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의사 "자기시간 없다구요? 부럽습니다"

개원가 원장들은 물론 최근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들도 '어렵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대체 무엇이 그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일까?

최근 한국의료윤리학회에서는 '대학병원 의사의 현실과 생존', '개원가의 의사 현실과 생존' 이라는 두 가지 주제가 발표돼 눈길을 끌었다. 두 의사들 모두 “어렵다”는 입장이지만, 대학병원 의사들은 '환자를 너무 많이 봐서', 개원의들은 '환자가 너무 없어서'라는 반대의 이유를 갖고 있었다.

우선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들은 병원 의사이면서도 의대 교수다. 때문에 일반인들은 대학병원 근무 의사에 대해 '사회경제적으로 높은 지위를 가진' '권위적인' '형편이 괜찮은' 사람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정작 대학병원의 의사는 '각종 일에 파묻혀 사는' 그래서 '자기 시간이 없는 불쌍한 중생'이라고 토로한다.

한양의대 유상호 교수는 “진료, 연구, 교육, 행정업무, 학회 활동 등으로 이미 번-아웃(완전히 소진된)상태”라면서 “이중 진료 수익과 관련한 스트레스와 업무가 가장 극심하다”고 말했다.

10월말 현재 전국 의대 교수는 국공립 2357명, 사립 1만1644명으로 총 1만4001명이다. 이들의 근무 비중을 보면 진료가 48.2%, 연구 20.6%, 교육 16.4%, 보직 7.5%, 봉사 3.6%를 차지한다. 진료활동 만족도(5점 만점)는 병원정보시스템 3.4점, 진료환자수 3.2점, 진료시간 3.1점, 진료실 환경 2.9점이었다.

실제 대부분의 대학병원들은 교육이나 연구는 둘째치고, 진료수익에 치중하고 있는 실정이다.

의사들은 실적을 올리도록 수익 기여도에 따른 성과급(인센티브)는 물론, 연봉제, 근무지 변경, 인원감축 등 다양한 압박(?)에 시달린다. 연구에 대한 지원이 개선되지 않고, 각종 기관 및 언론사들의 대학평가로 연구마저 경쟁의 도구가 됐다.

이에 따라 연구활동 관련 만족도 역시 연구과제 건수 2.8점, 지원금액 2.7점 등 5점 만점에 3점을 넘는 항목이 단 한가지도 없었다. 직업만족도는 55%만이 만족하고 있었으며, 급여 수준은 2.4점으로낮았다. 또한 투입된 노력에 비교한 절대 급여수준 만족도는 2.17점에 불과했다.

유 교수는 “병원 시설이 대형화되고, 진료과목의 전문화 및 전문센터를 개설하면서 대학병원들이 규모의 경쟁에 뛰어든 것이 화근”이라면서 “의사 연봉제와 성과급을 도입하면서 과잉검사나 과잉진료, 과도한 입원 유도를 하는 것은 물론 비급여 항목을 늘리는 데 혈안이 됐다”고 꼬집었다.

또한 이에 잘 적응한 교수와 그렇지 않은 교수 사이의 대립도 극심하며,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교수들이 많아졌다고 보고했다.

이같은 의료의 상업주의는 의사가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에 대해 다른 상품과 다르지 않게 생각하는 사회 풍토가 조성될 수 있으며, 경쟁과 의사 압박수단을 통해 최대 이윤을 산출할 수 있다는 생각은 병원경영진은 넘어 의료계 전체로 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렇게 되면 의사로서의 전문직업성을 약화되고, 환자와 일반인들의 의사 신뢰도는 급격히 떨어지게 된다고 내다봤다. 유 교수는 “성찰이 필요한 때”라면서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불어 병원 의사이자 교수로서의 삶을 시작하기 전에, 직업전문성에 대한 고찰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견지했다.

병원에서는 이타주의적 진료와 의료 공공성 증진에 대한 생각을 지속해야 한다고 독려했다.

유 교수는 “의사들이 지나치게 진료실적에 시달리게 되면 우리나라의 의료계 미래는 어둡다”며 “교육, 연구, 봉사, 사회참여 등의 기회를 넓혀 주는 역할을 병원에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대학병원 의사의 토로
 
“무엇보다 시간이 없습니다. 돈은 있지만 자기 시간이 적어요. 시간이 없다보니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볼 여유가 없고, 돈은 넉넉히 있지만 그 돈 또한 가족을 위한 것이지 자기 인생을 위한 것은 없어요. 질적인 차원에서는 별로 좋은 것이 없죠.”

“학교에서 배울 땐 의사란 직업이 돈도 벌고 봉사도 하고 그래서 일석이조라고 했는데, 병원이라는 현장은 매우 달라요. 업무의 양이나 노동강도가 상당하고,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어려움도 뒤따릅니다. 이런 일이 맞는 사람도 있지만, 맞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의대 교수들의 토로를 개원가는 '투정'이나 '어리광'쯤으로 간주했다. 오히려 개원가는 바쁠 정도로 환자를 보고 싶다는 의견이 많았다.

대학병원 의사들의 토로(?)를 접한 한 개원의는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 개원의는 “내가 쓰지 않더라도 가족들에게 가져다줄 돈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매출은 한 달에 1000만원~2000만원이어도 직원들 월급, 기타 잡비 등을 지출하면 실수익은 거의 없거나 적자”라고 말했다.

또한 뒤돌아볼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대학교수들을 보면서, “주말이건 밤늦게건 환자를 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쁘고 고마울 뿐”이라며 “차라리 바빠지고 싶다”고 토로했다.

특히 지방 의료기관들의 어려움은 극에 달한 상태다. 환자들은 어려운 경제여건탓에 아무리 아파도 응급상황 전까지는 절대 병원을 찾지 않는다. '어렵다 어렵다' 하던 지난해보다 환자가 절반으로 떨어졌다고 하소연이다.

이같은 현상이 직업만족도에도 영향을 끼쳤다. 우리나라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국민만족도는 아르헨티나, 일본, 벨기에, 호주 등을 제치고 1위에 달했지만, 직업 종사자로서 의사(개원의)의 만족도는 44위였다.

1위 초등학교 교장, 2위 성우, 3위 상담전문가 순이었고, 최근들어 가장 어려운 상황에 처하고 있다고하는 한의사(12위) 보다도 낮았다.

홍성수 의료윤리연구회장은 이같은 현상에 대해 '제도 탓이 크다고 분석했다.

홍 회장은 “저비용 대비 최고 수준의 의료서비스가 35년째 유지돼 온 것이 이같은 현상을 방증한다”며 “그간은 의사들이 버텨왔지만 미래의 지속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개원의들을 괴롭히는 것은 저수가 외에도 '선시행 후보완'으로 일관되는 의료정책도 한 몫한다고 꼬집었다.

홍 회장은 “리베이트쌍벌제, 도가니법, 만성질환관리제, 원격의료 확대안까지 정부에서 나온 의료정책들은 모두 소통이나 예측이 없는 왜곡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공의료 기반 확충을 위해 국가는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으면서, 민간의료기관에 지나치게 공공성을 부여해 개원의들이 숨쉴 틈이 없다고 성토했다. 이같은 관료주도적 의료정책은 공급자 희생 뿐만 아니라 환자들의 가계부담으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홍 회장은 “당장 의료비에 대한 정부의 재정부담 비율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맞추고, 원가를 반영한 수가 현실화가 필요하다”면서 “의료기관의 종별 역할을 정립하고, 전달체계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했다.

지방에서 산부인과를 개원한 한 원장은 “의료계가 화합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의 한 요인”이라면서 “정부가 제멋대로 개원의를 옥죄는 정책을 발표해도 각자 사는 데 바빠서 합쳐진 목소리를 내려고 하지 않아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더욱이 의협 등 개원의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곳에서 최근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은 채 일방통행하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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