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입법예고안 발표 이후, 정부와 의료계의 평행선이 좀처럼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이창준 과장은 YTN, CBS 등 라디오에 잇딴 출연해 이번 입법예고에 대한 적극적인 설득과 이해를 구하고 있다.

가장 먼저 내세우고 있는 장점은 의료기관 이용이 불편한 이들을 위한 의료의 접근성이다.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을 가진 환자들은 상시적으로 의사들의 관리를 받아야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거나 의료기관이 떨어져 있는 경우 관리가 어렵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또한 거동이 불편하거나 누워 있는 노인, 보호자가 없으면 움직이기 어려운 장애인, 배를 이용해서 의료기관을 이용해야 하는 도서 거주자 등도 활용 가능하다고 봤다.

일단 초진부터 허용하되 초진에서는 의료기관 의사들이 이용하는 환자들의 건강상태를 알 수 있는 경우에 한해서만 제한적으로 실시한다고 밝혔다.

선진국 사례도 인용됐다. 정부는 환자의 편의성도 높이면서 우리나라 IT기술에 대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인프라도 구축할 수 있다는 목표를 세웠다는 것이다.

미국은 1997년부터 노인이나 저소득층들이 의사에게 상담을 하거나 외래진료를 받거나 정신과 진료를 받는 등 허용하고 있고 원격의료보험도 적용을 받는다. 일본도 1997년부터 제한적으로 허용하는데, 만성질환자들은 초진이 아닌 재진하는 경우 정보통신기기를 이용해 원격진료를 받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 과장은 “기본적으로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 것은 환자가 직접 의료기관에 가서 환자의 상태를 보고 진료하는 것이 맞다. 원칙적으로 기본을 유지하면서 원격진료를 허용한 것은 제한적으로, 예외적으로 원격진료를 할 수 있도록 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대형병원으로 몰릴 것이라는 의료계의 우려에 대해서는 동네의원 중심으로 할 수 있도록 법에 분명히 명시했다고 설명했다. 입법예고 기간동안 동네의원을 살리고 의료전달체계를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추가로 내놓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 과장은 “진료과정에서 IT기술을 이용하다보니 의료기기나 장비의 오작동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제기되고 있는데, 간단한 기술만 인용하도록 할 것”이라며 “환자가 의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거나, 기기작동 오류로 인해서 의사의 판단이 잘못된 경우에는 의사가 책임지지 않도록 하는 규정들도 법에 담았다”고 덧붙였다.

의료계, “동네의원 붕괴...투쟁나설 것"

의료계의 반대 입장은 완강하다. 그간 쏟아진 각종 정책을 빌미로 아예 투쟁을 위한 계기로 바라보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노환규 회장은 “입법예고된 것은 진료의 보완이 아닌 대체 수단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국민 건강과 생명이 담긴 문제지만, 의사와 환자의 요구에 의해 나온 것이 아니다. 경제부처에서 먼저 목소리가 나오고 정책적인 판단에 의해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것”이라고 토로했다.

오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우려도 전했다. 장비 오작동마저 의사들이 책임지게 돼있는 것이다. 특히 의사 밀도가 높고 도서, 벽지 등에도 전부 의사가 있는 만큼 부당하다고 호소했다.

노 회장은 “중대한 의료제도의 틀을 바꾸는 법안은 사전에 충분히 의료계, 환자단체와 협의를 해서 모형을 만들어서 법안을 발의해야 마땅하다”며 “수개월동안 협의가 되지 않았는데 앞으로 협의가 잘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만큼, 법안을 철회하고 재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일에는 16개 시도의사회장들의 협의체인 '전국 광역시도의사회장단' 회의를 긴급 소집, 의료계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모든 직역을 망라하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대정부 투쟁에 나설 계획을 밝혔다.

원격진료를 촉발로 의료관치 제도로 인한 잘못된 건강보험제도와 수가 결정구조로 인한 의료왜곡, 리베이트쌍벌제, 아동및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일명 도가니법) 등 의사 인권을 침해하는 악법, 의약분업 제도, 저가약 대체조제 장려금 제도 등을 뜯어고치겠다는 것이다.

의료계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라는 전술을 인용하면서 의료공공성 주장으로 대치되던 시민사회단체, 김용익 의원 등의 반대 논리도 제기하고 나섰다.

민주노총 등 30여개 단체로 구성된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무상의료운동본부)는 성명을 통해 "원격진료 허용법안은 18대 국회에서도 안전성과 실효성에 대한 심각한 문제점이 지적돼 폐기됐다. 기본진찰과 필수검사 등이 생략되기 때문에 오진과 누락 위험이 크다"며 “또한 재벌기업과 대형병원이 국민의 신체를 활용해 과잉 건강검진이나 불필요한 고가 검사, 개인신체정보 수집에 나설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민주당 김용익 의원도 “원격진료는 우리나라에서 기술적으로 준비된 상태도 아니고, 시스템 오작동 문제에 대한 책임 소지도 불분명하다”며 "대면 없이 이뤄지는 원격진료는 2류이며,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건강관리를 해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정부 시행의지 완강...대학병원은 활용 조짐도

그러나 정부의 시행의지는 완강해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부터 “원격진료는 반드시 가야 되는 길인 만큼, 자문회의를 통해 좋은 방법, 실행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달라”고 주문했기 때문이다.

'창조경제'의 화두와 맞물려 ICT 신성장동력 창출, 고용 활성화와도 맞물려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긍정적인 결과의 시범사업 발표를 앞두고 있다거나 기획재정부는 예산을 두둑하게 할당해놨다는 후문까지 들렸다.

이런 틈을 타 대학병원들은 벌써부터 원격진료를 활용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 병원급에서는 수술 환자의 사후관리를 위해서 제한적으로 허용되지만, 향후 확대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빅5병원을 중심으로 재정비하려는 모습이 엿보인다.

A대학병원은 개원의 대상 비공개 원격진료 관련 설명회를 가졌다. 만성질환자를 보지 않고 개원의들에 할당하는 대신, 병원에서 개발한 건강관리 서비스를 이용하고 사용료를 내는 것이 어떻겠냐는 권유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B대학병원은 장기적으로 협력병의원, 동문 병의원 등을 통한 활용을 보고 있다. 이들을 통해 무작정 환자와의 원격이 아닌, 원격지 의사를 통해 오진을 줄이면서도 환자를 편리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인 것이다.

이들 대학병원 교수는 “지금 의료계가 무조건적으로 반대할 것이 아니라 환자의 편익을 위한 장점을 논의해야 한다”며 “아예 반대부터 하면 긍정적인 논의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의료계의 반대여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우리나라는 의료비용 자체가 저렴하고 의료기관이 동네 5분거리에 있는 상황에서 원격진료 허용은 얼토당토 않다. 의료전달체계의 근간을 흔들고 동네의원을 붕괴시키는 것”이라며 적극적으로 투쟁에 동참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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