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보험사가 동네의원들을 상대로 끊임없이 ‘묻지마 소송’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손해율을 줄이기 위한 핑계로 부당이득금 반환소송을 내는 것이지요. 의사가 의학적 판단을 근거로 치료를 결정했다면 부당진료로 볼 수 없습니다. 의학적 판단이 입원치료 결정의 기준이 돼야 하지만, 보험사기를 노리는 의사들로 싸잡아 비난하고 선량한 의사들의 진료를 막는다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환자입니다.”


지난해 7월 A손해보험사가 B의원 원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년간 지리한 싸움 끝에 결국 B원장이 승소했다. 그간의 소송의 준비상황과 진행과정을 듣기 위해 만난 B원장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심정’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다른 원장들의 피해를 막고 적극적인 대응을 위해 그간의 소송 진행상황 과정을 면밀히 공개했다. 단,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보복성 조치를 막기 위해 익명 조건을 전제했다.


소송의 발단은 피해자, 즉 B의원에서 치료받은 환자들의 자동차 수리비용이 적다는 이유로 A보험사가 경미한 사고라고 판단한데서 시작됐다. 보험사는 이들이 치료받은 B의원에서 환자 치료비와 합의금까지 반환해야 한다는 취지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B원장은 “전국적으로 보험사가 작은 의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있으며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 당장 겁이 나기도 하고 잘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보험사가 소송을 취하하는 조건을 수용한다. 병원이 소송 금액의 일부를 돌려주는 조정을 하거나 입원률을 낮추는 조건으로 합의를 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이에 의협에서도 중대사안으로 보고 보험사에 소송을 자제해달라는 양해각서를 작성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B원장은 소송에 대한 준비서면을 제출하고 보험사의 소송대리인인 변호사의 억지주장에 의한 진료기록 및 입원 감정 신청을 받아들여 판사가 정해준 대학병원에서 감정을 받았다. 그 결과, 보험사 주장처럼 부당한 입원 등으로 진료비 부당이득을 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다. 최종판결에서도 B의원이 진료비와 합의금에 보험사에 손해를 입혔다고 단정하기는 부족하다고 결론 내려졌고, 보험사의 청구는 기각됐다.


그는 세밀하게 기록한 진료기록과 입원 감정서, 피해환자의 사고 내용 진술 확인서 등 여러 증거자료들을 제출했다. 면밀한 답변서 및 준비서면 제출 등 보험사에 위축되지 않고 적극적으로 소송을 진행, 결국 소송의 기각을 이끌어냈고 보험사의 2차 항소 의지까지 저지할 수 있었다.


판결문에서는 “진료기록 감정결과와 피고가 제출한 증거 등에 비춰볼 때 원고가 제출한 증거로는 피고가 원고 주장처럼 부당한 입원 등의 진료를 하는 등으로 진료비 상당을 부당이득했다거나 원고에게 진료비 및 피해자들과의 합의금 상당 손해를 입혔다고 단정하기에는 부족해 원고의 청구를 인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보험사 소송청구액 689만원....진료비에 합의금까지 요구

원고가 제시한 피해자는 B의원에서 진료를 받고 보험금을 청구한 총 5명이다. A보험사는 피해자의 파손 흔적을 찾기 힘들거나 스크래치가 나는 정도의 경미한 사고 환자를 추렸다. 이들의 상태로 봤을 때 운전자와 탑승자들이 부상을 당했다고 보기 어렵고, 사건사고 재해자들의 입원치료와 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보험사는 경미한 교통사고에 있어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문제제기했다. 의학적으로 객관적인 소견에 따라 입원지시를 한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통증 호소에만 의존해 대법원과 국토해양부 입원 기준에 맞지 않는 환자 입원치료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원고 소송의 요지는 “B의원은 입원 기준에 부합하지 않고 통원치료로도 충분히 치료 목적이 달성될 수 있는 환자를 입원시킴으로써 부당한 진료비를 수령했다. 또한 피고의 부당한 입원 처방으로 인해 입원에 따른 합의금을 지급하게 해 손해 확대를 제공했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이들의 진료비는 각각 64만7650원, 48만5760원, 21만7060원 등이며 합의금은 각각 35만원(2명), 140만원, 120만원, 100만원 등이다. 이에 따라 A보험사에서 지급한 총 689만9160원을 B원장이 지급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청구했다.


더욱이 원고는 세부 입원상태 점검서를 작성하거나 요청하지 않았다. 차량수리견적도 보험사마다 달라 경미한 사고라는 기준이 일치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보험사 기준대로라면 주치의에 따라 정확한 의학적 판단없이 차량 파손 흔적만으로 일률적인 치료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 환자가 제대로된 치료를 받을 수 없으며, 피해를 보는 것은 곧 환자일 수 밖에 없다.


이에 대해 B원장은 “보험사의 치료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의학적 기준이 아닌 다른 기준을 정하거나 제약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며 “성심성의껏 환자를 치료한 원장으로서도, 교통사고로 크고 작은 후유증이 수반될 정도로 손상을 입은 환자의 권리를 생각할 때도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보험사 소송 1차의료기관에 집중...활성화는 커녕 동네북?

더욱 억울한 것은 큰 병원이 아닌 1차 의료기관에 보험사 소송이 집중되는 사실이다.


규모가 큰 병원급 의료기관에는 중증환자가 많아 병원에 잘못보이기라도 하면 장해여부 판단으로 오히려 손해율이 더 커지게 된다. 1차 의료기관의 역할이 활성화돼야 하는 동네의원을 오히려 괴롭힐 목적이 보이는 보험사의 횡포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잇따른 보험사 소송에 심평원 이관으로 자동차보험 삭감률마저 높아지자 개원의들은 입원이 필요한 교통사고 환자들조차 제대로 입원시키지 못하고 있다. 환자들에게 고스란히 피해가 가고 있으며, 이를 보험사가 악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심지어 국토해양부에서 정한 “의사가 전문적인 의학적 판단에 따라 결정한다”는 자동차사고 입원기준도 무시됐다.


B원장은 “가짜 환자를 입원시켜 보험사기를 일삼는 극소수 의료기관을 예를 들어 마치 피고가 그런 의사인 양 진실을 왜곡했다. 이같은 오해를 막기 위해 의무기록을 세밀하게 적고 있다"며 "또한 한 자리에서만 20년간 한눈 팔지 않고 성심성의껏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정도를 걸어온 의사인데, 사기꾼 취급을 받는 것이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최근에는 합의금 몇 푼에 연연하는 환자들도 거의 없고, 직장에 나가지 않고 며칠 간 마음 편히 입원하는 환자도 없다. 만약 사기를 일삼거나 하자가 있는 병원이라면 오히려 일찌감치 합의를 하고 일부러 재판을 피하기 마련이다.


더 큰 문제는 일찍 합의를 마치고 후유치료를 건강보험 진료로 받는 환자들이다.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키는 그야말로 '가짜 환자'가 되는 셈이다. 그럼에도 보험사는 환자에게 합의금을 제시하고 합의를 종용하면서 손해배상을 청구하거나 조정신청을 넣는 등으로 압박하는 일이 많다.


그는 “선량한 피해자와 치료에 최선을 다한 병의원까지도 전부 곤란에 빠트리는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없어져야 한다”며 “소송 전단계에서의 입원세부내역서 작성의뢰 및 자동차보험진료수가분쟁심의회로의 심사청구 불이행 등 기준을 위반한 것은 원고인데, 적반하장 격이다”라고 성토했다.


특히, 교통사고는 후유증이 생길 수 있으며, 자동차보험은 적정한 보험료를 내고 완전한 치료까지 책임져야 하는 사보험으로 피해자의 권리마저 침해한다고 보고 있다.


보험사의 환자 감정도 진료기관 아닌 학회에 전담?


보험사가 환자 감정을 당장이 아닌 수개월 뒤에, 진료현장이 아닌 학회에 맡기고 있는 실정도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일단 자동차보험사의 환자 상태 감정은 교통사고 후치료 종결시점에 환자와의 합의 보상의 필요에 따라 치료의 지속적인 필요성 여부, 후유 장해의 여부 등에 대해 판단하게 된다. 그러나 수개월이 지난 뒤에 감정을 받는 것은 객관적인 검증이 불가능할 뿐더러 의사 진료권 침해가 된다는 주장이다.


그는 “어느 병원에서도 수개월이 지난 환자에 대한 감정을 할 수 없다. 그저 소송 만능주의와 같다. 자동차보험법조차 의미가 없게 된다"며 "보험사인 대기업이라는 사회적 강자가 회사 이익만을 내세워 정당하게 환자를 치료해준 의료기관에 대한 위협과 횡포를 일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보험사는 한국배상의학회, 대한의료감정학회를 진료기록 감정 신청기관으로 신청했다. 그러나 이들 학회는 일선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의료기관이 아닌, 학술 연구를 주요 업무로 하는 단체로 피해환자들이 입원치료가 필요한지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는 것이 B원장의 또다른 불만이다. B원장의 문제제기로 대학병원으로부터 감정을 받았다.


그는 “초진의사의 의학적 판단과 도덕성에 맡기는 것이 합당하다. 사회 일각의 몰지각한 의사의 파렴치한 행위 또는 초진의사의 직접적 부도덕성이나 과잉진료를 부각시켜 규제를 강화하면 다수의 선의의 피해자가 양산되는 일만 늘어나며, 의료사고마저 유발할 수 있는 상황이 초래된다”고 호소했다.


그는 또 “교통사고는 허리, 목 등 후유장애를 유발할 수 있고 환자는 가능한 원상회복을 원한다. 의사 입장에서는 초기부터 적극적인 치료를 할 수밖에 없다”며 “후유장애가 오는지, 치료가 잘되는지 경과를 파악하기 위해 엑스레이를 촬영하는 것 등을 과잉진료라고 하는 보험사의 횡포를 막아야 한다. 개원의들 역시 소송의 상황이 닥치더라도 주눅들지 말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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