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청소년에게 성범죄를 한 의료인에게 10년 동안 취업과 병원 운영을 제한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은 의료계는 물론 시민단계, 학계 등도 의사에게 너무 가혹한 잣대를 들이댔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최근 몇 년 동안 의사에 의해 행해진 아동·청소년 성범죄가 없다는 데이터들이 속속 나오면서 분위기는 개정쪽으로 기울었다.

그런데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강기윤 의원이 의사 강간이 급증했다는 보도자료가 나오면서 상황이 냉각되기 시작했다. 의사에 대한 성범죄 등에 대해 어떤 것이 사실인지 데이터에 담긴 행간을 읽어봤다.

아동청소년에 대한 의사의 성범죄가 어느 정도인지는 국가 통계포털 KOSIS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곳에서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미성년자에 대한 직업별 성범죄를 찾아봤을 때 예술인이나 종교인 등이 검색되는 반면 의사는 단 한명도 없었다. 데이터의 출처는 경찰청 범죄통계다.

의사의 아동성범죄가 얼마나 되는지 정보공개 청구를 한 의사가 있다. 개원의인 K모 의사는 지난 9월 13일 정보공개시스템을 통해 여성가족부에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자의 각 직업별 구성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신청했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 직종별로 성범죄자의 수 등에 대한 자료를 요청했다. 지난해 8월부터 아동과 청소년의 성보호를 위한 법 일명 아청법을 어긴 의료인이 얼마나 많이 포함돼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며칠 후 K모 의사는 여성가족부가 경찰청으로 이송했다는 답신 메일을 받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동·청소년대상 성범죄자 관리를 맡고 있는 여성가족부와 경찰청 모두 아동·청소년대상 성범죄자의 인적사항 정보통계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K모 의사는 "의료인 중 아동·청소년대상 성범죄자가 더 많다는 통계자료도 없는 상황에서 의료인이 아청법에 포함된 것"이라며 "기본적인 근거자료도 없이 아청법과 관련 없는 성인대상 성범죄만으로도 의료인이 10년 동안 취업할 수 없게 만든 제도를 만든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여성가족부는 확보하고 있어야 하는 자료조차 갖고 있지 않으므로 당연히 비판받아야 한다"며 "기본적인 데이터도 없이 아동과 청소년의 성보호를 위한 효과적인 대책을 수립할 수 있겠는가"라고 꼬집었다.

의료계가 아동 성범죄에 의사의 분포가 많다는 이미지를 벗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도중 의사의 성범죄가 급증하고 있다는 보도자료가 나왔다.

최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강기윤 의원은 경찰청으로부터 2008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강간 및 강제추행 범죄로 검거된 6대 전문직(의사, 변호사, 교수, 종교인, 언론인, 예술인)이 1181명이라는 결과를 발표했다.

강 의원은 강간 및 강제추행은 종교인이 447명으로 가장 많았고, 의사가 354명, 예술인이 198명, 교수 114명, 언론인 53명, 변호사 15명 순이라고 말했다. 특히 의사들의 강간범죄가 타 전문직 종사자들에 비해 급증했고, 강간죄를 저지른 의사는 2008년 43명에서 2010년 67명, 2012년 83명으로 4년새 93%나 증가했다고 보도자료를 냈다.

그러면서 의사 집단에 고도의 도덕성과 직업윤리를 요구해야 하고 진료실 및 수술실 내 성범죄 방지를 위한 제도적 보완책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 발표는 경찰청이 데이터조차 없다고 밝힌 것과는 전혀 다른 데이터라 의료계는 또 다시 뒷통수를 맞은 것 같다고 공분했다.

대한의원협회와 서울시의사회는 성명서를 내고 강 의원이 제시한 지료에 오류가 많다고 불쾌한 심정을 드러냈다. 의사로 분류된 직종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빠져 있고, 지난 2010년부터 정의가 바뀐 '강간범죄자'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는 지적도 했다.

의원협회는 "검거가 곧 유죄가 아님에도 강 의원은 이를 유죄를 의미하는 것처럼 통계를 했고, 진찰과정에서 신체적 접촉이 빈번한 의료인의 직업적 특성을 간과했다"라고 비판했다.

앞으로 의료계가 아청법을 어떻게 풀어갈지, 사회에서 의사의 이미지를 어떻게 포지셔닝할지 많은 사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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