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정부의 보험재정 절감 정책으로 열악해지는 의료환경에 대한 의료계 각 직역 간 입장차가 심각해 보인다. 의약분업 이후 최대의 위기라고 생각해 ‘투쟁’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이 있는 반면, 자신의 영역 지키기로 버거워보이는 이들도 상당하다. 과연 의료계의 단합은 어려운걸까?

의료계 여론은 흔히 생각하는대로 개원의와 교수, 봉직의의 입장차를 들 수 있다. 인력 충원 등을 내세운 이번 서울대병원 노조 파업을 두고 한 개원의는 “원가 이하의 수가 문제를 해결하도록 교수들도 나서서 투쟁해야 한다”며 “노조에서 수가 이야기를 하지 않음에도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반면 교수들의 입장은 다르다. 우선 원장 등 경영진이 노조와의 협상권을 쥐고 있고 섣불리 나섰다간 '자리 욕심'이라는 오명을 쓰기 딱 좋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 한 교수는 “지금으로선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숨죽이면서 원만하게 해결되길 바랄 뿐”이라며 “조직논리에 따라가야 해서 답답하면서도, 잘못 나섰다간 조직에서 불필요한 구설수에 휘말리면서 오해를 받기 쉽다. 다만 열악한 의료환경에서 개원의 입장이라면 더욱 참담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펠로우, 임상조교수 등의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계약직 신분이거나 아직 정교수가 되지 못한 조교수, 부교수 등도 눈치 보면서 아무런 말 못하긴 마찬가지다. 정식 발령이나 승진에 엄청난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는 탓이다.

이에 대해 다른 개원의는 “형편없는 대우의 펠로우, 심지어 무급 펠로우까지 등장하는 것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지만, 자칫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사람으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반응이다.

한 대학병원 펠로우는 “교수들이 전부 대학의 하늘높은 선배들인 상황에서 한 번 찍히면 지금의 병원은 물론 중소병원으로 가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어려운 상황에서 개원할 수도 없다"며 "답답한 현실이지만 나서기도 어렵고, 취직자리를 마련해주지 않는 사람들의 말을 따르기도 힘들다”고 호소했다.

중소병원, 의원 봉직의는 더욱 말할 것도 없다. 당장 윗선에 찍히면 하루 아침에 파리목숨이 될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교수와는 달리 원장의 말 한마디면 짤려야 하는 신분이 될 수도 있다. 열악한 환경이 개선되지 못하는 이유로 근로자는 ‘슈퍼 을‘이기 때문이고, 제도적으로 보완해야할 뿐 개인이 나설 수 없다는 의견이 많다.

개원의와 교수, 봉직의 등의 생각이 제각각이라고 하더라도 이들끼리의 단합도 어려워 보인다. 실제로 의협을 중심으로 한 개원의들도 분명한 시각차가 확인되고 있다.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의협 집행부에 대해 일각에서는 “정부를 상대로 그렇게 단호하게 일하면 얻을 것이 없다”는 호통을 치고 있으며, 다른 한 켠에서는 “투쟁을 하려면 주먹구구식으로 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전략을 세워서 하라”는 더욱 강력한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에 의협 노환규 회장은 개원의들의 단체인 대한의원협회의 필요성을 몇 차례 제기하고 나섰으나, 여전히 목소리는 분열돼 있다. 의협이 원격진료, 만성질환관리제 허용에 일부 찬성했다는 말이 돌면서 개원의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고, 의협 산하 개원의협의회 단체가 따로 노는 듯한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개원내과의사회는 대다수의 개원의들이 반대하는 만성질환관리제를 공식 찬성하기도 했다.

미용성형 등 비급여 진료과도 일치단결하지 않는 모습이다. 진료과목을 표방하지 않은 의원이 전체 의원의 20%에 달하고 있으며, 이들은 당장 병원 경쟁력 확보를 위한 시간도 모자르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교수 직역은 각 병원, 학회를 중심으로 움직이면서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있다. 최근에는 병원 내에서 보직자 중심 이외에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고 임기가 제한돼 있다는 판단으로 학회에 주력하는 이들이 많아 보인다.

학회에서의 이해관계도 첨예하다. 병원이 어려워지면서 정부 연구비 획득을 위한 교수 개인, 학회 차원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로 최근 진행된 특정 진료과와 연관된 연구용역은 다른 진료과 교수가 맡기도 하고, 중립적인 입장이 필요한 연구용역도 특정 진료과에서 진행되기도 했다.

한 학회는 여러 진료과가 얽혀있는 질환에 "우리과에서 초진 받으세요”라는 캠페인을 내세우고 있고, 다른 학회는 타진료과에서 흔히 보는 질환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이를 두고 한 대학병원 교수는 “병원 내, 학회 간 진료과의 이해관계가 심각하게 얽혀있어 개원의들 주장까지 신경쓸 겨를이 없다. 당장 환자 진료보기도 바쁜데다 병원 내에서 떨어지는 각종 업무, 회의에도 쫓기고 있다"며 "또한 우리 과의 경쟁력을 지키지 못하면 전공의를 받을 수 없고 심각한 존폐의 위기가 들이닥치기 마련”이라고 성토했다.

혹시 병원장이라면 사정이 좀 나을까? 대학병원장들은 실제 오너인 재단이 병원을 움직이지, 병원장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권한없이 병원 경영에 대한 책임만 부여되면서 의료전달체계 재정립, 병의원 동반성장과 같은 주문은 마치 꿈같은 이야기라는 것이다. 당장 수익이 눈에 띄게 감소하고 직원들을 먹여살려야 하니, 대학병원 토요진료같이 터무니없는 전략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중소병원장들 역시 규모를 키워온 그간을 돌아보는 동시, 당장 직원들 월급을 줘야 하고 앞으로 먹고살 고민에 빠져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고 호소한다. 전문병원의 잇딴 악재와 자동차보험의 삭감률 상승 문제도 심각하다고 보고 있다. 지역사회에서의 입지를 공고히 다지면서 비급여 상품을 재정비하는 원장들이 많다.

결국 의료계 전체가 아닌 소수의 목소리에 의해 투쟁을 위한 단합이 제기되고 있지만,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더 큰 문제는 정부, 의협에 대한 불신으로 눈을 감고 귀를 막고 현안에 아예 무관심한 의사들도 많다는 점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의사들이 더 어려워지고 대학병원도 몇 군데 문을 닫아야 보험재정 절감을 이유로 내세우는 정부 정책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할 것"이라며 "다행히 법과 제도에 대해 관심갖고 공부하는 의사들이 예전보다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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