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된 단어와 문장 구조 통해 우울증 감별

사용하는 언어 패턴으로 우울증을 진단하고, 정상적인 슬픔과 병적 상태를 구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러시아 국립사마라의대 Daria Smirnova 교수팀은 최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유럽신경정신약물학회 학술대회에서 "201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짧은 에세이를 통해 우울증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할 수 있었다" 발표했다.

우울증이 있는 환자들이 쓴 에세이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쓴 에세이보다 전반적으로 더 많은 단어가 사용됐고, 더 서술적(narrative)이었으며 생략과 반복, 자기 중심적 경향이 두드러졌다. 문장은 단순했고 과거형 동사도 많이 사용됐다.

반면 슬픔을 느끼고 있지만 병적인 우울 상태는 아닌 건강한 대상자가 쓴 에세이에서도 우울증 환자가 쓴 것과 유사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현재형 동사가 많이 사용됐고, 이타주의와 자기완성(self-realization), 사회적 상태에 대한 서술이 더 많아 명확한 차이를 보였다.

Smirnova 교수는 "19세기 우울증 유병률은 0.4~0.5% 수준이었지만 오늘날에는 5~10%로 크게 늘었다. 이는 경미한 수준의 우울증이 늘어난 것과 크게 연관성 있다"면서 "또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환자의 절반 가량은 치료를 받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우울증 중 상당수는 정신과 영역의 안팎에서 모두 관찰되는데 정장적인 슬픔과 경도 우울증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정신과 진단에 신뢰성과 유효성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연구팀은 여기서 언어가 하는 역할에 주목했다.

Smirnova 교수는 "정신과 진단에서 언어가 일부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료가 많지만 임상적 양상에서 이를 평가한 연구는 매우 드물었다"고 연구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정신질환은 진화 과정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언어를 획득한 것에 대한 대가"라며 "이번 연구를 통해 환자가 무엇을 말하는가뿐 아니라 어떻게 말하는가도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됐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임상적으로 경도 우울증 진단을 받은 러시아 환자 124명과 대조군으로 건강인 77명을 모집했다. 우울증 환자 중 67%는 여성이었고 평균 연령은 41.9세였으며 우울증 하위 분류에 따라 불안(n=45), 무력-활력감퇴(n=41), 멜랑콜릭(n=38) 등 세 그룹으로 나눴다. 건강인은 79%가 여성이었고 45%(35명)에서 정신사회적 또는 사회경제적 환경과 관련된 정상적 슬픔 반응이 보고됐다.

연구팀은 모든 대상자에서 '자신의 인생 현황'을 주제로 피상적인 수준과 깊은 수준의 글을 작성하도록 하고, 이를 기술적 방법(descriptive methodics)과 비모수적 분석(nonparametric analysis), 차이 분석의 수학적 모델 등 심리언어학적 방법을 통해 평가했다.

그 결과 실험군이 작성한 글에는 평균 311.18개 단어가 사용된 반면 대조군에서는 197.25 단어가 사용됐고, 논증에 기반한 흐름보다 서술적인 문장 흐름이 두드러지는 경향도 각각 88.5%, 14.5%로 차이가 있었다.

또 실험군에서는 100%가 의사소통담론(communicative discourse)을 보이는 반면 대조군에서는 11.69%에 그쳤고, 실험군에서는 생략과 회화적 구성, 어휘적·의미적 반복이 눈에 띄었다.

Smirnova 교수는 "흥미롭게도 실험군 모두가 과거형 동사를 사용하는 반면 대조군에서 과거형 동사를 사용한 비율은 2.6%밖에 되지 않았다"면서 "단순한 문장 사용(79.8% vs. 2.6%)과 반대되는 단어 나열(99% vs. 6.49%) 측면에서도 명확하게 달랐다"고 설명했다.

두 그룹 모두 존재(existential)와 가족에 대해 가장 많이 썼는데, 특히 두 단어가 사용된 비율은 실험군에서 높았다. 또 실험군은 자기완성이나 사회적 상태보다 의사소통이나 쾌락 관련 화제에 대해 더 많이 언급했다.

대조군을 슬픔 유무에 따라 하위그룹 분석을 했을 때 슬픔이 보고된 대상자군에서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생략과 어휘적·의미적 반복이 더 많이 사용되는 경향을 보였으나 현재형 동사 사용 비율은 더 높았다.

Smirnova 교수는 "우울증 환자군에서는 과거형 동사가, 정상적 슬픔군에서는 현재형 동사가 많이 사용된다는 차이가 있었지만 두 그룹 모두 미래형 동사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면서 "수학적 모델로 따져봤을 때 어떤 형태의 동사를 사용하는지와 경도 우울증 환자와 정상적인 슬픔군을 구분하고 진단하는데 중요한 것으로 밝혀졌다(P<0.001)"고 말했다.

그는 "환자가 호소하는 내용을 관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정보를 어떻게 설명하는지도 관찰할 필요가 있다"면서 "의사들은 반드시 환자가 직접 작성한 글을 통해 어떤 키워드가 사용됐는지, 어떤 의미적(semantic) 주제를 서술했는지 분석하거나 구조적인 임상 인터뷰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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