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앞에서는 제각각 목소리

[기획: 의사는 의사와 싸운다]
1. 대학교수, 봉직의, 개원의간 갈등 심화
2. 함께 가야 멀리 간다 - 의협만이라도 중장기 그림 그리자

의료계와 정부와의 갈등이 문제라지만 실제로는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 대학병원과 개원가, 진료과 등 결국 의사들 간의 갈등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과거에는 '의사'라는 그 이름만으로 단단한 유대감을 형성하고 하나로 뭉쳤지만 지금은 관계의 끈이 헐거워져 여기저기서 파열음을 보이고 있다.

개원의는 대학병원이 동네의원을 침범하는 현실이 두렵고, 봉직의는 수익에 연연하는 보직자가 괴롭게 느껴지는 현실이다. 교수들도 논문에, 진료실적에 무리한 압박을 받는 상황이다. 게다가 학회에서는 진료과의 영역을 구축하지 않으면 전공의를 받을 수 없고, 고유의 영역을 지킬 수 없는 절박한 현실이다.

과거에는 선배의사가 개원을 하고 있는 건물에는 개원을 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었지만 지금은 바로 옆 자리에 같은 진료과를 개원하는 등 의료계에는 선후배의 끈끈한 정이 사라진지 오래다. 오직 생존만이 존재할 뿐이다. 밥벌이의 절박함이 의사들 사이에 끼어든 형국이다.

몇 년 전부터 시작된 대학병원 교수들과 개원가들의 서로에 대한 무관심은 이미 심각한 상황이다. 대학병원에 있는 교수들은 개원의들이 호황일 때는 아무런 얘기가 없다, 불황이라고 불평을 늘어놓는다고 말한다.

대학병원의 모 교수는 "개원가의 어려움은 알고 있다. 하지만 개원가 사정을 대학에 있는 의사들이 모두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며 "개원의들은 자신이 원해 개원을 선택한 것이므로 그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서울의 한 개원의는 "의사들끼리 소통 안 되고 할 시간도 없다"며 "살기 어려워져 그런 것 같다. 직원들 꾸리고 병원 경영 해봐야 대학에 있는 사람들도 우리 심정을 이해할 것이다. 급여 받는 사람들은 이해 못한다"고 토로했다. 또 "정부는 저수가를 해결해 환자한테 비급여 뒤집어씌우지 않아도 병원 직원들 월급 챙겨주고 월세 안 밀리고 집에 가족들에게 생활비 줄 수 있게끔 해줘야 한다"고 현실을 토로했다.

진료과 간의 갈등은 훨씬 현실적이다. 서로 다른 진료과에 대한 존중이라곤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모 대학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정형외과랑은 이미 등을 졌다. 같이 협업하면 많은 진료도 할 수 있고, 여러모로 의학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지만 이익에 눈이 멀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서로 헐뜯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이에 대해 정형외과 김 모 교수는 "신경외과 의사들 중 미꾸라지가 많다. 신경외과 모든 선생님들이 그런 것은 아닌데 이익 때문에 환자에게 피해갈 수 있는 시술을 한다. 돈만 벌면 그만이란 생각에서다"라고 말했다.

갈등은 같은 진료과 내에서도 존재한다. 신경외과 김 모 교수는 "돈을 이미 넉넉히 번 교수는 '그 수술 하지마라 저 수술 하지마라' 간섭하며 현재 교수들만 어렵게 하고 있다"며 "책임감도 없는 분들이다. 심지어 자기가 만든 시술로 돈 벌만큼 벌고. 후배도 잔뜩 양성하고 몇 년 뒤 부작용 많다, 하면 안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고 현실을 털어놨다.

다른 진료과에 유리하면 불만?

의협과 병협의 갈등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의료계를 위해 하나된 목소리른 낸 적이 없을 정도로 두 단체의 골은 깊다. 최근 원격진료나 15일 의협이주도하는 의사궐기대회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간극이 크다.

과거 대통령 후보자에게 의료계의 요구사항을 결정하는 자리에 참석했던 대학병원의 모 교수는 "의협 따로 병협 따로 자기들이 원하는 안을 제시하고 결국 따로 안을 결정 했다"며 "이후 정부는 A안은 의협이 반대해 안 되고, B안은 병협이 반대해 안 되고 하는 식의 의사소통으로 의료계는 결국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며 각 단체의 이기심을 지적했다.

이런 의사들 끼리의 분열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각은 차갑다. 한 정부 관계자는 "초음파 회의를 할 때 의사들이 자기 이익만 챙긴다는 것을 여실히 느꼈다. 자기 진료과는 많이 달라고 아우성이다가도 다른 과에서 발언 할 때는 조용하다. 심지어는 도와주지도 않는다. 나 몰라라 하는 식이다"라며 "다른 과에 유리하게 될 때는 불만 섞이게 말하고, 우리도 가산해 달라는 식으로 발언한다"라고 꼬집었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의사들은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노력을 많이 했을텐데, 만족할만한 보상을 얻지 못하는 것 같다"며 "그러다보니 의사들 끼리 비교하고,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시기하는 것 같다"고 말을 아꼈다.

의사들은 왜 이런 상황에까지 처하게 됐을까? 전문가들은 의사들이 공동의 목표를 위해 뭉치기보다는 대학병원, 봉직의, 개원의 등으로 나눠 자기가 속한 병원에 따라, 진료과에 따라 이익을 중심으로 뭉치고 있어 의료계가 분열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정부가 의사들이 쪼개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의사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도 문제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삼정KPMG 김형진 상무는 병원과 의협 등이 각각의 성격이 있는데 같은 목소리를 내라고 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병협은 병원을 소유한 의사들이고, 의협은 의사 개인의 성격이 더 짙은 곳이라 합의점을 도출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또 대학병원, 중소병원, 개원가 등이 같은 생각을 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라 말한다.

김 상무는 "개원가에서 급여과와 비급여과는 서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성형외과 등 비보험과에서 보험과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비난할 수 없다"며 "정부가 이런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관심이 없다고, 같은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의료가 정치에 휘둘리고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서울대병원 내과 허대석 교수는 국민이 보장성이 강화됐다고 느끼는 것은 언제든지 빅5병원에 입원할 수 있고, 명의에게 수술받을 수 있고 기다리지 않고 다인실에 갈 수 있을 때다.

허 교수는 "이렇게 되려면 빅5에 있는 외과의사가 하루 10명씩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정치인들은 단순하게 큰 그림을 못보고 단지 상급병실료, 특진비 등에만 손을 대 병원을 당황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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