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과 관찰을 통해 얻어진 과학적 사실들을 바탕으로 질병예방과 치료를 위한 이론과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현대의학이라면, 주로 경험을 통해 얻어진 사실들을 건강관리 기술로 이용하는 것이 소위 대체의학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 둘은 최소한 현대의학의 개념이 처음 도입된 기원전 3세기 히포크라테스 시대 이후 거의 항상 공존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둘의 공존상태는 사람들에게 이 두 가지 의학이 모두 필요해서라기보다 현대의학의 기능정도에 따라 대체의학이 그 영향을 키우기도 하고 줄이기도 하면서 함께 존재해 온 상태다.

말하자면 대체의학이 현대의학의 틈새를 파고드는 형식이었고, 따라서 둘 사이는 어찌보면 공존상태라기보다 일종의 긴장상태로 존재해 온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대체의학에 의존하는 우리 나라 사람들에 대한 전국적인 조사연구가 없어서 그 정확한실태는 알 수 없지만 몇 해전 서울지역 3개 대형병원 암 환자 약 300명을 대상으로 한어느 조사결과를 보면 이들 환자의 53.0%가 병원에서의 치료방법 이외에 여러 가지 민간요법을 사용했거나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목할 일은 이들 민간 대체요법을 사용한 암 환자 가운데 무려 92.7%가 자신들이 의존했던 대체요법에 대해 다소라도 효과가 있었거나 최소한 심리적으로 도움을 받았다고 응답함으로써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대체의학에 대한 관심은 비단 우리나라 뿐 아니라 현대 첨단의학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1990년대 중반에 미국 국립 보건원 산하에 "대체의학과"(Office of Alternative Medicine)를 설립하고 많은 연구비를 투자해 가면서 이에 대한 연구를 시행해 오고 있다.

첨단과학시대에, 과학적으로 아직 검증되지 않은 여러 가지 대체요법이 이처럼 성행하고, 이에 따라 이런 대체요법을 체계화하려는 대체의학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지난 약 1세기동안 오직 치료적 기능확대에만 노력해 온 현대 첨단의학이 아이러니칼 하게도 바로 그 치료적 기능의 한계에 부딪치게 된 때문이라고 할 수가 있다.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갔던 전염성 질환의 원인세균이 발견되고 이들 세균을 죽이는 항생제가 개발되기 시작한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에 이르는 동안 의학은 가히 "제왕적 과학"으로서 그 위력을 크게 발휘한 것이 사실이다.

그때까지 단지 환경을 깨끗이 하거나 발생된 환자를 격리함으로써 질병의 전파를 막는정도의 예방 의학적 노력으로 최소한의 건강유지와 질병 관리를 해오던 시대에서 수액이나 항생제 같은 적극적 치료 약물로 한 순간에 수많은 환자를 구해낸 치료적 의학의 위력은 사실 대단한 것이었다.

이 일은 결국 의학이 온통 치료적인 일에만 전념하는 계기를 마련했고, 실상 이후 의학은 환자치료를 위한 소위 의료적 패러다임이 지배를 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후의 의학은 세균성 질환을 정복했던 항생제의 위력 같은 것을 더이상 발휘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것은 20세기 이후 질병양상이 근본적 치료가 어려운만성퇴행성질환 중심으로 변화를 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령, 고혈압이나 당뇨병, 그리고 암과 같은 질병이 대부분인 오늘날은 일단 질병에 걸리고 나면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환자로 남아 있거나 치료가 안 되어 사망하고마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을 보면 알 수가 있는 일이다.

병원에서 의사가 주는 약만으로 지루한 투병생활을 해야 하는 환자들이 요행을 바라는마음만으로도 여러 가지 민간대체 요법에 관심을 갖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이다.

말하자면,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하는 심정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민간대체 요법에 대한 수요 증가에 미국 국립 보건원 같은 기관이 관심을 갖고 이를 학문적인 연구대상으로 접근하는 것 또한 너무나 자연스런 일인 것이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게 마련이고 이 경우 좀더 과학적인 내용의 공급을 위해 국가연구기관이 노력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원래 건강은 질병예방과 치료라는 두 개의 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현대의학은 오로지 건강문제를 치료적으로만 해결하려고 노력해 온 감이 없지 않다.

그리하여 의료수요는 날로 늘어만 가고 이들 의료수요를 감당하기위한 국민의료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기만 하는것이다.

이같은 의학의 치료적 패러다임은 세균성 질환을 완벽하게 치료했던 시기의 치료성과에 대한 현대의학의 오만이 그대로 유지된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진단이나 치료기술 개발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기업가들의 경제적 동기와 참여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라고 할 수가 있다.

요즘 많은 국가와 기업들이 소위 BT로 불리는 생명과학 기술 개발에 경쟁적으로 뛰어드는 가장 큰 동기는 역시 이 일을 통해 돈을 벌자는 경제적 동기가 그만큼 크기 때문인 것이다.

물론, 이런 기술개발이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을 괴롭혀 온 난치병들을 치료함으로써 이들의 수명연장과 삶의 질을 높이게 된다면 더없이 바랄 것이 없는 일이지만 문제는 사람의 수명연장과 삶의 질 향상을 우리의 최종 목표로 했을 때 지금은 건강행동을 통한질병예방과 건강증진 노력이 다른 무엇보다 더 효과적이고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정부는 선진 외국들에서처럼 국가적인 차원의 국민 건강생활실천운동과 건강증진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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