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기 강좌를 시작하기 전에 학생들로부터 리포트를 받아 학습목표에 대한 인지도와욕구를 읽곤 하는데, 이번 의예과 2학년 강의를 시작하면서는 여느때와 달리 매우 흥미진진함을 느꼈다.

지금 예과 2학년 학생들은, "의료대란"이라 칭하는 의료계-정부 갈등이 극에 달했던 2000년에 고3의 고난의 시기를 거치고 의대에 입학한 학생들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머리띠를 두른 의사들이 광장 땅바닥에 주저앉아 구호를 외치는 모습을 본 학생들이고, 의사가 돈만 아는 철면피로 호도되는 분위기에서 의과대학에 지원한 학생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해 의대 입학경쟁률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전국의 고등학교수가 약 2000 여개이고, 의대입학생이 전국적으로 약 3000여명이라 한다면 사상 초유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이 학생들은 적어도 각 학교에서 전교 1, 2 등을 했던 학생이라는 말이 되겠고, 실제로 그러했다.

학생들은 대부분 서울 혹은 대도시의 "명문고교"에서 전교 3~4등 이내에 들었다.

더구나 "명문의대"에 들어오려면 거기에 걸 맞는 수준의 성적을 올린, 수재중의 수재들이라는 말이 된다.

무엇이 이들 선택받은 수재들을 의대로 이끌게 하였을까, 그리고 의사의 권위와 위상이 오욕스럽기만 했던 2000년의 사건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사상초유의 의대입학 경쟁률이 나타나게 되었을까.

이것이 내가 현재의 예과 2학년에게 흥미진진함을 느낀 이유였다.

이에 대해 일부 의료계에서는 2000년 사건과 엮어 자조섞인 분석도 한 바 있으나 그 이후에도 계속되는 높은 경쟁률과 커트라인은 다른 지평의 해석을 열어준다.

J 리프킨은 "노동의 종말"에서, 3차 산업혁명을 예기하면서 소수 엘리트 리더들이 경제를 이끌어가고, 경제활동의 모든 부분이 하이테크에 잠식당하여 노동력이 필요없어지는 "신세계"를 예고한 바 있다.

실제로 인터넷 사용률 세계 1위라는 한국에서 날로 성장하는 전자 정보 고속도로는 직업고용의 패턴을 급격하게 바꾸어놓고 있다.

이러한 진보의 밝음 뒤에는 청년실업자의 엄청난 증가와 빈부의 양극화 현상이라는 어둠이 따라오고, 일류 4년제 대학 졸업과 유명 외국 대학 박사학위를 가진 청년도 이력서를 들고 방황하는 모습이 뉴스에 보도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들이는 청년들에게 미래는 불안하기만 하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앞두고, 기계화의 압력에 면역이 강한 교육·예술 분야 직종은 매력적인 무풍지대로 떠오르고 있다.

의업분야의 면역성은 "의술은 기예"라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고, 급격한 변화에 저항하는 의업은 머리좋은 청년과 자식의 모험을 원치 않는 부모들에게는 안전지대로 비추어졌을 것이다.

실제로 학생들의 리포트에 적혀 있는 "의대를 지망한 이유", "의업에서 기대하는 것", "의료계의 전망" 등에서는 이러한 소박한 희망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과거 학생들이 흔히 보여주던 인류의 건강 복지에 대한 거창한 꿈이나 학문에의 열정 등은 찾아보기 어렵고, 도리어 극히 현실적인 걱정이 주된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기형적인 의료제도속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의업에 대한 소박한꿈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주제들이 그렇다.

이들의 소박한 꿈과 걱정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현실 검증력이 강한 아이들이구나"하는 감탄도 하지만, "기상천외한 꿈"과 "젊은이의 무모한 열정"을 읽을 수 없다는 실망이 더욱 크다.

이들 "수재중의 수재들"에게서 거창한 꿈을 앗아간 것은 무엇인지 아쉽기만 하다.

그리고 그 미래는 이 수재들이 키워나가는 꿈에 달려 있어 더욱 그렇다.

의료계에서도 이미 디지털화는 진행되고 있고 미래의 의료는 첨단과학기술과 기예로서의 의술, 양자의 조화를 요구하고 있다.

수재를 뽑아서 무풍지대속의 작은 꿈에 안주하는 범재로 만들지 않으려면 기존의 의사선배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이번 00학번의 수재들은 자성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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