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의료계의 고충과 불합리성에 관해, 그리고 정부의 시행 착오적인 정책에 대해질타와 원망을 해왔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건강과 의료에 대한 국민 의식의 변화일 것이다.

우리 국민의 의료 관행은 그들의 건강을 위협할 뿐 아니라 불필요한 의료경비를 너무 많이 지불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의는 없다

현대의 의료 기술과 처방은 보편 평준화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외국의 한 병원에서 신 의술이 발표되면 며칠 안에 우리나라에 들어올 정도로 의술에는 독점이 없다고 할 수 있고 의료 지식은 논문 발표와 함께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알려지게 된다.

얼마전 모 대학병원에서 류마티즘 진찰을 받기 위해 3년의 예약 환자가 밀려있다는 기사를 봤다.

손재주가 뛰어나서 수술을 잘하는 의사는 있을 수 있다지만 의약분업으로 약의 비방이라는 것도 없어진 마당에 내과 진료를 위해 3년씩 기다린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과거의 명의는 그들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환자의 안색이나 혹은 청진 등 진찰로 질병을 진단하고 처방을 했지만 지금은 대부분 각종 검사에 의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궁경부암 검사를 하는 경우 세포진 검사만 하는 것보다 세포진 검사 외에확대경 검사와 인유두종 바이러스 검사를 같이 한 경우 진단이 더 확실하고 조기 검진이 가능해 진다.

결국 환자의 주머니 사정을 감안한 개원의의 단순검사보다 대학이나 종합병원의 진료에서 더 정확한 결과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가 된다.

물론 의사들도 나름대로 신 지식 획득에 게으른 사람들도 있지만 지금은 의사 자신의 실력보다는 최신 첨단 기계가 진찰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명의를 찾는다는 것은 시간과 노력과 재정의 낭비라고 생각된다.

다행인지 최근 조사에 의하면 근래에는 세간의 유명한 의사를 찾기 보다는 첨단 장비를 갖춘 병원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즈음도 명의열전같은 책자 등을 만든다며 출판비를 요구하는 유혹을 받아본 의사들이 꽤 많이 있을 것이다.


약 만능주의 만연

대한민국 국민치고 보약 한번 안 먹어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일부 우리 국민의 보신관광과 몸에 좋다면 어떤 것도 마다않는 무분별한 남용은 도가 지나친 것 같다.

얼마전 WHO 대체의학 담당관과 저녁을 같이할 기회가 있었는데 대체 의약품이나 한약제로 사용되는 원료 자체의 오염이 세계적인 문제라는 지적을 하였다.

근래 통용되는 재료의 대부분이 중국산이며 중국 땅의 대부분이 환경이 오염되어 있다는 것이고 검증도 안된 치료제가 재료 자체의 오염으로 건강을 위협하는 독이 될 수도있다는 이야기 이다.

비만 치료를 위해서도 운동과 다이어트보다는 살 빼주는 약으로 해결하려 하고, 건강증진을 위해 생활 습관을 바꾸기 보다는 건강식품으로 대신하려 하기도 한다.

소화제 먹을 것을 각오하고 과식을 하는 미련함도 약 의존의 단면이기도 하다.

밤새워 수술이나 분만을 했지만 보험수가 외에 식대와 병실 요금 몇 만원은 비싸다고 투덜거리던 환자나 보호자들이 몇 십만원짜리 영양제나 보약은 깎지도 않고 서슴없이 먹는 것을 보면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이 의사들의 또다른 서글픔이기도 하다.


진단도 치료도 "빨리빨리"

우리 국민성이 조급하다는 것은 병을 진단하고 고치는 과정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평생 검사라고는 하지 않던 사람도 종합 검사나 자궁암 검사 한 번 하고는 단 며칠을 기다리지 못하고 초조해 하고, 며칠 치료를 요하는 병도 하루 치료받고 호전되지 않으면 다른 의사를 찾기도 한다.

건강보험 공단에서 발표한 것처럼 한 환자가 하루에 여러 병원을 다녔다는 사례는 이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만성 질환에 대한 끈기있는 치료보다는 양약에서 한약 혹은 대체 의약품에 이르기까지좋다는 약은 골고루 복용하여 인체를 생체 실험장으로 만들기도 하고 완치가 어려운 병을 완치하기 위해 의사 쇼핑을 하기도 한다.

하다못해 하루 이틀 전에 성관계를 하고 매일 임신진단 검사를 하는 여성이 있기도 하다.

사람의 신체는 기계가 아니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자신을 기계로 만들기도 한다.


저수가로 고급 진료 원해

의료계에 대한 불만의 가장 큰 문제는 국민건강보험이라는 통제 하에 자신들이 내는 보험료는 선진국의 반도 안되면서 의료혜택은 그 이상을 받으려는데 있다고 생각된다.
 
정부는 양질의 진료를 싸게 공급하라고 의료를 사회주의적 체제로 만들고 있다.
 
사회주의라면 학비와 의료시설을 국가에서 마련해주고 관리를 한다지만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자신이 학비를 내서 의사가 되고 자본을 들여서 개설한 사설 의료기관까지원가에도 못미치는 의료수가로 통제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합리 하기만하다.
 
의사가 단순 노동자와 다른 것은 그들이 전문지식 정보의 소유자이므로 인술이라는 차원을 떠나 그 가치에 대한 보상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불법 약·유사 의료 판쳐

지금도 암시장에서 불법유통되는 수입 의약품이 있고 직장이나 가정을 방문하여 의료기와 의약품을 판매하는 상행위가 횡행하는 것은 장사꾼 뿐 아니라 그것을 구입하는 국민들도 문제이다.

예를 들면 손금이나 안색으로 유산의 과거 경력을 알아 맞추면서 자궁을 깨끗이 만드는 약을 권유받아 구입하거나, 난소 물혹이나 자궁 근종을 없앤다는 질정을 고가로 사서 사용하는 여성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유사의료행위가 행해지기는 마찬가지지만 요즈음 의료인들 사이에서도 번지고 있는 대체의학의 유행은 질병치료 기회를 놓치거나 악화 시키는 위험을 안고 있기도 하다.

대체 의학은 의료의 보조수단이지 주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도권 밖의 의료행위까지 감안한다면 우리 국민들의 의료비는 추정할 수 있는 범위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첨단 의료 못따라가는 사고

우리들은 현재 최첨단 의료기계로 초기 종양은 물론 미세혈관의 작은 문제까지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과학의 발달은 윤리와 생명에 대한 자세가 확고하지 않으면 환자나 의사 모두에게 오판이나 왜곡된 사고를 조장하게 할 수 있으며 난감한 처지를 만들기도 한다.

이런 발전된 진단기술에 비해 우리 국민의 의료관행과 문화는 여전히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같아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는 듯한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

차라리 미리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모르는 것이 정신건강상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늘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잘못된 의료정보 너무많다

인터넷 의료 정보에 대한 적절한 규제가 있어야 한다는 기사에서 보듯이 건강에 관한 정보 사이트는 몇 백개가 넘는 것 같다.

의료정보가 이제 더이상 의사들의 독점 지식은 아니고 누구나 관심이 있으면 정확한 지식을 얻을 수 있겠지만 차라리 제대로 알지 못하면 모르는 것이 나은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요즈음은 각 신문사에 의료전문 기자들이 활동하면서 의료기사의 정확도가 높아졌지만인터넷 의료정보를 보거나 건강보조제품의 광고를 보면 잘못된 의료 지식들이 난무하면서 가뜩이나 약이나 의료보조 용품을 좋아하는 국민들을 유혹하고 있다.


획일적 취급 거부해야

인체는 참으로 신비롭다.

의사로서 환자를 대하면서 늘 느끼지만 인체란 참으로 각각 다른 개체인 것처럼 모두 제 각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약에 대한 반응도 질병의 증상도 모두 차이가 있으며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신비함 까지 갖고 있다.

보통 사람이라 해도 기준에 벗어난 사고 방식을 갖고 있듯이 질병과 치료에 대한 신체의 반응도 평준화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같은 증상과 질병도 약을 다르게 처방하고 수술 방법도 다르게 하듯이 의사들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모두 동원하여 각각의 환자들을 대해야 하는데 현재 정부의 의료 관리 체재는 의료비 절감을 이유로 저질의 획일적인 방법을 추구하고 있다.

이것은 인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하게 만들어진 기계나 로봇을 대상으로의료 행위를 하라는 느낌을 들게 하기도 한다. 국민들 자신이 각각 자신이 고유한 개체라는 것을 인식함으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의료비를 절감한다 해도 획일적이고 포괄적인 개체로서 취급 받는 것을 국민들 스스로가 거부해야 할 것이다.

국민 의료 관행의 문제점을 개원의의 입장에서 정리해 보았지만 이 문제는 학교 교육은 물론 오도된 지식에 대한 정부의 끊임없는 규제와 함께 국민을 상대로 한 의료인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진료 외에 환자들과의 접촉을 통해 올바른 의학과 과학 지식을 알려야 하는 것은 의사들의 또다른 책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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