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종합병원의 진료권역 분류, 환자구성, 서비스 등 지정기준이 내년부터 변경된다. 수도권 쏠림 완화, 교육·연구 기능 강화, 중증도 보정 등을 위한 개정이지만, “빅5의 쏠림 현상을 더 가중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보건복지부는 11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본부에서 '상급종합병원 지정기준 개정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 병원 관계자들의 의견을 들었다.

이날 발표된 지정기준 개정 1, 2안을 토대로, 추후 병원들의 의견을 더 수렴한 뒤 올해 말까지 개정안을 확정지을 예정이다.

확정된 개정안에 대해서 복지부는 내년초 시행규칙과 고시 개정 작업에 들어가며, 내년 7월부터 상급종병 신청을 받을 계획이다.

이중 가장 큰 문제는 '진료권역 분류 및 소요병상수 배분 개선안'. 복지부는 일부 시군의 소요병상수를 행정구역과 무관하게 현재 이용량을 반영, 인접권역에 배분해 거주지 소요병상수 감소 현상이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즉 서울, 대형병원 등으로 환자집중현상이 심화되고, 서울-인천-경기를 수도권-경기서부권-경기남부권으로 분류해 서울집중 및 경기도 불균형을 초래한 것.

실제 상급종병 병상과 입원환자수 약 45%가 서울, 15%가 인천·경기에 집중돼 있고, 기관수는 서울 17개, 경기 5개, 인천 2개지만 한강 이북에는 한 곳도 지정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1안으로 행정구역, 지리적 위치를 반영한 11개 권역 분류, 2안으로는 접근성 등 의료이용행태를 반영하는 현행 10개 권역 유지 등의 개선방안을 내놨다.

이렇게 바뀌면 ▲현행 수도권-서울, 경기(의정부·광명·동두천·과천·구리·남양주·하남·용인·이천·안성·김포·양주·포천·여주·연천·가평·양평), 제주/경기서부권-인천, 경기(안양·부천·고양·시흥·군포·의왕·파주)/경기남부권-경기(수원·성남·평택·안산·오산·화성·광주)/강원권/충북권/충남권/전북권/전남권/경북권/경남권 등으로 나뉘었던 것에서 ▲1안 서울권-서울, 제주/인천권-인천시/경기북부권-경기 한강이북/경기남부-경기 한강이남/나머지 지역 현행과 동일 ▲2안 서울권-서울, 경기(광명·과천·구리·남양주·하남·가평·양평), 제주/경기서북부권/경기동남부권/나머지 지역 동일 등으로 변경된다.

복지부는 1안으로 가면 권역 최상위 의료기관으로서 거점병원 역할을 수행할 수 있고, 지역균형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의료이용 행태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문제점이 있다.

2안으로 변경되면 접근성 및 이용자의 행태가 반영돼 실용적이긴 하나, 지역친화도나 접근성이 모호하고 타 권역의 이용이 반영돼 권역별 상급종병 지정 및 육성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뿐만 아니라 수도권 집중화를 초래하는 진료권역별 소요병상수 적용방식도 손을 본다고 밝혔다.

1안은 권역 균형 발전을 위해 소요병상수의 전국권역 배분 방식을 '지역권역'으로만 배분하는 것이고, 2안은 현행 방식을 따르되 수도권 집중 억제를 위해 전국권역 배분시 '권역별 소요병상수까지만 배분'하는 방침이다.

이같은 발표에 수도권 내 2차병원들의 반발이 심했다. 오히려 빅5의 쏠림현상을 극대화시키는 방안이라는 이유에서다.

강동경희대병원 관계자는 “지정기준이 개선된다고 해서 많은 2차병원들이 관심을 보였다”면서 “하지만 개선안으로 수도권 병상 1만여개가 줄어들면서 약 7개 병원이 상급병원에서 제외되게 되는 것이 아닌가”고 말했다.

이어 “지역 균등이라는 명목은 좋지만 이를 위해 수도권에서 잘 이뤄지고 있는 상급종병마저 혜택을 박탈하고, 이를 원하는 종병들에게는 기회조차되지 않는 방안”이라고 지적했다.

이대목동병원 관계자 역시 “형평성에 맞지 않는 방안으로 수도권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설계”라고 주장했다.

강북삼성병원 관계자는 “이렇게 되면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빅5 쏠림이 더욱 가중화된다”면서 “전문질환을 많이 다루는 병원에 혜택을 더 주고, 잘 배분하자는 기존의 개선 목표와 부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한 “빅5는 이미 진료권역 분류에 관계 없이 가장 먼저 혜택을 받게 된다”며 “그래서 공청회에도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복지부 김유석 의료기관정책과 사무관은 “과거에는 권역 구분 없이 경쟁했지만, 이제는 이를 막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제안한 것”이라면서 “무분별한 병상 수 증가를 제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병원 관계자들의 불만에 대해 김 사무관은 “상급종병 지정기준으로만 쏠림 현상을 해결할 수 없다”면서 “이번 정책 뿐만 아니라 의료회송제도 등 여러 정책들이 총괄적으로 작동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교육·연구·중증질환·인력기준 등 모두 개정

진료권역 분류 및 소요병상수 적용 외에도 △질병군 분류 및 비율 조정 △외래 환자구성상태 기준 신설 △의료서비스 수준 강화 △교육·연구 기능 평가 정립 △인력 기준 조정 △공익기능 평가 지표 신설 등 복지부의 지정기준 개선안이 발표됐다.

우선 그간 상급종병에서 시행하는 전문질병군 비율이 평균 25.5%에 불과해 역할 수행에 대한 문제제기가 계속돼 왔는데, 이를 개선하기 위해 △상급종병 입원 분담률이 50% 이상인 질병군을 전문, 병의원 분담율이 50% 이상인 질병군을 단순, 나머지를 일반으로 분류하는 방안이 제기됐다.

이렇게 수정하면 전문 57개 증가, 일반 89개 감소, 단순 32개 증가되며, 환자비율은 현재 전문진료군 25.5%에서 37.2%로 증가된다.

또한 개정안에 따르면 질병군 비율도 조정될 방침이다. 현행 2004년 진료실적을 바탕으로 전문질병군 12% 이상, 단순진료질병군 21% 이하로 변별력 없이 설정됐는데, 이를 2012년 자료로 군집분석을 시행해 비율을 상향할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그간 상급종병이 진료에만 치중하다보니 교육·연구 기능이 악화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를 강화, 총괄하는 평가를 운영할 예정이다.

복지부는 상급종병 지정평가를 진료·교육·연구 등을 모두 총괄하는 최상위 평가제도로 운영하면서, 현재 여러 지정·평가제도는 중복의 문제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세부평가는 해당 분야별 의료기관 평가에서 수행한다. 또 교육기능 평가를 강화하기 위해서 전공의 수련병원 평가나 연구중심병원 평가지표를 강화하는 개정안을 내놨다.

이같은 목적을 위해 외래환자구성 지표도 신설해 상급종병이 이름에 걸맞은 진료를 볼 수 있도록 개정한다. 현재 의원급에서도 진료가 가능한 경증, 만성질환 진료 환자이 상급종병에 45.2% 가량 반문하는데, 이를 17.3% 이하로 받도록 변경하는 방안이다.

이외에도 상급종병이 공익기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응급진료나 중환자진료 등 권역거점병원 역할 수행을 평가에 반영하고, 리베이트나 허위·부당청구, 시설 기준 위반 등을 방지하는 지표도 신설된다.

이중 병원들은 중증도 보정에 대해서 가장 큰 불만을 표했다. 이 역시 빅5의 쏠림에 한몫할 것이란 전망이다.

한 병원 관계자는 “만약 중증질환 35% 이상을 보는 상급기관은 유지되고, 20% 정도의 전문질환을 보는 곳은 떨어진다고 가정해보면, 상급종병은 65%의 단순질환에 대해서도 종별가산을 받고, 떨어진 기관은 20% 전문질환에 대해 병원급으로만 받는다”며 “결국 빅5만 배불리는 꼴”이라고 지적하면서 '다른 안'을 내놔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김 사무관은 “이번 개선안은 상급종병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또 이름에 합당한 진료를 하는 곳으로 거듭나기 위한 방안”이라며 “이를 위해 중증질환을 진료하면 이익이 나고 경증질환을 보면 손해가 발생하게 하는 방안에 대해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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