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병원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선언했지만, 현장에서의 반응은 냉담하다.

복지부 정호원 해외의료진출지원과장은 10일 열린 ‘2013년 의료시스템 해외진출 활성화 포럼 및 병원 프로젝트 설명회’에서 정부 차원의 의료시스템 해외진출 확대 계획을 발표했다. 세계 보건의료 시장의 규모가 8000조 원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중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비중은 1.1%인 90조원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유다.

정 과장은 "그동안 국내 산업에 머물러 있고 건강보험 틀 안에 갇혀 해외시장에 눈을 돌리지 못했다"며 "휴대폰, 반도체, 자동차산업의 반만 따라가더라도 수백조원의 산업으로 키울 수 있고, 일자리 창출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90조원은 한정된 보험재정에 따른 국민의료비 규모일 뿐, 전체 의료시장을 가늠하는 척도는 아니라는 지적이다.

A병원 관계자는 “보험수가에 묶여서 의료산업이 성장하지 못하고 복지부는 그간 규제만 일삼았다. 안에서는 각종 건보재정 절감정책을 명목으로 어떻게든 병원을 옥죄기만 하면서 해외에 나가서 성장을 주문하는 것은 이중잣대”라고 꼬집었다.

B병원 관계자도 “기본적인 원가 수준의 수가보전은 물론,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 등 3대 비급여 문제에서 마땅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포괄수가제, 초음파 급여화 등 악재만 지속되고 있다.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 아닌 병원들이 자금을 투자해야 가능한 해외 진출에는 여력이 없다”고 토로했다.

특히 이날 비리가 발각돼 퇴사한 복지부 과장 출신이 민관합동 기관인 KHM(코리아메디칼홀딩스) 부사장으로 올라있고 강연까지 맡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안겨줬다.

복지부 관계자는 “복지부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단정했지만, KMH는 복지부 산하 보건산업진흥원과 5개병원의 합자회사다. 올해 각종 복지부 관련 해외수출 세미나에 연자로 참석했고, 사우디 프로젝트에도 관여하고 있다. 심지어 사우디 병원들과 의료 IT 수출 계약 체결전에도 불구, 지나친 설레발로 문제가 되기도 했다.

강연에 등장한 예메디칼그룹 박인출 회장도 비판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예메디칼빌딩으로 무리한 투자를 일삼고, 중국 진출을 통해 의사들의 투자를 부추겼지만 돌아오는 성과란 '신용불량'이었기 때문이다.

C치과 관계자는 "예치과 원장들을 대거 신용불량자로 내몰고선 다시 투자를 부추기려 하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라며 "정부에 기대 다른 사업을 펼쳐볼 것이 아니라, 현재까지도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원장들에 보상해줄 방법부터 찾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과도한 예산 투입만..현장 전문가들 인정해야

정부가 해외 진출에 나서는 것은 가장 큰 걸림돌인 면허 상호인정, 허가기준 설정 등 정부대 정부 간 협약을 추진하기 위해서다.

병원들의 자금 투자 여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복지부가 수출입은행에 적극적으로 지원을 요청하기로 했다. 내년 해외진출 사업 예산에 100억원이 할당됐으며, 민관합동 글로벌헬스케어 펀드로 500억원을 조성하기로 했다.

이는 복지부가 해외진출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면서 병원에 비용을 지출하게끔 만드는 구조다. 실제로 SK아이캉병원 당시 민간에서 50억원이 투입됐고, 명지병원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검진센터에 50억원이 필요하는 등 자금 확보의 문제를 안고 있다.

D병원 관계자는 “정부 예산이 어디로 가는지 불투명하고 지원이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해외 진출을 부추기는 것은 결국 투자여력이 없는 병원들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현지에서 자금 회수가 원활하지도 않고 투자대비 수익을 낼 수 있는지도 알 수 없다. 투자는 병원이 하더라도 정부 성과로 가져가려고 하는 것이며, 병원이 실패하더라도 나몰라라 하면 그만아니냐”고 우려했다.

복지부와 함께 움직이고 있는 산하단체인 의료수출협회에 연계한 참여도 부담스럽다. 가입비, 연회비가 종합병원 이상 1000만원, 의원급은 400만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협회는 현재 부담 경감을 위해 연회비, 가입비를 합해 종합병원 이상 450만원, 의원 150만원으로 낮췄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해외진출 정보가 협회를 통해 제시되더라도, 회원들 모두에게 투명하고 공정하게 정보가 돌아간다는 보장도 없다는 여론이 많다.

E병원 관계자는 “정보가 투명하지 않을 것이다. 분명히 정부에 줄을 잘 선 곳이 더 유리한 정보를 얻게 되고 나머지는 자칫 들러리가 될 수도 있다. 이전에 한국의료협회에서도 외국인 환자들이 다수 유입될 때 일부 병원들이 독식하고 나머지엔 할당이 되지 않아 결국 각개전투 하기에 급급했다”고 토로했다.

국내 병원들 아직 준비 미흡...자칫 투자 현혹

더 큰 문제는 국내 병원들이 아직 해외 진출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제 “진출을 정말 해야 되는지?”에 대한 의문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저 현재의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한 미봉책으로 접근하는 병원들이 많다.

진출 경험도 부족한데다 영리의료법인을 운영해본 적이 없어 싱가포르 래플즈, 태국 범룽랏병원 등 유수의 병원들에 비해 사업 다각화나 수익을 내는 방법조차 모르는 한계도 안고 있다. 반면, 잘 나간다는 래플즈병원도 중국 진출을 놓고 5년째 고심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의료수출회사 Vamed에서 근무했던 삼성물산의 Michael Janecek씨는 '해외진출을 준비하는 병원 구성원들이 원활하게 영어를 할 수 있는지?', '외국에 나가서 성공한 경험이 있는지?'에 대해 반문했다.

아직 성공모델이 명확하지 않은 만큼, 철저한 준비없이 너도나도 우후죽순으로 진출했다가는 한 순간에 국제적 망신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병원 뿐만 아니라 동반 진출해야 하는 의료기기, 의료IT기업들도 비판적으로 바라보긴 매한가지다. 창조경제를 내세운 산업화의 논리에 갇혀 심도있는 고민과 준비가 부족하다는 것.

해외수출을 하고 있는 한 업체 관계자는 “단체 하나 만들어서 예산따고 정부 조직 키우기 외에는 관심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해외 진출은 말그대로 간단하지 않다. 현지 파트너 선정이 생각보다 쉽지 않고 그것을 정부가 알선해 준다고 하더라도 그것만 믿고 갈 수는 없다. 복지부가 민간에 일을 할 수 있도록 맡기고 현장에서 제대로 뛰는 사람들을 불러모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다른 업체 관계자도 “결국 재주는 병원, 기업들이 넘고 생색은 복지부가 내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해외로 여러번 출장이나 다니고 센터를 만들어 인력을 양성하겠다는 등 대거 예산 투입 이야기만 나오고 있다”며 “무리한 예산낭비와 정부 주도의 진출 의지는 오히려 제대로 진출해보려는 곳들에 자칫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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