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 연구 결과 토대로 진료지침 만들어

유방암 가족력이 3명 이상인 유방암 환자 2명 가운데 1명은 BRCA1 또는 BRCA2 변이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다는 대규모 국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구에 따르면 부계를 통해서도 변이 유전자가 전달될 수 있으며, 가족력이 없어도 유방암과 난소암이 함께 발병하거나 양측성 유방암 환자에서도 유전자 보유 유병률이 높아졌다.

한국유방암학회가 13일 한국인 유전성 유방암 연구(KOHBRA) 결과를 발표, 이같이 밝혔다. 전국 주요 36개 병원 유방암센터에서 유전성 유방암 고위험군 유방암 환자와 가족 3060명을 대상으로 6년간 조사했으며, 유방암 환자 2526명 중 16.5%(418명)에서 유전성 유방암을 유발하는 BRCA1와 BRCA2 변이 유전자가 발견됐다<표1>.



변이 유전자 보유 여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는 가족력이 꼽혔다. 유방암이나 난소암 가족력이 있는 고위험군 1168명 가운데 23.7%가 변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고<표2>, 가계 내 유방암 환자가 본인을 제외하고 1명 이상일 때 돌연변이 유전자 보유 유병률은 18.7%, 2명 이상 31.2%, 3명 이상 50.0%로 가족 내 유방암 환자 수가 늘 때마다 변이 유전자 보유 유병률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표3>.



가족 가운데 난소암 환자가 1명 이상인 고위험군도 BRCA 유전자 변이 유병률이 25.9%였고, 난소암과 유방암 모두 가족력이 있을 때 유병률은 60%나 됐다. 특히 부모와 자녀, 형제 등 직계 외 2등친(조부모, 고모, 이모, 삼촌)과 3등친(조카 등)까지 포함돼 유전자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흔히 모계에서 유전된다는 편견과 달리 부계를 통해서도 유전될 수 있으며, 부모나 형제에서 유전자 변이가 있을 경우 자녀나 다른 형제에게 변이 유전자가 전달될 확률이 50%였다.

유전성 유방암 고위험군 중 가족력이 없는 환자 1242명 가운데 약 9.3%(115명)에서 BRCA 유전자 변이가 발견됐다. 양쪽 모두에 유방암이 생겼을 때 변이 유병률은 12.1%였고, 유방암과 난소암이 함께 발병한 위험군에서는 16.7%였다. 40세 이전에 유방암이 발생한 환자에서도 7.6%가 변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다<표4>.



BRCA1 또는 BRCA2 유전자 변이 보유 가족을 대상으로 진행한 세부 연구에서는 70세까지 생존한다고 가정했을 때 두 종류 중 한쪽이라도 돌연변이가 발생할 경우 10명 중 7명이 유방암에 걸릴 수 있으며, 2명은 난소암에 걸릴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KOHBRA 연구 총괄 책임자인 서울의대 김성원 교수(분당서울대병원 외과)는 "유전적 원인으로 발생하는 유방암은 전체 유방암의 최대 10%에 불과하지만 변이 유전자를 보유하면 유방암과 난소암 위험이 크게 증가하는 것은 물론이고 위암과 대장암, 전립선암 등 다른 암 발병 위험도 커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전성암'은 생활 습관 등이 동일해 비슷한 질환이 발생하는 '가족성암'과는 다른 것으로 가계에 유전력으로 인해 세대를 거듭해 지속해서 유방암이 발병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BRCA 변이 발견되면 적극적 조치 필요


학회는 같은날 KOHBRA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만든 한국인 유전성 유방암 진료지침도 공개했다. 이번 지침에서는 유전자 변이 검사 대상자를 보다 명확하게 규정, △BRCA1/2 유전자 변이가 있는 환자 가족 △본인이 유방암이고 유방암·난소암 가족력이 있는 경우 △35세 이전에 발생한 유방암 △양측성 유방암 △유방암·난소암이 동시에 발생한 여성은 유전자 변이 여부 검사가 필요하다고 권고했다<표5>. 이 외 KOHBRA 연구 홈페이지(www.kohbra.kr)를 통해 BRCA 유전자 검사 대상자 선별을 위한 예측 모델(KOHCal)도 확인 가능하다.



KOHBRA 연구 책임자인 순천향대 이민혁 교수(순천향대서울병원 외과)는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는 여성은 암 발생 위험이 높은 것은 사실이나 무조건적인 유전자 검사와 무분별한 절제술이 능사가 아니다"면서 "유전자 검사에는 윤리적인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주치의와 충분한 유전상담을 통해 검사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진단 후에는 정기적인 검진으로 유방암을 조기 진단하고, 예방적 절제는 신중히 결정하도록 강조했다.

그러나 BRCA 유전자 변이가 발견되면 유방암과 난소암 발생 위험이 크게 높아지므로 집중적인 진단과 예방 조치가 필요하다. 학회는 유전성 유방암은 기타 유방암과 달리 젊은 나이에 발병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만 18세부터 유방 자가 검진을 하고, 25세부터는 6개월 간격으로 전문의를 찾아 유방 촬영과 MRI를 함께 진행할 것을 권고했다. 또 유방암 예방을 위해 타목시펜을 복용할 수 있으며, 가족력이 많을 땐 예방적 유방절제술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했다.

난소암 검진으로는 35세 이상 여성에서 경질초음파와 CA125 종양표지자 검사를 할 수 있으나 조기 진단률이 낮다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학회는 출산을 마친 여성은 35~40세에 예방적 난소절제술을 받을 것을 적극 추천, 이를 통해 사망률의 감소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위암과 대장암, 췌장암, 전립선암 등의 위험률 증가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검진도 함께 진행할 것을 권장했다.

김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아시아 최초로 유전자 검사 권고 대상자를 선별하고 한국인 BRCA 유전자 변이 예측 모델을 개발하는 성과를 거두게 됐다"면서 "특히 유방암 진료 권고안에 유전성 유방암이 새롭게 추가됨으로써 유전성 유방암의 대상 환자 선별과 상담, 예방적 치료 등에 대해 상세히 밝혀 새로운 지평을 열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현재 국내 유전성유방암 진료현황 조사에 따르면 적어도 1042명이 BRCA1/2 변이 보인자로 확인됐다. 그러나 2012년 한 해에만 1318명이 유전자 검사를 시행해 앞으로 유전자 변이 양성 환자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들의 예방적 수술 현황을 보면, 현재까지 양측 유방절제술을 시행한 여성은 2명, 유방암 환자가 반대편 유방을 절제한 경우는 21명, 예방적 난소절제술은 137명이다.

한편 이번 연구는 2007년 6월부터 2013년 5월까지 보건복지부 암정복추진사업단 후원으로 진행됐으며, 한국유방암학회 산하 36개 의료기관이 참여한 전향적 다기관 공동연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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