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서울대병원 노조파업에서는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이 최대 관건으로 부각됐다. 병원이 사실상 적자를 이어온 것이 아니며, 충분히 수익을 내고 있음에도 숨기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여유있는 병원들은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을 수십억원에서 최대 수천억원까지 적립하는 것이 확인됐고, 이같은 논란이 불거지자 보건복지부 고시 개정안에서는 회계처리 시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을 비용,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처리하도록 했다.
과연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의 정확한 개념은 무엇이며,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서울대병원 파업 쟁점으로 떠오른 고유목적사업준비금

서울대병원 노조(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서울대병원분회)가 지난 23일부터 파업 중이다. 알려진대로 노조 파업의 핵심은 병원의 적자 여부다.

병원측은 2012년 480억원의 의료손실에 이어 2013년 상반기 341억원 의료손실이 발생했고 올 연말까지 600억원 내외의 의료손실이 발생할 것이라 내다봤다. 올 상반기 전년대비 의료수익은 0.5% 증가한 반면 의료비용은 7% 증가한 것을 이유로 들었다.

이에 노조측은 병원의 의료수입은 연평균 8.2% 꾸준히 증가해 2012년 8047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의료이익은 2010년까지 매년 손실규모를 줄여오다가 불과 2011년부터 손실이 증가, 2012년 480억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해석했다. 당기순이익도 2012년 127억원 적자를 기록해 의료손실에 비해 작은 규모이며, 2008년 -188억원에 비해 적자폭이 적어져 부담이 줄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유목적사업준비금 전입도 주요 쟁점이다. 서울대병원은 2009년부터 매년 160~360억 정도의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을 전입해 오고 있다. 노조는 병원이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을 비용처리 하면서 당기순이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2012년 당기순이익이 72억 손실이지만,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을 합칠 경우 재무제표상 손실액인 127억원의 절반에 불과하다고 제시했다.

특히, 고유목적사업준비금에 의료발전준비금 계정을 재조정한 서울대병원 부채비율은 2008년 828%에서 2012년 306%가 되면서 흑자경영이 이뤄지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서울대 뿐만 아니라 다른 병원 구성원들도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을 이익잉여금으로 보는 주요 지표가 되고 있다. 심지어 교수들도 나서서 “병원에 이익이 남았으니 장비 투자를 해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고유목적사업준비금 항목을 통해 이익이 남았음에도 구성원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재단으로 전입하는 것을 알게 됐다”며 “그럼에도 재단에서는 투자할 여력이 없다며 긴축경영을 하고 있고, 심지어 서울대병원처럼 선택진료수당 30% 삭감으로 이어질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고유목적사업준비금 이익잉여금으로 처리 행정예고

그러나 앞으로 100병상 이상 종합병원이 고유목적사업준비금과 고유목적사업비를 회계처리할 때 비용으로 설정할 수 없게 된다.

현재 의료법 제62조에 따라 100병상 이상의 종합병원은 병원의 재무제표를 작성해 매 회계연도 종료일부터 3월 이내에 보건복지부장관에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 4월 회계기준 경영성과 왜곡에 대한 감사원 지적과 7월 지방의료원 국고보조금 처리에 대한 국정조사 시정요구가 있었다. 특히 모호한 회계 처리기준으로 의료기관 간 수익·비용에 대한 차이가 발생하는 등 회계제도 운영상의 일부 미비사항에 대해 계정과목 신설 등의 개정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이에 8월 복지부 주재의 자문회의와 공공병원 실무자간담회 등을 통해 의견 수렴을 거쳐 이번 개정안을 마련한 것이다.

복지부는 고유목적사업준비금과 고유목적사업비를 비용으로 처리해 순이익이 감소되는 왜곡현상이 발생함에 따라, 앞으로는 이익잉여금으로 처리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재무제표 세부 작성방법' 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고시 확정 일자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의 정확한 개념을 보면, 향후 5년 간의 법인의 고유목적사업을 명목으로 건물, 토지, 의료기기 등 고정자산 취득을 위해 적립하는 금액이다. 비영리법인 의료기관, 대학병원의 독특한 계정으로 법인세법 상 세제 혜택이 가능하다. 법인의 고유목적사업을 위해 의료기관에서 법인으로 전출하는 '고유목적사업준비금 전입액' 항목도 있으며, 실제 당해년도에 사업을 집행하면 '고유목적사업비'의 계정으로 지출하게 된다.

개정안에는 국고보조금 처리기준 개정도 담고 있다. 공공병원, 국립대병원이 국고보조금으로 취득한 자산을 자본으로 계상하고 비용(감가상각비)으로 처리해 순이익이 감소되는 왜곡현상을 개선하도록 한 것이다. 시설투자 등 자본적 지출에 충당할 목적으로 지급받은 국고보조금을 자본으로 처리하지 않고 취득자산에서 차감하는 형식으로 표시하되, 이에 대한 세부내역을 작성하도록 했다.

의료기관만의 독특한 회계기준...법인세 감면 혜택도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은 기업회계기준에는 없는 비영리법인 의료기관만의 독특한 회계기준이라 볼 수 있다. 의료기관 회계기준은 기업과 유사하지만, 기본금변동계산서가 포함되고 잉여금처분계산서, 자본변동표는 제외돼 있다.

IMS헬스 김승수 이사는 의료기관 회계기준규칙이 기업회계기준과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심사청구 삭감금액 인식시점, 고유목적 사업준비금의 분류, 국고보조금 등의 회계처리 등을 꼽았다.

우선 심사청구 삭감금액을 보면 기업은 과거 경험 등을 고려해 예상 삭감금액 충당금을 사전에 계상해놓는 반면, 의료기관은 보험자단체의 심사가 완료돼 수납할 금액이 확정된 시점에 인식하게 된다. 이익에 대해 사전이 아닌 사후에 대처하는 방식으로 볼 수 있다.

특히,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은 기업에서는 아예 두고 있지 않는 의료기관의 독특한 항목이다. 기업이라면 이익잉여금 등의 형태로 분류하지만, 의료기관은 대차대조표의 고정부채로 분류하게 된다.

법인세법 61조 1항 ‘준비금의 손금계상특례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에 보면, 회계감사를 받는 비영리내국법인이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을 당해 사업연도의 이익처분에 있어 당해 준비금의 적립금으로 적립된 경우 그 금액을 손금(비용과 유사한 개념)으로 계상하도록 하고 있다.

즉, 비영리법인이라는 이유로 일종의 비용으로 처리하면서 부채 항목으로 잡혔고, 세금 감면 효과가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회계 전문가들이 봤을 때 이익잉여금으로 계상하는 기업 회계기준과 형평성이 어긋나며, 일치시킬 수 있는 방안이 필요했다. 기업으로서는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이 아닌 이익잉여금과 주식배당금, 사업예비비 등으로 할당할 수 있으며,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두고 있다.

또한 국고보조금은 기업에서는 보조금 성격에 따라 자산차감, 수익인식, 비용차감으로 처리하게 된다. 반면 의료기관은 수익적 지출 충당분은 수익계상, 자본적 지출 충당분은 기본금으로 계산하고 있다.

현재 공공병원이 적자보전이나 운영비 보조 목적의 국고보조금을 받았다면 기부금 수익으로 인식하며, 시설투자 목적의 보조금을 받은 경우에는 기타기본금(자본금)으로 처리해왔다. 자본금으로 처리할 때가 문제가 되는 것으로, 자본으로 계상한 다음 사용한 내역을 비용으로 잡아 순이익이 감소되는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역시 복지부 개선안에서 나온대로, 앞으로는 자본으로 처리하지 않고 자산에서 차감되는 형식을 취해 이익에 반영해야 한다.

이익잉여금+사업예비비...모두 이익으로만 봐선 안돼

고유목적사업준비금과 국고보조금 등은 기업과는 다른 의료기관만의 회계기준일 뿐, 병원이 고의로 만든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병원이 관행적으로 회계기준을 맞추면서 세금 절감 효과를 누려온 것이 의외의 족쇄가 됐다.

한 병원 회계팀 관계자는 “5년간 예비비를 미리 계정에 잡아두고, 이것에 대한 면밀한 근거자료를 두게 돼있다"며 "해당년도마다 사용하지 않으면 안되며, 고유목적사업준비금에 대한 오해는 금물”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병원 기획팀 관계자도 “보는 사람에 따라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을 투자여력이 있다고 보거나 여유가 있음에도 감춘다고 해석하지만, 재투자가 필요한 병원이 앞으로의 장비 투자나 시설 투자에 쓰여야 할 금액”이라며 “노조에서는 재투자를 하지 말고 그 돈을 임금과 인력충원에 쓰라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회계기준으로 인해 병원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오해를 받게된 것. 세금혜택을 위해서라도 비용으로 처리하는 것을 관행으로 여겼고, 정부에서는 이를 방치하다가 문제가 발생하자 병원이 뒤늦게 책임을 떠안는 구조가 돼버렸다.

물론 이익잉여금으로 처리한 이후에도 병원이 적자인지 아닌지에 대한 쟁점의 소지는 충분하다. 그간 누려온 법인세 절감 효과를 대체하기 위한 전략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 고시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내년 회계기준이 바뀌면서 대혼란이 야기될 가능성도 크다.

한 대학병원장은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을 단순히 이익잉여금으로 볼 것이 아니다. 기업에서는 이익잉여금과 동시에 사업예비비 두 가지로 나눠서 설정하고 있는데, 모두 이익잉여금으로만 보면 내년을 준비하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며 “노조에서는 이를 무리해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병원으로서는 미래의 전략을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도 인식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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