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대학병원 팀장은 어느 날 갑자기 국제진료팀에서 타부서로 발령났다.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면서 각 진료과 스탭들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 화근이었다. 환자가 한국에 들어오는 날에 진료 일정을 맞춰줄 것을 요청했고, 열정적인 업무에 환자들도 끊임없이 늘었다. 그러나 주말에도 진료가 늘어나는 등 스탭들의 불만을 초래했다.
A팀장은 “어려운 환경에서 환자를 늘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한 것 밖에 없다. 그렇다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아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B대학병원은 법무팀장은 어느 날 인사팀으로 배정받았다. 당연히 둘의 업무는 다르다. 법적 소송, 의료사고 문제를 처리하고 법률 전문가의 인맥을 쌓으면서 쉽게 해결할 수 없는 굵직한 일을 전담해왔다. 이제는 전부 내려놓고 급여와 직원관리를 해야 한다.
B팀장은 “순환보직의 취지라면 받아들일 수 있지만, 당사자와 상의도 없이 갑자기 발령이 났다. 법무가 핵심 업무라서 다른 유능한 팀장에 내주는 것인지, 아니면 핵심업무를 하게 되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C대학병원 팀장은 홍보팀에서 원무팀으로 발령났다. 언론홍보 10여년 경력이 있었고, 굉장히 전문적인 업무라고 생각했다. 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았으나 보직자들의 눈에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라고 아쉬워했다. 더욱이 팀장 자리도 내줄 수 밖에 없었다. 해당 팀에는 나이가 더 많은 팀장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C팀장은 “홍보 분야는 단순히 언론 보도 지원 이외에 보이지 않는 일들이 많다. 순환보직도 좋지만 직종의 전문성을 인정해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학병원 행정직의 수난시대(?)가 계속되고 있다. 인사철인 연초에는 더욱 핵폭풍과 같은 일을 만나곤 한다. 한 곳에 오래있던 팀장도 다른 부서로 가게 되거나 아예 팀장이 강등되기도 한다.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공무원처럼 순환보직이 필요하고 순환보직을 거쳐 임원이 된다는 기대를 가질 수도 있지만 이젠 쉽지 않다. 기업 출신의 임원이 채워지면서 행정직의 '임원행 사다리'가 불가능하도록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한 대학병원 팀장은 “기업에서는 퇴직관리를 위해 대학병원, 공기업 등 다소 안정적인 자리를 알선하고 추천해주는 지원을 한다. 상대적으로 행정부원장은 커녕 팀장직을 유지하기도 힘들어졌다”고 토로했다.

병원 환경이 열악해지면서 중요한 부서임에도 더욱 힘이 미약해지고 있다. 진료과에서도 수익을 낼 수 없는 곳이 목소리를 내기 힘들어지는 구조와 마찬가지다. 또 기업에서는 각 부서별로 체계적인 전문성을 갖춰나가는 데 중점을 두는 것과 반대다.

조직 내의 각종 라이센스 직역 사이에 치이면서도 나름대로의 전문성을 갖췄다는 자부심, 어려운 외부 환경 속에서도 안정적인 직장으로 여겨왔지만, 갈수록 그렇지 않게 됐다. 심지어 하루아침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생겼다.

다른 대학병원 직원은 “이제 대학병원도 더 이상 평생직장이 아니다. 행정직 신입 1명 뽑으면 수백명 이상 몰리면서 좋은 직장으로 비춰지고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연봉인상폭이 적고 조직의 경직성으로 해볼 수 있는 일도 없다”고 지적했다.

원장 입장에서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더욱 고도화된 인력이 필요하고, 조직 내 변화를 추구하면서 자연스레 생기는 부작용이라고 봤다. 한 대학병원장은 “갈수록 병원 환경이 열악해지면서 하나를 하더라도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인력이 더 필요할 것”이라며 “예전에는 주어진 일만 해도 상관없고 채용도 까다롭지 않았지만, 전문경영인이 대거 유입되면서 생기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직원들의 입장은 다르다. 애사심을 가지면서 다니고 싶지만 인정받지 못하고 승진의 기회마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합병원, 의원 등 규모가 작은 병원일수록 행정직이 더 홀대받는 모습을 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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