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사회에서는 기다림이 대체로 상황 자체에 영향을 미쳐 관심과 기운을 여러 갈래로 나누는 산만한 감정, 다시 말해 '현대식 지루함'을 동반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지루하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아무 생각 없이 하는 양치질, 출근길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일하다 말고 잠깐 '멍을 때리는' 순간. 보통 우리는 이런 무심히 지나치는 일상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동안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주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무시하고 지나쳤던 순간들에 호기심을 갖고 최초로 학문적으로 접근한 엉뚱하고 기발한 학자들이 있다. 문화 및 미디어 연구학자인 스웨덴 우메아대 빌리 엔 교수와 유럽 인류학을 가르치고 있는 스웨덴 룬트대 오르바르 뢰프그렌 교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에도 실은 아주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며, 그 뒤에 숨은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또 금을 밟지 않고 보도블록 걷기, 노래 한 곡이 끝나기 전에 목적지에 도착하기와 같이 누가나 한번쯤 해봤음직한 자기 혼자만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믿는 유치하고 비밀스러운 순간들 역시 결코 개인적인 일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으레 하는 행동이고 동시대의 문화를 반영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과연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무슨 의미가 숨어 있다는 것일까? 두 사람은 전 세계 문학작품과 예술작품을 아우르는 방대한 자료와 참고문헌, 관찰, 각종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 이면에서 일어나는 흥미로운 일들과 문화·사회적 의미를 분석했다.

저자들은 크게 기다림, 일상, 공상의 범주로 분류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순간을 설명하고 있다. 기다림 연구에서는 사람들이 기다리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즉 다른 일로 시간을 때우는지 아니면 더디게 흘러가는 시계에 온 정신을 집중하는지를 중점적으로 다뤘다.

일상적 습관은 일부러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몸이 저절로 행하는 일들을 말하는데, 이 또한 무심코 지나치는 행위들의 집합이지만 시간을 절약하고 머리 아픈 선택의 순간들을 줄여 더 중요한 일을 처리할 기회를 만든다고 설명했다.

흔히 개인적이며, 게으름과 엉뚱함 혹은 현실도피의 수단으로 여겨져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행위로 치부돼온 공상도 개인의 근심과 소망이 온갖 사회적 원료와 뒤섞인 형태로 나타난다고 했다. 이는 주위 환경과의 상호작용의 결과이기도 하다.

생산성에 목매고 속도를 중시하며 멀티태스킹을 당연하게 여기는 현대사회의 분위기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은 사소하고 하찮게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기다림과 일상, 공상은 현실을 벗어나려는 행위가 아니라 현실을 새로운 시선을 바라보거나 변화를 계획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혹시 아는가, 그 안에 혁신이 숨어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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