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 환자의 혈압조절 목표치와 관련해서는 학계의 논쟁이 있었다. 심혈관질환 위험도가 높을수록 혈압을 더 낮추면 좋지 않겠느냐는 ‘The lower, the better’ 개념과 적정 수준 이하의 공격적인 혈압강하가 위험 대비 혜택을 부여하지 못한다는 ‘J-shaped relationship’ 이론이 팽팽하게 맞서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ACCORD나 INVEST 연구 등을 통해 당뇨병이나 신장질환 등을 동반한 심혈관질환 고위험군 환자에서 집중 혈압조절의 혜택이 미미한 것으로 보고되면서, 다소 완화된 목표치가 제시되고 있다. 2013년 대한고혈압학회 고혈압 진료지침이 발표 전부터 주목을 받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당뇨병이나 신장질환 등을 동반한 고혈압 환자에서 목표치가 어떻게 권고될지 관심이 컸다.

지침은 전반적으로 고혈압 환자의 혈압 목표치를 140/90mmHg 미만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당뇨병을 동반한 고혈압 환자의 목표치는 변화를 수용했다. 130/80mmHg으로 제시했던 기존의 목표치를 140/85mmHg 미만으로 완화해 권고한 것. 이러한 변화는 당뇨병 환자에서 공격적인 수축기혈압 조절의 혜택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제한적이라는데 근거하고 있다. 만성 신장질환을 동반한 고혈압 환자에게도 당뇨병과 무관하게 수축기혈압을 140mmHg 미만으로 조절할 것을 주문하며 치료의 강도를 완화했다. 다만 알부민뇨가 있는 경우에는 130mmHg 미만으로 좀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다.

노인 고혈압 환자의 경우에는 이완기혈압을 60mmHg 이상으로 유지하면서, 수축기혈압은 140~150mmHg 선에 맞추도록 권고했다. 노인 고혈압에서 혈압강하에 의한 효과가 뚜렸하지만 140mmHg 미만으로 낮추기가 쉽지 않고, 140mmHg 미만과 150mmHg 미만으로 조절했을 때의 예후에 차이가 없다는 데 기반했다. 뇌졸중 환자의 수축기혈압 목표치 역시 140mmHg 미만으로 권고했다. 수축기혈압을 130mmHg 미만으로 낮춘 임상연구에서 뚜렷한 이득이 없었다는데 근거하고 있다.

관상동맥질환을 가진 고혈압 환자에서도 130mmHg 미만 조절 연구에서 2차예방 효과에 대한 일
관성이 부족하다며 140mmHg 미만으로 낮출 것을 주문했다.


“혜택 대비 위험 고려돼야”
미국당뇨병학회(ADA)는 올해 초 발표한 가이드라인에서 당뇨병 환자의 혈압을 140/80mmHg 미만으로 조절하도록 주문했다. 130/80mmHg 미만에서 수축기혈압 목표치를 완화해 권고한 것으로 이전의 컨센서스와 배치된다. 학회는 “당뇨병과 고혈압이 동반된 환자에서 수축기혈압 130mmHg 미만 조절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제한적이며, 혜택 대비 부작용 증가의 위험이 고려돼야 한다”고 밝혔다.

ADA의 권고안 조정은 당뇨병 환자에서 적극적인 수축기혈압 조절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제한적이라는데 기반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은 “무작위·대조군 임상시험(RCT)에서 당뇨병 환자의 혈압을 140/80mmHg 미만으로 조절했을 때 관상동맥질환·뇌졸중·신경병증 감소의 혜택이 보고됐지만, 이 보다 더 낮출 경우의 혜택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며 권고안 조정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수축기혈압 130mmHg 미만으로의 조절에 대한 권고는 RCT가 아니라 관찰연구에 근거한 것”이라는 말이다.

ADA 가이드라인은 “제2형 당뇨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임상연구의 메타분석에서 적극적인 혈압조절이 기존의 전통적인 치료와 비교해 뇌졸중 위험은 다소 줄였으나, 사망률이나 심근경색증 개선의 혜택은 없었고 저혈압을 비롯한 여타 부작용 위험이 증가했다”며 헤택 대비 위험이 고려돼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ADA는 이러한 논거를 바탕으로 “당뇨병과 고혈압이 동반된 환자의 경우, 수축기혈압 140mmHg 미만을 목표로 치료가 이뤄져야 한다”고 권고했다. 다만 “젊은 연령대와 같은 특정 환자그룹에게는 치료로 인한 과도한 부담이 없다면 130mmHg 미만으로의 조절도 적절하다”고 부연했다.

가이드라인은 이에 대해 “적극 치료의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다면, 130mmHg 미만의 조절도 괜찮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ADA는 권고안 변경으로 당뇨병 환자에서 혈압조절의 중요성이 퇴색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수축기혈압의 목표치를 완화한 것이 혈압조절이 중요하지 않다는 식으로 해석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ESC·ESH “목표치 140/90mmHg 미만으로 통일”
유럽심장학회(ESC)와 고혈압학회(ESH)는 2013년판 고혈압 가이드라인을 통해 심혈관질환 위험이 경증~중증에 이르는 전반적인 고혈압 환자들의 혈압 목표치를 140/90mmHg 미만으로 통일시켰다. 특히 당뇨병·심혈관질환·신장질환 환자 등 심혈관 고위험군 환자의 수축기혈압 목표치를 130mmHg에서 140mmHg 미만으로 완화해 권고한 것이 주목된다.

지난 2007년의 ESC·ESH 고혈압 관리 가이드라인은 혈압 목표치를 두 갈래로 구분해 권고했다. 경증에서 중등도 고혈압 환자 전반에는 140/90mmHg 미만을, 당뇨병·뇌혈관질환·심혈관질환·신장질환 등 고위험군 환자에게는 130/80mmHg 미만의 적극적인 조절을 주문했다.

The lower the better vs. J-shaped relationship
고혈압 환자의 전반적인 혈압은 140/90mmHg 미만으로 조절하는 것이 원칙이다. 여러 임상연구에서 수축기혈압 140mmHg 미만이, 이를 초과하는 것과 비교해 우수한 심혈관사건 감소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돼 왔다. 하지만 고위험군에게는 130/80mmHg 미만의 목표치가 권고돼 왔다. 당뇨병·신장질환·심혈관질환에 고혈압이 동반될 경우 심혈관사건 위험이 더욱 높아지기 때문에 혈압을 보다 적극적으로 낮추면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논리에 따른 결과다.

‘The lower, the better’의 개념을 적용한 것인데, 혈압을 현저하게 낮추면 보다 완화된 조절에 비해 혜택이 적다는 ‘J-shaped relationship’ 이론이 이를 반박하고 있다. 특히, 고위험군에서 적극적인 혈압조절을 지지하는 근거의 대부분이 RCT가 아닌 관찰연구나 전문가 경험에 기반하고 있다는데 맹점이 있었다.

ESH·ESC 가이드라인은 이에 대해 “당뇨병, 심혈관질환, 신장질환 환자들에서 130/80mmHg 미만으로의 혈압조절은 RCT를 통해 지지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뇨병 환자에서 이완기혈압 80mmHg 미만 조절에 대해서는 컨센서스(consensus)가 형성돼 있지만, 수축기혈압 130mmHg 미만의 효과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컨센서스가 없다. 여기에 ACCORD와 INVEST 연구에서 수축기혈압 130mmHg 미만의 심혈관사건 감소효과를 본 결과, 뇌졸중을 제외한 다른 결과의 유의한 차이를 확인할 수 없었던 것이 결정타로 작용했다.

ESC와 ESH는 이러한 근거들에 기반해 경증에서 중등도의 심혈관질환 위험 환자, 당뇨병·뇌혈관질환·관상동맥 심장질환·만성 신장질환 환자 모두에게 수축기혈압 목표치를 140mmHg 미만으로 권고했다. 이완기혈압은 당뇨병 환자를 제외하고 90mmHg 미만을 적용함에 따라, 고혈압 환자의 혈압 목표치가 전반적으로는 140/90mmHg로 통일됐다고 볼 수 있다.

ESC·EASD “140/85mmHg 미만 권고”
ESC와 유럽당뇨병학회(EASD)도 공동으로 2013년판 당뇨병 가이드라인을 발표, 고혈압이 동반된 당뇨병 환자에서 심혈관질환 위험을 낮추기 위해 혈압조절이 필요하다며 목표치로 140/85mmHg 미만을 권고했다.

기존의 130/80mmHg 미만이었던 당뇨병 환자의 혈압 목표치를 수축기·이완기혈압 모두 상향 조정한 것이다. 하지만 단백뇨가 명백한 신장병증 환자에서는 수축기혈압을 130mmHg 미만으로 보다 낮게 조절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며 이전 권고안을 그대로 따랐다.

JSH 뇌졸중 위험 고려해 130/80mmHg 미만
반면 일본고혈압학회(JSH)도 2014년에 고혈압 가이드라인 업데이트판을 발표할 예정인데, 당뇨병 환자의 혈압 목표치를 130/80mmHg 미만으로 고수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ACCORD 연구에서 당뇨병 환자의 혈압을 130/80mmHg 미만으로 조절했을 때 전체 심혈관 위험도의 헤택은 없었지만, 뇌졸중 위험은 감소했다는 것이 일본 측의 설명이다. 즉 자국민의 뇌졸중 위험도가 상당히 높기 때문에 혈압을 더 낮추는 쪽으로 방침을 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뇌졸중 위험이 높기는 하다. 이와 관련해 채성철 대한고혈압학회 진료지침 제정위원장(경북의대)은 “최근 뇌출혈과 뇌경색의 위험이 줄고 있는 추세이며, ACCORD 연구의 뇌졸중 결과가 파워가 부족하다는 판단에서 140/85mmHg 조정을 권고했다”며 “일선 임상현장에서 당뇨병이나 신장질환 환자의 혈압을 130/80mmHg 미만으로 낮추기가 굉장히 힘든데, 어느 정도는 부담을 줄여줄 수도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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