히 3년 후 내분비와 순환기 학계는 대사증후군을 놓고 절묘한 절충안을 만들어 냈다. “심혈관질환과 당뇨병 예방을 위해 대사증후군 논쟁을 접고, 다중 위험인자 관리에 집중하자”는 것이었다. 대사증후군 정의 및 임상적용을 둘러싸고 이견을 보여왔던 학계가 다중 위험인자 발현과 그 위험성에는 뜻을 같이하며 한 목소리를 낸 것이다.

AHA와 ADA는 2006년 Circulation 2006;113:2943-2946에 ‘심혈관질환과 당뇨병 예방’ 제목의 공동성명을 발표, “산재한 의학적 미해결 이슈에도 불구하고, 고혈당·고혈압·이상지혈증·비만 등 상당수의 심혈관 대사성 위험인자들이 심혈관질환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것이 명확히 확인되고 있다”며 전체 심혈관질환 위험도(global risk) 평가와 관리를 강력히 권고했다. “현단계에서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대사증후군 기전을 놓고 소모적이며 비생산적인 논쟁을 펼치기 보다는 일련의 역학연구를 통해 컨센서스가 형성된 다중 위험인자의 존재와 그 위험성 및 치료전략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공동성명의 핵심은 심혈관 대사성 위험인자들이 동시에 다중으로 발현되는 위험인자 집합체의 존재는 물론 이 같은 현상이 당뇨병과 심혈관질환 발생에 미치는 폐해의 심각성을 양자 모두가 인정했다는 것이다. 성명은 “심혈관질환 예방에 있어 당뇨병 전단계·고혈압·이상지질혈증·비만 등 핵심 위험인자 검사와 치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며 “이들 다중 위험인자의 동시발현이 심혈관질환이나 당뇨병 발생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이 확인된 만큼, 위험인자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전체 위험도(global risk) 평가가 권고된다”고 밝혔다.⑤

이제 대사증후군, 즉 여러 심혈관 위험인자가 동시에 발현되는 ‘다중 심혈관·대사성 위험인자의 집합체’가 존재하며, 이 경우 심혈관질환 위험이 크게 증가한다는 데는 학계의 컨센서스가 형성돼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의대 임수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사증후군의 유병률이 1998년 24.9%에서 2007년 31.3%로 꾸준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 저HDL콜레스테롤혈증, 복부비만, 고중성지방혈증의 증가를 꼽았다.⑥

 

소아·청소년에서 심혈관 위험인자들이 다중 발현되는 문제도 새로운 의료·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역시 임수 교수팀의 조사에 의하면, 미국의 경우 1998~2006년까지 소아·청소년(12~19세) 대사증후군이 7.3%에서 6.5%로 감소한 반면 우리나라는 1998~2007년 사이 4.0%에서 7.8%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러한 증가현상에는 이상지질혈증과 복부비만이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됐다.⑦

대사증후군의 증가는 심혈관질환 예방을 위한 위험인자 종합관리 패러다임과 직결된다. 대사증후군의 가장 큰 특징이 다중 심혈관 위험인자들의 동시 발현인 만큼, 이들 인자를 동시에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오르고 있다. 즉 인자 간의 상호작용을 차단하기 위한 관리전략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는 것이다.

심장학 전문가들은 다중 위험인자 발현 환자에서 심혈관질환 위험이 배가되는 이유를 위험인자 간 상호작용에서 찾고 있다. 이상지질혈증, 고혈압, 고혈당 등이 동반된 상태에서는 상호작용을 통해 심혈관질환의 기저 병리상태인 죽상경화증이 악화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죽상경화반 파열을 야기하고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증 등의 심·뇌혈관질환으로 귀결된다. 중요한 것은 죽상경화증이 발현된 상태는 이미 화살이 활시위를 떠난 시점으로 심혈관질환으로의 귀결을 되돌리기 힘들다는 것이다. 위험인자와 심혈관사건의 중간단계인 죽상경화증의 발현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궁극적 심혈관질환 극복의 핵심열쇠인 셈이다.

이에 따라 위험인자(고혈당,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비만)의 약물치료에서도 인자 간의 상호작용을 차단하고 각각의 위험인자에서 더 나아가 여타 인자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심혈관 보호효과를 나타내는 부가적 혜택의 약물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⑧ 여러 위험인자를 표적으로 하는 약물들을 하나의 정제에 혼합한 폴리필(polypill)이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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