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의사단체 강력한 자율규제로 공공뿐 아니라 의사 스스로 힘도 키워
외국의 면허제도-영국.캐나다

의료윤리연구회는 지난 2일 안덕선 한국의학교육평가원장(고려의대 교수. 사진)의 강의를 통해 외국의 의사면허 관리에 대해 공부했다. 안 원장은 영국과 캐나다의 제도와 이들의 의사면허 운영에 있어 눈여겨봐야 할 점들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뤘다. 안 원장은 또 영국과 캐나다 의사단체의 자정활동을 통해 우리가 의료윤리의 발전과 정착을 위해 살펴봐야 할 점에 대해 이야기 했다. 이날 강의 중 주요 내용을 문·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 우리나라는 한번 의사 면허를 취득하면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평생 유지되는데 면허관리가 요구되는 이유가 뭔가?
전문직은 일반직과 비교했을 때 직무가 복잡하고, 단순기능이 아닌 다차원적인 기능이 요구된다. 동일한 업무의 반복이 아니라 불확실성에 대한 대처가 요구되며 매 순간 전문적 지식에 의한 판단이 요구된다. 따라서 전문직은 반드시 그 분야의 면허 유지에 대한 '적격성(competency)'의 점검이 필요하다. 의사의 경우 면허 유지의 적격성 측정은 '진료의 질'로 평가된다. 의학 교육적 입장에서 적격성은 필수지식의 바탕 위에 특정 임상상황에서의 적절한 관계 설정 및 체계적인 접근을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외국(영국, 캐나다 같은 선진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몇 년 단위의 개인 평가를 통해 면허유지 여부를 결정한다. 진료 경험의 축적이 꼭 적격성을 갖추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적격성은 꾸준히 갖춰나가는 것이며 자기 전공분야에 대한 CME 이수 뿐 아니라 진료 외 분야에 대한 소양도 포함한 CPD 교육을 지속적으로 받아야 한다.

- 면허관리의 범위는 어떤 것을 포함하는 건가?
면허관리는 의사들의 부적절한 행위 관리 감독 뿐 아니라 이를 예방하기 위한 계도 활동도 포함된다. 여기에는 환자 기록, 처방 오류 등 기본적인 업무와 의사 각 개인의 건강 관리, 면허범위를 벗어난 진료 행위, 형사 범죄, 환자를 대하는 태도까지도 포괄한다. 동료의 잘못으로 의사 전체의 신뢰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의사단체 스스로가 능동적으로 회원들을 관리하는 것이다. 법정 전문가 단체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역할을 해야만 한다. 의사단체는 의사들의 단체이지만 돈과 신분을 위해 싸우는 단체가 아니라 의사라는 전문직의 발전과 의사 직종 자체가 피해받는 일이 없게 교육과 면허관리를 하는 자정기관이여야 한다.
법정 전문가단체는 가입이 의무적이다. 일단 전문가 면허를 갖게 되면 자동적으로 전문가 단체에 소속되는 것이다. 물론 회비 납부도 의무다. 그래야만 전문가 단체가 전문직 발전을 위해 전력할 수 있다. 자기 권익을 위해 설립된,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운 임의단체와는 성격이 다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에 대한 명확한 인식 구분이 안 돼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엄연한 법정단체임에도 회원들은 회비 조차 제대로 내지 않는다. 이는 무임승차하겠다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선진국에서는 의사가 법정 의사단체에 회비를 내지 않는다는 것은 의사로서 활동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집행부가 좋건 싫건 회비를 내야만 전문성 수호 발전이 가능하고 전문직 단체가 힘을 가질 수 있다.

- 영국의 General Medical Council(GMC)은 어떻게 의사면허를 관리하고 있나?
지난해 상반기까지는 GMC에서 모든 업무를 했다. 그러나 지난해 6월부터는 달라졌다. GMC에서 영국의 활동의사 17만명, 20여 개의 의과대학 평가, 졸업 후 교육, 평생교육, 국민들의 의사에 대한 불만제기에 대한 처리업무까지 모두 맡다 보니 문제가 제기된 사안에 대한 조사 여부를 따지기만도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MPTS(The Medical Practitioners Tribunal Service)라는 GMC 산하 법정기구를 신설해 문제가 제기된 사안 중 제제가 필요하다고 판단된 사안에 대한 청문, 조사업무와 제제 업무를 독립적으로 하도록 했다. 윤리위원회의 역할보다 한발 더 나아가 진료적합성에 대한 청문과 판정 업무를 하고 부적합 평가가 나오면 제재를 가하는 새로운 심판의 기능으로서 GMC가 자신의 역할을 재구성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의협 내에 중앙윤리위원회가 있지만 의협에 속해있기 때문에 예산과 인력 등의 이유로 독립적 역할을 하기가 어렵다. 윤리적 제재는 독립성이 보장돼 있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 진료의 질 평가에 대해 의사들의 거부감이 있지는 않나?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윤리적으로는 문제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교육의 질로 문제가 제기된 서남의대도 법적으로만 따지면 폐쇄시키기 어렵다. 그러나 윤리는 법 이전의 판단이다. 모 병원 의사의 '사모님 진단서' 사건도 법적으로만 따지면 의사가 진단서를 써준 것에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 그러나 전문가라면 자기 전문 과목도 아닌 분야에 대한 진단서에 문제가 있음을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공공의 보호를 위해 진료에 문제가 있을 때 의사 단체가 스스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데 합의가 돼 있다. 이는 형사적 처벌이 아닌 전문직종 내에서의 자율적 제재다.

- 평가는 어떤 식으로 이뤄지나?
MPTS는 GMC가 제정한 기준에 근거해서 의사의 진료 적합성 여부를 독립적으로 심사함으로써 환자를 보호한다. 진료적합성 평가를 위해 의사와 비의사 위원으로 구성된 청문회를 연다. 청문 절차 중에 잘못을 인정하고 제재를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이들은 면허단체의 청문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거나 지연·방해 행위, 단체가 보낸 공문을 수취 거절할 경우에도 처벌받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의협 중앙윤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회무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의 당사자가 윤리위원회가 보낸 공문의 수취를 회피해 구설수에 오른 일이 있었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전문가단체 스스로의 제재 역할이 매우 어수룩하고 허점이 많다.
MPTS는 공공의 이익뿐 아니라 의사 동료의 이익과 신뢰 저하 방지를 위해 중대한 하자가 있는 의사에 대해서는 심의중 사안에 대한 진료제한 결정 청문회(IOP, Interim Oder Panel)를 통해 우선 진료제한 조치도 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문제가 있는 의사를 규제하되 자격을 영구적으로 박탈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기간이 지난 후 면허 회복을 신청할 수 있다는 점이다.

- 의사면허관리를 매우 잘하고 있는 나라로 꼽히는 캐나다는 어떤가?
캐나다는 주 단위로 면허관리가 이뤄지고 있는데, 특히 '동료평가'가 매우 독특한 제도다. 사전 통고를 거쳐 동일 직종의 동료에 의해 평가를 받게 된다. 이는 규제를 위한 평가라기보다 말썽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점검하고 더 잘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부족한 부분을 교육함으로써 의사 스스로의 안전한 진료활동과 사회와 환자를 보호하자는 취지다. 평가 대상의 대부분은 모범적이며, 문제있는 의사는 3% 정도의 소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캐나다 역시 이들을 구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이들은 스스로에 대한 규제 이외에도 의사에 대한 불필요한 문제 제기로 인한 환자와 의사간의 갈등에 대한 신속한 대처와 의료분쟁 사전 방지 기능도 담당한다. 영국과 마찬가지로 캐나다도 면허관리 정보가 공개돼 있다. 의사에 대한 문제 제기 접수와 그 처리 현황 확인이 언제든 가능하며 사적인 정보를 제외한 의사 개인별 이력과 경력, 처벌과 징계와 관련된 정보를 검색할 수 있다.

-캐나다도 의사단체 회비 납부가 의무인가?
물론이다. 소속 단체에 회비를 내야만 면허가 유지된다. 때문에 의사단체는 충분한 예산을 확보할 수 있어 우수한 역량을 갖추고 정책입안과 자체 연구활동을 통해 방대한 자료를 생산해 회원들에게 매우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준다.이는 회비 납부의 당위성이 되기도 한다. 이들이 생산한 방대한 연구물들이 세계를 리드하고 있다는 점은 부럽지 않을 수 없다. 단체가 힘을 갖고 자율 규제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전문직도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정리·김수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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