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보호 위해 의료인 행정처분 내용 언제든지 알 수 있게
다른나라의 면허제도 - 미국


의료윤리연구회는 지난 4일 대한의사협회 회의실에서 33번째 연구모임을 갖고 미국의 의사면허제도에 대한 강의와 토론을 가졌다. 이날 이뤄진 연세의대 의료법윤리학과 이일학 교수<사진>의 강의와 토론의 내용을 정리했다.

의사면허제도는 타협과 투쟁의 산물이자 의사들이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이룩해 온 역사다. 미국에서의 의사면허제도는 18세기 말에 도입됐다. 동북부 지역에서 처음 제도가 도입됐는데 숙련되지 않은 무분별한 의료행위를 규제하기 위한 목적이었으나 실제로 집행되기까지 100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 100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 이유는?
외부적 요인보다는 의학 자체가 정비되지 않았다는 데서 원인을 찾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의학교육의 기준도 미비했고 의학은 유사의학을 그 성과면에서 압도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땅한 규제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의대는 질 관리에 적극적이지 않았고, 의사들 스스로도 질 관리에 부정적이었다.
교육제도와 능력을 검증하는 시험제도가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도록 실력보다 유명한 가문이나 어떤 배경이 있는 의사들이 인정받던 사회였고, 특히 젊은 의사들은 불리할 수 밖에 없었다. 의사의 교육이나 능력을 확인하는 과정에 대한 뚜렷한 규정이 없어 무면허 개원의들과의 경쟁이 유난히 치열했다.
한편 면허제도가 도입되던 시기에는 의대가 무분별하게 신설돼 부실한 의학교육을 제공하는 학교의 문제도 심각했다.

-의사들은 당시 왜 면허제도에 관심을 갖지 않았나?
당시 의사들은 엘리트 의사이든 돌팔이 의사이든 대체로 의사면허의 효력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의학교를 졸업하지 않았거나 근거가 의심스러운 학위를 소지한 의사들은 면허법이 자신들을 제명시키는데 이용되지 않을까 우려했고, 기득권층 의사들은 면허법이 시행된다 해도 자신들에게 더 이득이 될 것이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 상황에 놓여있던 젊은 의사들은 제대된 교육, 학위가 중요하다는 확고한 입장을 취하고 이를 문제화시키기 위해 투쟁했다.

- 그럴려면 의사들이 힘을 모아야 했을 것 같다.
그렇다. 미국의사협회(AMA)가 이 과정에서 형성되고 활동하기 시작했다. AMA는 자격을 갖추지 못한 무면허 의사들로부터 정규 교육을 받은 의사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직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사회가 개인의 선택과 자유를 강조하였고, 결과적으로 면허제도에 매우 회의적이었고 몇몇 주에서는 면허제도가 폐지되기도 한다.
AMA는 스스로 규제하기 위해 무면허 의사들을 용인하지 않는 것을 내용으로 한 윤리강령을 제정한다. 그러나 규제에 따른 이익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면허제도가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원칙적으로 면허제도는 의료행위의 권리를 정부가 보호하는 것으로 정부의 협력을 이끌어내야 하는 제도였다.

- 그러다가 면허제도가 정착되게 된 계기가 있나?
미국에서 의사의 윤리성과 의학적 능력이라는 면허제도의 기준은 두 개의 소송을 통해 정착된다.
1896년 자신이 졸업한 학교가 정부의 인증을 받지 못해 면허를 얻지 못한 덴트가 자신에게 면허를 부여하라고 제기한 소송이다. 재판부는 의료인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며 그 신뢰의 근거로 면허를 소개한다. 즉 면허는 "사회를 보호하려는 정당한 고려에 따라 정부가 면허가 없거나 시험에 의해 자격을 갖추지 못했음이 확인된 자들을 의료행위부터 배제하기 위해 인정받은 의과대학 교육을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번째 소송은 1898년 뉴욕주에서 호커라는 의사가 불법적 낙태 시술로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문제가 돼 면허가 정지된 후 제기한 소송이다. 재판부는 판결에서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보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조건을 요구할 수 있다. 여기에는 학식과 좋은 성품도 포함될 수 있다”고 해 태도의 문제도 면허의 조건에 포함할 수 있게 되었다.

- 미국 면허제도의 변화는?
미국 면허제도는 형식적으로는 다양해 보이지만 전국적으로 거의 통일된 기준과 운영체계를 갖추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미국 면허제도의 변화로 정보 공개의 강조를 들 수 있다.
AMA는 보유하고 있는 의사 회원의 면허 관련 정보를 모두 공유하고 있다. AMA 외에도 다양한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문제있는 의료인에 대한 행정처분 정보는 언제 어디서든 알 수 있다. 이는 다른 주로 옮겨서 면허를 취득하게 되더라도 이전 주의 면허관련 처분, 처벌 기록을 확인할 수 있게 함으로써 환자를 보호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다.
한편 면허관리는 주 정부가 맡고 있으며 의사단체는 의료인의 권익 보호와 의사전문성의 기준을 제시하는 등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면허국이 가진 의료 행위에 대한 감독권한과 그 실행에 관한 내용이 강화되는 것이다.

- 우리 면허제도에 어떤 점을 눈 여겨 봐야 할까.
면허제도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만들어진 역사적 산물이다. 의료인과 정부, 시민사회가 면허제도를 통해 모두가 이익을 얻는다는 점에 공감대를 형성해서 만들어진 제도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면허제도의 강화와 실제적인 집행을 통해서 문제있는 의료행위, 특히 무면허 의사들의 무분별한 의료행위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는 점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면허가 전문직의 특권인만큼 의료인은 자신의 능력과 의료행위의 적절성에 대해서 시민들에게 확신을 줘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의사가 믿음을 얻지 못하면 면허제도를 통한 권리도 인정받을 수 없다.
한편 면허제도는 사회의 변화에 따라 규제의 정도나 성격이 지속적으로 변해왔다. 우리도 외국의 어떤 제도를 그대로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보다 무엇이 이것을 가능하게 했는지를 살펴보고 우리 사회에 맞는 제도를 만들어내야 한다.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그 변화에 따라가기보다 의사들이 그 변화를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지에 대해 논의해야 할 것이다.
정리·김수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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