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료, 건강기능식품부터 학원까지, 치열한 생존전략 전개

지난해 일괄 약가인하 이후 제약사들의 주요 매출원인 약품비 청구액은 감소했으나 사업다각화, 수출증대, 긴축경영 등의 노력으로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전반적인 증가를 보였다.

한국제약협회는 '약가인하 이후 제약산업의 변화' 연구보고서에서 제약사들이 생존전략의 일환으로 일반의약품 사업을 강화하고 건강기능식품(이하 건식), 기능성화장품, 의료기기 분야에 대거 진출하는 사업다각화를 통해 보험의약품 의존성을 탈피하고자 노력했다고 분석했다.

한국신용평가사(KIS) 금융평가본부 고현수 애널리스트도 '약가규제가 가져온 변화와 제약사들의 대응전략' 보고서에서 약가인하로 인한 전문약 축소, 품목 도입 확대, 개량신약 개발 열풍, 비의약품산업으로의 다각화 등이 눈에 띈다고 밝혔다. 실제로 영업력이 강한 제약사는 다국적제약사와 공동마케팅을 통해 매출손실을 충당하며, 다수의 제약사들도 사업다각화 움직임을 보이는 상황이다.

건식·의료기기 등 사업확대 활발

2012년 국내 시장규모가 약 1.4조원, 최근 8년간(2004~2012) 연평균 성장률이 24%에 달하는 건식 시장에도 상위제약사들이 진출하고 있다. 유한양행은 2013년 5월 기존의 건식 제품군을 통합한 브랜드 '트루스(Truth)'를 론칭했으며, LG생명과학도 2012년 9월부터 건식 통합 브랜드 '리튠'을 선보였다.

앞서 한독(당시 한독약품)은 2011년부터 기존 일반의약품 사업부를 소비자건강영양사업부로 개편하고 건강기능식품브랜드 '네이쳐셋'을 내놓았다.

특히 태평양제약과 종근당건강의 2012년 매출액은 각각 411억원, 293억원으로, 상위 10대 건식업체에도 포함됐다.

고 애널리스트는 "시장 진출에 있어 제약사로 다져온 신뢰성이 유리한 조건이지만 건강기능식품 시장은 방문판매나 다단계판매와 같은 전통적인 판매채널의 비중이 40% 이상이라 유통망 확보 여부에 따라 제약사의 시장진입 성공 여부가 판가름 날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드럭스토어가 제약사들의 건식 신유통 채널로 부상하고 있으며,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지난해 12월 17일 규제완화를 통한 건식 슈퍼판매 허용 계획을 발표함에 따라 건식 시장은 활기를 더 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8년간 연평균 9%의 성장세를 보인 의료기기 시장에도 제약사들이 대거 진입하고 있다. 과거에는 제약사들이 대부분 수입제품을 들여와 판매하는 형태에 그쳐 외형성장 보완에 의미가 있되 이익창출은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자체 개발 골형성인자를 사용한 대웅제약의 치조골 이식재나 미용성형시장을 노린 필러가 다수 진출해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LG생명과학은 자체개발 필러 '이브아르'의 주름개선, 윤곽 등 라인업을 구축하며 브랜드 이미지를 확고히 했으며 러시아에 수출 중이고 최근 중국 시장에도 진입했다. JW중외제약도 PCL성분 '엘란쎄'로 피부과와 성형외과 등을 공략하고 있다.

동아에스티는 스텐트 기술을 보유한 의료기기업체 엠아이텍을 인수했으며, 대웅제약도 노보시스로 의료기기 사업에 진출했다. 보령제약과 JW중외제약, 한미약품 등도 각각 계열사를 통해 의료기기 사업 부문을 영위하고 있다.

음료시장도 제약사들의 주요 진출 분야다. 동아제약의 박카스는 지난해 1709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지주사로 전환한 후에도 올해 3분기 매출이 전년보다 4.3% 증가한 535억원을 기록하는 등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광동제약은 비타500과 옥수수수염차의 2012년 매출이 각각 927억, 532억원이며 삼다수도 판매에 나서 음료부문을 공고히 했다. 그 외에도 기능성음료, 숙취해소음료, 에너지음료 등에서 제약사들의 진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화장품(Cosmetics)도 의약품(Pharmaceutical)과 합성한 코스메슈티컬(Cosmeceutical)이라는 용어가 탄생할 만큼 제약사들이 영역을 넓히고 있다. 동성제약은 봉독(벌침 독)을 이용한 화장품 브랜드 '에이씨케어'를 출시했으며, 태평양제약도 아모레퍼시픽과 공동연구를 통해 통합브랜드 '에스트라'를 리뉴얼 런칭했다.

건식, 음료, 화장품 등은 기존에도 제약사들이 취급했던 사업분야였지만 사업다각화의 영역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

동성제약은 LED(발광다이오드) 조명 산업에 진출해 2012년부터 수출에 들어갔으며, 같은 해 JW중외메디칼도 카메라가 장착된 LED 무영등을 출시했다.

최근 진양제약은 동물의약품 사업에 뛰어들었으며, 우리들생명과학은 수학교육업체 휴브레인을 흡수합병하며 교육프랜차이즈 사업에 진출했다.

"신약개발에만 전념할 수 없는 구조, 제약업계 비참한 실태 반영"

이 같은 제약업계의 사업영역 확장과 관련해 업계 관계자는 "사업의 포트폴리오나 지속가능성 등을 고려한 전략적 측면에서 사업다각화는 건전하지만, 현 제약업계의 사업다각화는 생존이 벼랑 끝에 몰리면서 나온 발악과도 같다"고 표현했다.

지속적인 약가인하에 회사 발전을 위한 자구책에 불과하며, 정부의 전향적인 패러다임 변경이 없다면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다.

그는 "시장에서의 정당한 가격 등을 통해 성공적인 제품 매출을 기반으로 R&D에 재투자 되는 것이 소위 말하는 '선순환' 구조이자 '생태계'인데, 다른 사업의 수익을 신약개발에 투자한다는 것은 기형적인 것으로, 지속 가능성이 현저히 낮을 것이다"고 지적했다.

혁신형제약기업에 포함된 연구개발 중심의 제약사 관계자는 "다른 사업부문에 진출해 수익을 거두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단지 현 상황이 어렵고 이쪽이 될 성 싶어 쉽게 진입하면 큰 낭패를 볼 것이다"고 꼬집었다.

기존 의약 관련 전문지식을 활용해 차별화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유통 등에 따른 진입장벽이 존재하고, 기존 그 분야에서 사업을 해오던 회사와 경쟁해서 성공하기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다른 제약사 관계자는 "우리도 최근 사업영역을 넓히고 있다"며 "신약개발에만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업계 구조가 문제"라고 털어놨다.

줄기세포화장품, 제대혈 보관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는 바이오의약품 업체에서도 사업다각화에 대해 "바이오 기업의 경우 연구비 투자가 많고 출시된 제품의 조기 시장 정착이 쉽지 않아 연관 사업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른 사업에서 올린 수익을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가 될 여지는 충분하지만, 부가 사업의 규제가 적고 영업이익률이 높을 경우 자칫 주객이 전도돼 발전을 저해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어느 회사든 주력 사업에 바탕을 두고 가지치는 형식으로 연관 산업을 이끄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미래 변화에 사업다각화 대처 당연"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여재천 사무국장은 제약사들의 사업다각화 움직임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국적제약사의 경우를 봐도 의약품 분야의 비중이 100%인 것은 아니며, 기업의 미래투자 방향이 꼭 의약품만 있지 않다는 것.

여 사무국장은 "영업성과가 악화일로면 기업이 유지가 안 된다. 제약사가 음료, 부동산까지 하는 것도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라며, "기업이 일단 커야 투자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제약산업도 신수종사업(미래를 이끌 유망사업)을 통한 한계극복이 필요하며,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방어적 사업다각화(defensive diversification) 전략이 요구된다고 조언했다.

또 이를 통해 기업이 R&D에 투자하고 신약을 개발할 때 정부의 가치보장이 담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약가인하가 반복되니까 기업들이 성장하기 전에 미리 싹이 잘려버린다"며 "약제비 관리정책에 있어서 신약가치를 높여준다면 미래를 설계할 연구개발중심의 혁신적인 회사가 탄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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