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침묵의 의미

침묵은 말로 표현하는 방법을 통해서 커뮤니케이션 하지 않는 것을 말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이것이 전혀 커뮤니케이션 하지 않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커뮤니케이션 하지 않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질병(청각 장애, 발성 기관을 다친 사람 등)으로 인해 말을 할 수 없는 것일 뿐이며 이들은 비언어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 즉, 얼굴 표정이나 제스처 등을 통해 커뮤니케이션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여기서 우리는 침묵을, 완벽히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의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무의식적인 것일 때 침묵은 여러가지 의미를 지닌다. 또한 우리는 침묵을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용할 수도 있다.

우리가 나이를 먹을수록 정신 혹은 신체의 반응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수신자가 고령인 경우라면 이런 침묵의 시간은 보다 늘어나게 된다.

따라서 발신자는 침묵함으로써 고령의 수신자가 메시지에 대해 생각하고 반응을 보일 수 있도록 필요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 

의사와 환자가 상호교류하는 동안, 환자의 침묵과 의사의 침묵에는 중요한 여러 요소들이 있다.

예를 들어, 조용하고 말이 없는 성격의 의사와 환자가 있다고 하자.

두 사람은 모두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말해야 하는 기본적인 사항에 대해서만 표현한다.

그러나 자신의 이런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의사라면 환자를 향한 자신의 침묵이 가질 수 있는 영향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하고, 치료를 위한 커뮤니케이션에 적극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의사는 환자의 긴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해석 할 줄 알아야 한다.

환자로서는 단순히 생각에 잠겨 침묵하는 것일 수도 있고, 너무 고통스러워서 혹은 의사나 간호사가 자신에 대해 별로 관심을 안 보인다고 생각해서, 또는 병원 식사가 맘에 안 들기 때문에 등등 여러 가지 이유에서 침묵을 지키는 것이다.

이런 모든 경우에 있어 환자의 긴 침묵에 항상 의사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말로 표현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는 환자가 몇 시간 동안 꼼짝도 않고 허공을 바라보고있다는 것은 그가 무엇인가에 상당히 실망하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이런 침묵을 지키고 있는 환자에게는 말을 걸어야 한다.

또 어떤 경우 심장 판막 기능부전 때문에 혹은 호흡 곤란으로 환자가 침묵을 지키기도하는데, 이는 말하는 데 극도의 고통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침묵 역시 고려되어야 한다.


전화상의 커뮤니케이션

직접 대면하는 방법에 비해 전화상의 커뮤니케이션은 불편한 점이 몇 가지 있다.

가장 불편한 것은 두 화자가 서로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방의 어조와 목소리로 이루어진 대화만으로 커뮤니케이션이 제한된다.

전화상으로는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의 신호를 보내거나 받을 수가 없고 두 사람 모두동시에 말하는 경우도 종종 생기므로, 두 사람 모두 상대방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전화상으로는 발신자가 어느 정도 분명히 말한다고 해도 수신자로서는 발신자의 입의 움직임을 보지 못하므로 발신자는 직접 얼굴을 마주 보고 얘기 할 때보다 훨씬 분명하고 정확하게 발음하려는 노력을 의식적으로 기울여야 한다.

발신자가 전화를 통해 이야기의 전후 문맥으로는 전혀 알 수 없는 새로운 단어 (예를 들어, 약물의 명칭)를 말했을 경우라면, 수신자가 잘 이해했는지 확인해 보기 위해 그에게 그 단어를 한 번 말해 보라고 요청하는 것이 좋다.

몇 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전화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은 환자와 의사에게 있어 상당히 중요한 것이다.

역사상 최초의 전화 통화는 도움을 청하는 전화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1876년 3월 10일 Graham Bell은 전기를 이용한 선을 통해 자신의 동료 가운데 한 사람에게 첫 마디를 전달했었다.

하지만 그가 전달한 말은 역사에 길이 남을만한 승전보 같은 것이 아니었다.

산성 물질이 담긴 플라스크가 자신의 몸에 쏟아졌기 때문에 Bell은 자신의 동료에게 와달라고 요청했던 것이다.

환자에게 있어 전화는 의사를 부르거나 그와 약속을 정하거나 혹은 복용해야 할 약에 대해서 물어보는 데 가장 흔히 사용되는 수단이다.

또한 전화로서 환자는 의사와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도 "치료로서의 상담"을 할 수 있다.

몇몇 의사들은 자신의 안심을 주는 몇 마디로 인해 걱정에 가득 차 있고 의기 소침해 있는 환자들이 충분히 용기를 얻는다는 사실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에 관해서 Callan이 쓴 글의 일부를 인용하고자 한다.

"수년간의 연구 결과, 약물 치료는 의사의 안심을 주는 몇 마디와 병행했을 때 그 효능이 훨씬 잘 나타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의사들이 항상 이런 식으로 약을 처방 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한 동료 의사가 내게 분노에 차서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는 자신이 수술했던 한 여자 환자가 너무 아침 일찍 전화를 걸어 수술 후의 통증에 대해 물어보았기 때문에 화가 많이 나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환자는 밤새 고통에 시달렸지만 의사를 너무 일찍 깨우기는 원치 않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더 이상 고통을 참을 수 없었던 환자는 새벽 6시에 의사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던 것이다.

이에 약을 처방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의사는 그 환자에게 몇 시에 가장 가까운 약국이 문을 여는지에 대해 물었다.

환자는 "7시"라고 대답했고 의사는 냉정하게 환자가 원하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분명히 이 의사는 약물 이외에 자신이 환자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많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옛 격언에 따르면 침묵은 금이라고 한다. 그러나 치료의 목적으로는 말해주는 것만큼 귀중한 것도 없다."


글로 된 커뮤니케이션

의사는 처방전을 글로 쓰고, 임상 기록을 작성하고, 증명서를 발행하기도 한다.

또한 전문가로서의 의사는 환자와 편지를 주고 받는 관계를 유지하기도 한다.

글로 된 커뮤니케이션의 여러 종류와 기술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단지 의사들이 자신은 여러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을 기억했으면 한다.

즉, 어떤 이유에서든(일기를 쓰는 사람의 경우만을 제외하고) 글을 쓰는 사람은 상대방을 향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발신자이다.

만일 알아볼 수 없는 글자로 글을 쓴다면, 메시지는 전달되지 않거나 왜곡될 수 밖에 없다.

읽을 수 없는 글자로 쓰는 글은 결국 이해될 수 없는 방식으로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만일 글자를 명확히 쓸 수 없는 경우에는 기계에 의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환자에게 의사가 처방전을 써 주거나 전문적인 조언을 글로 해 줄때의 규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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