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13년 12월 5일
장소
서울 모처 한정식집
참석자
진행: 홍성수 원장 (연세이비인후과, 의료윤리연구회 회장)
김성원 원장 (서울가정의원, 대한의원협회 고문)
최주현 봉직의 (S안과, 대한전공의협의회 사무총장)
안상준 공보의 (안산시 단원구 보건소, 경기도 의사회 정책이사)
김이연 전공의 (고려대안암병원 가정의학과, 대한전공의협의회 편집이사)


손종관 편집국장 어려움 속에서도 환자를 위해 오늘도 열심히 뛰고 계신 일선 현장의 의사분들, 올 한해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원격의료, 아청법, 리베이트 쌍벌제 등 유독 의료계를 옥죄는 제도가 쏟아진 한해였습니다. 초음파 급여화, 포괄수가제 전면 시행 등으로 수익성마저 악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각자도생'이라는 말로 대변될 정도로 의료계 내부에서조차 의견이 합치되지 못한 채, 상당한 입장차가 확인되고 있습니다. 국민이 바라보는 모습을 살펴보기 이전에 의사 자신들이 바라보는 의사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요? 미래 의사들의 바람직한 의사상을 모색하는 시간으로 2013년 송년특집 소주토크를 기획해 봤습니다.


의대 입학 전 꿈 꿨던 의사 현실에선 다른 모습
정부는 전문가 의견 안듣고 제도 추진
의사들은 잘 몰라 대응 못해


'各自圖生'…의료계 내부 의견 제각각

홍성수 원장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1992년도부터 성남시에 개원한 21년차 개원의입니다. 어느 한 해 다사다난하지 않은 적이 없지만 올해 역시 쉽지 않은 개원 환경이었습니다.

단적인 예로 30여 년 동안 저수가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정부의 묵인 하에 관행이었고, 법률을 제정할 때 당사자인 의사 단체와의 논의도 부족했고, 충분한 계도 기간이나 유예 기간도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모 제약 리베이트 쌍벌제 사건으로 졸지에 8000여명의 의사가 범법자가 되었죠. 그렇다고 단순히 처벌이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봅니다.

바람직한 의사상이란 것이 의사들만의 노력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죠. 의료 전반은 국가의 의료제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사회가 국가가 국민이 원하는 의사상이 있다면 그 합당한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도 역시 사회, 국가, 국민의 책임인데요. 선배 의사로서 현실에 안주하여 상황 파악을 못 했고, 대비를 못 했고, 역할을 다 하지 못 했음을 인정합니다. 권한을 갖기 위해 의무를 다하되 국가 의료 정책을 미리 살펴볼 수 있는 관심과 지혜 그리고 불합리한 제도에 항의하고 무력화시킬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봅니다.

김성원 원장 대학병원에서 펠로우 2년, 조교수 6년 등을 마치고 10년 전 개원을 할 때까지만 해도 의료현안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습니다. 갈수록 불합리한 일을 겪더라도 특별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다 2년 전 전의총 회원으로 참석하면서 서서히 관심 갖기 시작했고, 전의총 대표직을 맡으면서 의료제도에 대한 문제가 정말 많다고 느끼게 됐습니다.

우리나라 의료제도는 그야말로 꼬일대로 꼬여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 영국 등은 워낙 의사의 역사가 오래되고 독립적으로 자정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의사라는 전문직업성이 성장하지 못한 채 정부에 일방적으로 끌려오기만 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폭탄이 떨어지듯, 제도적 이슈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의약분업에 이어 올해만 해도 리베이트 쌍벌제, 원격의료 등 개별 사안 하나하나 모두 의사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큽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우리 의사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정부가 주도해서 밀어붙인다고 이대로 끌려가기만 해야 할까요?

올해 리베이트 쌍벌제 위헌소송을 준비하는 과정도 매우 힘들었습니다. 제도 하나가 만들어지면 바꾸기가 너무 어렵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난해할 때가 많습니다. '의사'라는 이름으로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이 특별한 이유입니다.
















최주현 봉직의 대한전공의협의회 사무총장이자 일선 안과에서 봉직의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한 번은 의대생을 모아놓고 토론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의사들이 사회적으로 좋은 대우를 받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물어봤지요. 돌아오는 대답은 "의대를 오래 다녔고 학비가 비싸 투자를 많이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의대에 입학할 때는 분명히 기대심리가 있습니다. 어렵다고 말하는 것은 이전 세대 의사들에 비해 수입이 줄어드는 반면, 숫자는 점점 늘어나면서 경쟁해야 하는 현실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20, 30대의 젊은 의사들은 1960~1970년대에 잘나가던 선배 의사들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과거의 의사들이 좋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엔 의사수가 소수에 불과한데 의료수요는 늘어났고, 진단기기들도 막 보급이 되기 시작했기 때문이지요. 대신 현재 의사들은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기에 좋은 시점이 라고 봅니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간 손놓고 있던 일들을 돌아볼 수 있게 된 계기가 아닐까요? 보다 객관적이고 발전적인 의사집단을 만들기 위해 미약했던 의사들의 관심을 이끌어낼 방법을 고민할 시점입니다.

김이연 전공의 현재 전문의 시험을 앞둔 전공의입니다. 2000년 의약분업 이후 입학한 세대입니다. 뚜렷한 주관이나 롤모델에 의해 의대에 온 친구들도 있지만, 다수는 주변에서 권하는 피상적인 의사의 이미지를 가지고 의대에 들어왔다고 봅니다. 그다지 큰 환상이 없던 저도 의사가 되어 접한 현실은 사뭇 달랐습니다. 전공의로 환자들을 만나면서 잠을 못자고 밥을 못 먹으면서 고된 근무를 하지만 위험하고 유쾌하지 못한 기억도 많습니다. 의사라는 직업이 주는 만족감은 물론 기본적인 전문직업성에 대해 고민하게 됐습니다. 전공의가 끝나도 거대 자본에 잠식돼 있는 현실이 그리 녹록치 않아 보입니다.

안상준 공보의 전공의협의회장을 맡았었고 현재 안산에서 공보의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경영학을 전공하다가 다시 의대에 입학했습니다. 처음엔 법학을 공부하려고 했는데 최종 선택을 바꿨습니다.
법관은 어느 한쪽에게는 잘못했다고 가혹한 벌을 줘야 하지만, 의사는 열심히 하면 할수록 누구에게나 이로운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현실은 겨울철 찬바람처럼 냉혹하기만 하네요. 그래도 이제 시작이고 아직 희망이 없다고 보진 않습니다. 사회 전반의 어려움은 마찬가지니까요.

스스로 냉철해진 걸까 의사 자존감 추락
의사 전문직업성 성장도 되기 전에
사회적 이슈 곳곳서 터져

의료제도는 의사상 정립과 밀접

홍성수 의사상 정립과 밀접할 수 밖에 없는 의료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볼까요? 정부는 의사들의 전문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다그치고 따라오라고만 합니다. 화가 나기도 하고 심지어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여기에 길들여지는 것이 가장 속상합니다. 그렇다고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여건도 아닙니다.

주수호 의협회장 시절 6개월간 보험이사를 했습니다. 하루에 참석해야 할 회의가 예닐곱 건이고, 공단, 심평원, 복지부, 보사연, 시민단체 등 만나서 명함을 주고받은 사람이 400여명이나 되더군요. 의협 보험위원회에서 활동하는 40명 정도가 환자 보랴, 회의 참석하랴 이리 뛰고 저리 뛰었습니다. 과연 하루 종일 정책과 제도만 연구하는 그들을 당해낼 수 있을까요? 영화 '300'의 스파르타 같은 것이죠.

김성원 각종 제도 추진이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정부가 제도를 시행할 때 연구용역을 맡기고 시범사업을 하더라도 의사들은 잘 모릅니다. 만성질환관리제 시범사업 당시에도 일부 의사들이 참여하지 말라고 해도, 분명 참여하는 의원들이 있었지요. 같은 의사들이 정부를 도와준 셈이지요. 의사들은 반대논리를 면밀히 준비하지 못한 반면, 정부는 철저히 준비해서 제도를 들고 나옵니다. 일부 의사들이 사전에 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해 대응책을 마련하기엔 아직까지 역량이 부족해 보입니다. 일단 당장 터지는 현안을 막느라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홍성수 의사가 의협에서 의료 전반의 모든 문제를 정리하고 대응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이제부터라도 의료정책연구소 등을 활용해 의사가 아니더라도 우수한 의료정책 전문가, 법률 전문가를 키워 의사를 대신하여 활동하도록 해야 합니다. 협상이건 논쟁이건 국민이나 정부에 제대로 설득하고 주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후배 의사 여러분들은 제도에 관심 갖고 지켜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그리고 제도가 시행되고 5년, 10년 이후에 발생할 문제의 소지가 없는지 면밀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의약분업되기 전이 오히려 환자들에게 가장 바람직한 의사상을 보여줬던 건 아니었나 싶네요. 당시 유일한 관심사는 짧은 시간 안에 환자에게 확실한 인상을 주어 동기유발을 하면서 병을 잘 고치는 의사로 기억에 남을 것인지, 환자를 잘 보는 것만이 관건이었지요.

의약분업을 계기로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그렇게 중요한 일이 그렇게 오랜 기간에 걸쳐 계획되고 추진되고 시범 사업을 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 파급효과가 엄청나다는 것조차 제 주변의 어느 누구도 알지 못 했다는 겁니다. 제 생각에 복지부는 영국식의 주치의제, 인두제, 총액계약제를 향해 가는데 다만 동일한 목표를 조금 다른 방법론적으로 성취하기 위해 의사들의 반감이 비교적 덜한 만성질환관리제, 신포괄수가제, 강제 성분명 처방으로 우회해서 추진하고 있다고 봅니다.

최주현 중요한 것은 제도가 실시되더라도 의사들이 이에 대처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의사사회에서 공유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는 상태에서 의료계 내부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의사들"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같은 코스를 밟았다는 것 외에는 사실은 유대관계가 별로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평범한 의사들이 다른 의사들의 어려움을 묻거나 논의하는 기회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만큼 내부적인 합의를 이끌어낼 수도 없었습니다.

안상준 의협의 위상 재정립이 필요한 시기라고 봅니다. 의협이 회원들의 이익을 극대화 해야 하는 단체인지, 아니면 사회에 공헌하는 전문가 역할을 할 수 있는 집단으로 자리 매김을 해야 하는지 회원들의 의견을 모아야 합니다. 또 좋은 지도자가 이끌 방향 설정부터 다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협은 이 두가지를 모두 가져가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어렵고, 양쪽의 입장을 얼마나 조화롭게 만족시키느냐가 중요할 것입니다. 심도있는 고민없이 단순히 현재 억울한 감정만으로 의사들의 주장만을 이야기 한다면 오히려 국민과 사회의 역풍을 맞을 수 있고, 직업 전문성의 근본인 사회와의 계약을 통해 얻은 자율성과 권위를 추락시킬 수도 있다고 판단됩니다.

김이연 정부 연구용역에는 A, B, C 등의 대안이 있고 이해당사자가 각각의 대안을 반대하면 또 다른 대안을 제시합니다. 의료계의 의사를 물었을 때 무조건 반대를 하고 협의가 잘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의사들이 파업을 하더라도 의사집단의 자체적인 합의를 이끌어내는 행동이 선행돼야 합니다. 대국민적으로 사회적 영향력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사회 스스로가 미국식, 영국식 등의 의료제도를 원하는지 합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봅니다.

최주현 지금은 하나의 의사가 어떤 것을 추구하는지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합니다. 병원 따로, 개원가 따로, 진료과별 따로, 세대별 따로인 지금의 '각자도생’에서는 합의점을 찾기 어렵습니다. 아울러 현재 보건의료의 가장 큰 문제는 건강 주체로서의 '개인'이 부재하다는 점입니다. 의사 등 전문직의 위기도 초래했습니다. 의사 윤리에 맞지 않는 선택과 결정을 내리는 이유는 그저 집단의 이익을 고려하는데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을 사회적 윤리의 틀에 가두기보다 전문가를 속박하는 굴레에 대해 개인 스스로 논의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성원 사실 절박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우선적으로 의사들의 여론을 환기시키고 제도적인 이슈를 끊임없이 공론화한 다음,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끌어갈 수 있도록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의료계에는 여러 가지 직종들이 있지만, 만족하고 있는 집단은 아무도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교수들이라고 만족하는 것은 아니고, 개원의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의사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을 보면 하루 환자 20~30명에 그치는 개원의들도 많더군요. 폐업을 고려하거나 3~4번째 개원이라는 고민도 있고요. 그만큼 의사 중에서도 어려운 분들이 상당히 많아 보입니다. 교수들도 실적, 수익에 연연하다 보니 어렵다는 말이 쉽게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다양한 직역을 하나로 잘 뭉치게만 한다면,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것이 아닌 변화를 주도할 수도 있을텐데요.

의료계도 정책 전문가 키워 정책 협상 주자로 세워야
제도 이슈 끌려가지 말고 선제적 대안 제시
의사 주장만 내세워선 국민 공감 못 얻어


김이연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에 있어 의료에 있어서는 환자가 있기 때문에 의사가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하지만 현실이 본질을 잊어버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전공의도 환자들에 집중하면서 최선을 다하지만, 그저 눈에 보이는 수치, 실적으로 평가받곤 하죠. 환자들도 마치 백화점에 온 것처럼 돈을 주고 받는 당연한 서비스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의사라는 직업의 자아존중감이 예전에 비해 낮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어떻게 보면 냉정하고 어떻게 보면 우울한 현실이네요.

김성원 국가 주도 의료 서비스로 NHS로 대표되는 영국은 GDP의 9.5%인 200조원에 달하는 비용을 의료비로 지출합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영국과 인구는 비슷하면서도 GDP 7.6%인 90조원 정도 지출에 그치고 있죠.

국가가 아닌 민간이 의료의 93%를 담당하면서 우리나라 국민들이 받는 의료의 질이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영국은 웬만한 수술 하나를 받으려면 6개월에서 1년을 기다린다고 하더군요. 우리나라는 5분 거리의 병의원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진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건강보험 재정 대비 효율적인 의료서비스를 하는 나라입니다. 한편으론 그만큼 의사들이 대우를 받지 못하고 희생하고 있다고 볼 수 있죠.

최주현 현재 의료계는 내부적인 문제, 외부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적인 단계는 내부적으로 합의해야 하고, 그 다음으로 외부에서 정당성을 획득해야 합니다. 제도의 문제는 외부의 문제라고 봅니다.

의사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말은 전문 직업성과 같은 말이라고 봅니다. 전문직 위상은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노력의 산물입니다. 즉, 의사는 환자가 있기에 가치가 있기 마련이고, 의사 리더십도 진료 현장에서 나옵니다. 의사가 경영자로서 보다는 전문가로서, 직역별 직종별 세대별로 나뉘기보다는 하나의 의사로서 신뢰를 회복할 때 위상도 높아질 것입니다.

홍성수 국민이 바라보는 의사상은 진료실에서의 직접 대면 과정에 의해 형성되고 각인된다고 봅니다. 만약 진료 시간이 20분 정도 확보된다면 의사-환자 사이는 소통과 충분한 신뢰관계가 형성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저수가 상황에서 의사는 3분 안에 진료를 마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3시간 대기, 3분 진료'가 왜 의사들 책임입니까? 3분이 아닌 20분 정도의 시간을 확보해 준다면, 의사들은 존경받고 환자와 좋은 라포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의료 만악의 근원인 왜곡된 저수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 의사상이 자연스레 정립되는 문제해결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입니다.

최주현 진료시간을 20분 이상으로 설정해야 한다면, 과연 누가 규제할 수 있을까요? 이것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실제로 20분 이상이라고 정해놓더라도 어느 누군가는 같은 시간에 더 많은 환자를 보게 될 거에요. 그만큼 내부적인 합의와 자율 규제가 필요할 것입니다.

홍성수 내부적인 합의는 아마 어려울 것입니다. 탁월하고 뜻깊은 지도자 그룹이 좋은 본보기가 돼 반대하는 의사들을 설득시켜 나가야 합니다. 의사들 각자 서로가 서로를 설득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합니다. 차등수가제를 예로 들면 격오지에 있는 의사들은 찬성할지 모릅니다. 격오지에는 환자가 별로 없어도 의사가 필요한 대신, 도시에서는 환자수 75명을 넘으면 수가가 깎이게 됩니다. 그렇다고 차등수가제에 걸리게 되면 대기실에서 마냥 기다리는 환자를 외면할 수는 없지 않나요?

의대 교육부터 깊이 생각하는 훈련시켜야

안상준 최근 들어 사회 전반이 마찬가지지만, 의료계 문제 역시 경제논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아 보입니다. 미국은 GDP가 약 5만달러인데 비해 아직 2만달러에 그친 우리나라에서는 경제성장 쪽으로 관점이 더 치우칠 수 밖에 없습니다.

의사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의대를 오래 다녔고 등록금이 비싸고, 위험부담을 혼자 감당하며 자비 들여 개업하고, 노후 보장이나 혜택도 없으니 현재 높은 임금을 받아야 각자 살길을 준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논리가 일관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만약 경제 논리가 가장 중요하다면, 국가도 의료를 시장에 맡겨야 하고, 의료계도 양육강식의 생태에 따라 능력이 부족하면 파산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의료계 내에서 성장과 분배, 경제 논리와 정의 사이의 고민을 통한 적절한 합의를 이루어야 합니다.

또한 대부분의 의료 정책은 보사연, KDI 등 정부 차원에서 10년 전부터 서서히 준비를 해옵니다. 의사 입장에서는 문제가 터져야 관심을 갖기 마련이지만, 벌어진 이상 손을 쓰기가 힘듭니다. 그러기에 10년 뒤를 내다보는 아젠다를 선점하고 의료계와 주도해 정부와 머리를 맞대어 함께 고민해 나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선 과거의 문제와 미래의 문제를 이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쪽에서는 현재, 과거에 이미 터진 문제에 대해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하며, 다른 한쪽에서는 10년 후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아울러 국민들의 설득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료계가 직시하고 거시적 차원에서 사회와 국민과의 소통을 통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바람직한 의사상은 의사 생각대로 세워지지 않아
환자와 신뢰관계 형성이 먼저
내부 합의 후 외부 정당성 얻어야
투쟁 일변도 대처 방식은 비합리적


김이연 입장 차가 있는 상황에서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듭니다. 영웅적 리더가 나타나더라도 당장 해결되긴 어려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 세대에 걸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을 때 해결할 수 있는 접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국민들은 사실 의사에 대해 판타지에 가까운 긍정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메디컬드라마는 망하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어찌 보면 긍정적인 모습이 현실에서 충족되지 않기 때문에 반대급부도 많이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영국처럼 의사가 사회적으로 필수적인 요소이고 사회 건강에 대한 주도적인 입장을 취하는 행동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의사들은 긍정적인 모습을 적극적으로 부각하지 못하고 그저 알아주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하고 그 외의 문제는 한 단계씩 논의해 나가면 어떨까요?

예를 들면, 최근 문제가 된 미세먼지가 늘어나는 현상과 이에 따른 건강 상 위험요인을 전문가적 관점으로 해석해주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의사들이 사회적인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고, 발전된 사회에서 직업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하나의 전략이 될 것입니다. 권위를 내세우고 사회가 알아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시대적으로 합당하지 않습니다.

안상준 지금부터 합리적인 논의를 시작하고 사회, 국가와 함께 미래를 준비해 나가면 되지 않을까요? 지금 시점이 단순히 수익에 연연하는 것이 아닌, 우리가 만들 수 있는 바람직한 의사상을 정립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로 보입니다.

최주현 2013년도 의사들의 4자성어는 그야말로 '각자도생'이었습니다. 현재 의사들의 모습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무엇이 어려운지도 모르고, 어려움이 공유되지도 못한 채 각자 먹고살기에 바빴습니다. 사실 의사 외에 모든 집단이 다 마찬가지 아닐까 합니다.

의사는 사회적인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부분에서 서로가 서로를 위해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각자도생이 아닌,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가치를 심어줄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직역별, 세대별 의사들이 서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늘어나야 합니다.

김이연 의대생 시절부터 의사란 직업이 사회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으면 합니다. 단순히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의사를 선택한 것은 아니니까요. 어떤 방식이든, 어떤 제도를 택하든지 간에 개별 의사 혼자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가치를 의사 전체가 이야기하는 기회가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동시에 국민들과도 함께 하면서 의사 스스로 건강이 허락하는 한, 환자들의 건강을 끝까지 책임지는 그런 의사로 남고 싶습니다.

홍성수 영국에서는 아무리 오래 예약 대기를 해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더군요. 급성 질환은 그냥 참고 견디는 것이 한편으로는 딱해 보이기도 합니다. 영국 일차의료기관은 상담 위주의 게이트키퍼로서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전체 의료비용을 떨어트리는 것은 맞습니다. 우리나라도 일차의료기관이 제 역할을 하고 일선 개원원장이 치료가 아니라 예방과 관리 차원의 진정한 의미의 의사 역할을 할 수 있기를 희망 합니다.

서로에게 관심 갖고 미래 대비할 때

최주현 국가 단위에서 각각의 문화가 다르고 국민이 다르고 역사가 다르기 마련입니다. 우리 스스로 무엇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이 없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연 공공의료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깁니다. 대한민국의 공공 의료 공급은 OECD 국가 대비 최저 수준입니다. 한편으로 우리나라만큼 능력있는 의사들이 많은 곳은 거의 없습니다. 그만큼 의사들이 답을 내줬으면 좋겠습니다.

















정부는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급증하는 진료비를 억제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합니다. 의사들은 상황에 대한 이해없이 본인 소유의 병의원은 성장해야 한다고 말하지요. 총의료비는 줄여야 하는데 이견이 없지만, 본인 병의원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만약 정부가 지배하고 간섭하는 것이 싫다는 이유로 현재 건보재정에 해당하는 90조원을 의사들한테 준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과연 의사들이 자율적으로 관리 배분할 수 있을까요?

김성원 90조원을 묶어 나눠 가지라는 것이 곧 총액계약제가 될 뿐입니다. 의사들은 자유로운 시장 형성을 꿈꾸고 있습니다. 규제가 과도하고 개인의 사유재산마저 침해하기 때문에 싫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제 시작이라고 봅니다. 앞으로 젊은의사들이 5년, 10년 이상 노력하고 고민하다 보면 충분히 좋은 결론에 도달할 날이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듯, 지금부터라도 의사들 스스로 제도 현안에 대해 관심갖고 한 자리에 모여 논의하는 일이 늘어나길 바랍니다.

홍성수 연령과 직역은 각자 달라도 많은 이야기를 공유하고 비슷한 생각을 확인할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기획을 제안해 주신 메디칼업저버에도 감사합니다.

환자분들이 치료받고 웃으면서 진료실을 나서는 것이 의사 행복의 원천이 아닐까요? 환자가 건네주는 작은 마음의 선물에 가슴이 뭉클하기도 합니다. 의사들이 진료를 통해 스스로 보람을 찾으면서 동시에 경제적으로 전전긍긍하지 않아야 환자를 위한 최선의 진료에 집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가가 저수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끝까지 고수한다면 결국 환자들, 국민이 불행해집니다. 하지만 당장 보험료가 인상될 수도, 건보재정이 늘어나기도 힘듭니다. 의사들이 해결할 수도 진료실에서 각자가 다 짊어지고 갈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미래의 의사상이라기 보다는 각자도생을 하더라도 흐름을 알고, 냄비처럼 끓어오르고 금방 식는 분노가 아닌 관심과 각오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의료 제도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토대로 쌓은 역량이 다음 세대의 보다 나은 삶의 질과 행복의 물꼬를 틀 수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희망적인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할 여러가지 관점을 공유하고 내면화해 외연을 넓혀간다면 결국은 각자가 아니라 우리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환자, 국민을 위한 올바른 의료의 여건을 원한다면, 그리고 존경받는 의사상을 정립하려면 각자가 행복한 의사가 되는 길 뿐입니다. 이는 의사 본인과 국가와 사회가 합의하고 합심해서 이뤄내야 하는 소명이라고 봅니다. 국가와 사회는 의사가 수익에 연연하지 않도록 보호해주고 의사는 최선의 진료를 다하겠다고 다짐한다면, 정말 의사를 포함한 모든 국민이 다 안심하고 행복하고 건강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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