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와 환자간의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입법예고되자 의료계는 그야말로 폭발 직전이다. IT업계는 눈치 보며 속으로만 환영하고 있고, 일부 의료진은 해볼 만한 일이 많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권덕철 보건의료정책관은 29일 브리핑을 통해 “의료기관 방문이 다소 어려운 노인·장애인 등의 의료 접근성을 제고하고, 고혈압·당뇨병 등 만성질환자의 상시적 관리로 치료 효과를 높여 나가기 위해 이번 제도개선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의료계의 반발 여론을 의식한 듯, 경증 환자가 대형병원에 집중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대상을 동네의원 중심에 한정시켰다. 다만 수술· 퇴원후 추적 관리가 필요한 재택환자나 군·교도소 등 특수지 환자들은 병원까지도 이용 가능하다고 했다.

권 정책관은 “미국·일본 등 외국에서도 의사-환자간의 원격의료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추세 등을 고려해 우리나라도 원격의료를 제한적으로나마 허용할 필요성이 있다”며 “혈압·혈당 수치가 안정적인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자와 상당기간 진료를 계속 받고 있는 정신질환자, 입원해 수술 치료한 이후 추적관찰이 필요한 환자, 병의원 이용이 어려워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환자 등이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예상 인원은 대략 900만명이지만, 실제 참여하는 환자는 기술 장비 보유 여부, 병원과의 협력문제에 따라 대폭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접근성이 떨어지는 환자 관리는 물론 ICT 기반의 의료기기 산업과 시장 활성화, 고용 창출 등으로 해석했다.

IT업계, 국회 통과 관망...수익모델 창출 기대

가장 수혜를 볼 것으로 보이는 IT, 의료기기 등의 산업계는 당장 환영하기 보다는 일단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의료계 여론이 썩 좋지 않아 좌초될 수 있고, 1달 뒤 정식 입법이 된 다음에도 국회 통과라는 커다란 관문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한 IT업체 관계자는 “지난 정부 때도 원격의료 법 개정이 추진됐지만,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새 정부가 꾸려지면서 입법을 재추진한 것에 불과하며, 당장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추이를 지켜보겠다”고 했다.

다른 업체 관계자도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확인되긴 하나, 섣불리 의료계의 반대 여론을 뛰어넘지 못할 수도 있다”며 “당장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세울 수는 없지만 차근차근 사업을 점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눈치를 살피면서도 은근한 기대감은 감추지 못하고 있다. 복지부는 물론 산업통상자원부, 미래창조과학부 등의 시범사업을 해오던 이들 업체는 사업을 재정비하고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겠다는 반응이다.

이전의 시범사업을 보면 기술은 충분히 완성 단계지만, 수익모델 부족이 가장 큰 문제로 꼽혀왔다. 정부의 공식 법제화로 들어가면 수가 인정이든, 환자의 비용 부담이든 누군가의 정확한 비용 책정이 가능하며, 그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수익모델이 제시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크다.

업체 관계자들은 “의료계의 예상대로 동네병원의 줄도산을 가져오지 않을 것이다. 진료 기능보다는 원격모니터링의 혜택이 더 클 것”이라며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가정에서의 환자 건강관리를 위한 것이며, 의사들도 환자관리를 위한 더 크고 넓은 비전을 갖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일부 의료진은 조용히 찬성, "해볼 만한 일 많다"

반대 일색의 의료계 여론과는 달리 일부 대학병원 교수들도 조심스럽게 해볼만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현재 상황에서 냉정하게 환자를 위한 득실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불신, 술수, 정치적 이용 등이 원격의료를 둘러싸고 있어 논쟁이 생겨도 생산적이지 않게 풀어가고 있다”며 “정작 환자들이 소외되고 있는 것이 문제이고, 환자 입장을 대변하는 단체 역시 환자 입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대학병원 교수는 “원격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를 위한 편익이다. 반대 자체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IT기술로 인해 병원에서 관리하지 못한 환자에게 줄 수 있는 편의를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한다”며 “지금은 모두들 산업적으로만 생각하고 수익으로만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대신 동네의원이 아닌 지방에서 환자들이 많이 오는 대형병원에 더욱 적합하며, 이들 병원에 유리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일부 개원의 중에서도 찬성 입장이 나왔다. 만성질환을 치료하는 상황에서 정부나 환자가 비용을 부담한다면, 대형병원과 차별화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 개원의는 “정부가 원격의료 수가를 인정해주고 일부 의원들에 비용을 지원해준다면, 그동안 환자가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없어 활성화되지 못했던 IT기술 기반의 만성질환 관리를 끌어낼 만하다”며 “대학병원에서는 시범사업을 빌미로 환자들에게 장비를 거의 무상으로 지급했고, 이런 상황에서 의원들과 환자를 놓고 경쟁하는 상황이지만 이젠 동네의원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의료계 여론 악화일로...남은 한달 대응전략 관건

그러나 전반적인 의료계 여론은 그야말로 폭발 직전이다.

대한의사협회 노환규 회장은 29일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원격의료 시행 시 △의료시장 대혼란 초래 △국민 의료접근성 저하 △지방 중소병원 줄도산 △산업 붕괴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비판했다.

전국 일차의료기관들이 지리적 접근성에 기반해 생존을 유지하고 있는데, 지리적 접근성을 무시하는 원격진료가 허용되면 일차의료기관의 존립기반은 붕괴되고 동네의원과 약국이 사라져 국민 의료접근성을 떨어트린다는 우려다.

노 회장은 “이 법안을 가장 반대하는 것이 동네의원인데, 정작 법안을 추진하는 이들은 동네의원을 살린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도 상급종합병원들이 가정의학과를 통해 진료의뢰서를 발급하거나 재진비율을 높이는 등 편법을 동원해 외래환자를 확보하는 상황에서 원격진료로 수도권의 대형병원에 쏠림현상이 가속화되면 지방 중소병원들의 줄도산할 것”으로 토로했다.

대학병원 교수들도 대면진료가 우선이며, 책임 소지의 문제 등을 거론하며 반대논리를 이어가고 있다. 지금의 업무 과부하가 심각해지고 자칫 원격진료만을 위하는 '일하는 기계'같은 의사를 양산하거나, 빅5병원으로의 쏠림이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도 보고 있다.

더욱이 의료계는 저수가의 국면에서 잇딴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들고 있다. 리베이트 쌍벌제, 아청법 등으로 범법자로 만들고 있으며 포괄수가제, 자동차보험 등으로 삭감마저 늘어나자 아예 숨을 쉴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의료계는 “원격의료는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동네의원도 거대기업에 잠식된 동네슈퍼, 동네빵집과 똑같은 과정을 겪게 될 것”이라며 “현재 의대생들이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고, 이 나라에서 의사하기 싫다는 여론도 상당하다. 의사들의 해외 인력 송출과 비인기과 인력 충원이 어려워져 의료공백이 생겨야 의사들을 인정할 것이냐”고 반문했다.

정부는 일단 추진을 강행하게 됐고, 한달 남은 입법예고 기간에서의 국회 설득이 최대 관건이 됐다. 국회에서 계류될 가능성도 높지만 어느 날 갑자기 통과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부 의원들은 반대의사를 표하고 있지만, 청와대의 강력한 추진의지로 대다수 새누리당 의원들이 ‘창조경제’의 논리로 찬성할 소지가 높아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이에 의료계는 "투쟁할 때가 됐다"며 의협의 대응전략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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