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기환자들 미진단·오진으로 적절한 치료 못받아
It’s the diagnosis!
“It’s the economy, stupid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1992년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 당선을 견인하며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말이다. 이제 우리나라 보건당국도 COPD와 이로 인한 폐해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COPD에도 이런 말을 빌릴 수 있을 듯 싶다. “It’s the diagnosis!”
모든 만성질환이 그러하지만, COPD는 특히 조기진단·치료가 중요하다. COPD는 비가역적인 기류제한을 특징으로 하는 폐질환으로서 만성 염증에 의한 기도와 폐실질 손상으로 인해 발생한다. 만성 염증에 의해 소기도질환과 폐실질 파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그 결과 돌이키기 힘든(비가역적) 폐기능의 악화로 기류제한이 나타나는 기전이다.
폐기능 악화의 비가역적 특성, 즉 한 번 손상된 폐는 다시 회복되지 않는다는 것이 COPD의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폐기능 손상이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에서 진단된 환자의 경우, 호흡곤란과 같은 중증 증상으로 인해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은 물론 급성 악화로 인한 사망위험이 높아지는 등 예후가 열악하고 치료가 힘들다. 특히 COPD는 폐암이나 심혈관질환, 골다공증, 우울증 등과 동반돼 예후악화와 사망위험을 더 높이기 때문에 중증 환자에서 반드시 살펴야 하는 사항이다.④
COPD 환자에 소요되는 의료비용의 대부분이 이들 중증단계에 집중된다는 것을 염두해야 한다. 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 자료에 의하면, GOLD 가이드라인 기준으로 4단계의 중증 COPD 환자들에게 들어가는 총 의료비용이 1단계 초기 환자에 비해 3.6배나 높다. 때문에 이상엽 교수는 “질환 초기에 COPD를 발견하고 폐기능 악화를 예방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현대의학 역시 조기에 고위험군을 가려내고, 질병 이환을 진단할 수 있다면 예방과 관리(질병의 진행 완화)가 가능한 수준까지 올라와 있다.⑤
It’s the spirometry!
“It’s the diagnosis!”에서 좀 더 심층적으로 파고 들어가 보면, “It’s the spirometry!”라는 말로 문제를 좀 더 구체화할 수 있다. COPD는 천식과 달리 진단이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다. 폐기능 검사의 존재 때문이다. 40세 이상 연령대에 흡연력·기침·가래·호흡곤란 등의 소견을 보이는 고위험군에서 FEV1/FVC 0.7 미만 기준을 만족시키는 폐기능 손상이 있으면 COPD를 확진할 수 있다.
그런데 폐기능 검사가 COPD 진단을 수월하게 해주는 반면, 이 검사가 없으면 COPD를 진단할 수 없다는 것이 역효과를 내고 있다. 임상현장, 특히 1차 의료기관에서 폐기능 검사를 적용하기가 여의치 않은 환경이기 때문이다. 비용과 기술의 문제에서 더 나아가 임상병리사가 폐기능 검사를 시행할 때만 급여가 인정되는 의료환경이 개원가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답은 있는데 답을 쓰지 못하는, 구슬은 서말인데 이를 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곧 일정 교육을 이수한 병원직원에게 폐기능 검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자격증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정부 차원에서도 COPD 극복을 위한 보다 진일보된 정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학회는 이와 관련해 생애전환기 건강검진에 폐기능 검사를 포함시키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⑥
It’s the primary care!
대부분의 COPD 환자들이 폐기능 악화가 상당히 진행되고 중증 증상이 나타나서야 2·3차 의료기관을 찾고, 진료환경 상 진단검사법의 적용이 쉽지 않은 점 때문에 1차 의료기관에서의 COPD 진료가 십분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유병률·사망률·사회경제적 비용부담을 고려할 때 개원가에서 COPD의 진료가 활성화돼야 한다는 주장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기침과 가래와 같은 경미한 호흡기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가장 먼저, 그리고 쉽게 접근하는 1차기관에서 COPD의 고위험군을 가려내고 조기진단을 통한 빠른 치료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만큼 COPD의 조기진단과 치료의 측면에서 개원가의 역할과 책임이 막중하다. 이제 1차 의료기관도 COPD 환자들을 앞에 두고 “못찾겠다 꾀꼬리”만 외칠 것이 아니라, 의료환경 개선과 함께 가까운 이웃의 환자들을 수면 위 양지로 끌어내 치료하는데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⑦
숨통 조여오는 COPD
“유병률·사망률·사회경제적 비용부담은 갈수록 증가하는데, 인지도는 낮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작금의 COPD 현황과 관리실태를 이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질병이 가져다 주는 폐해는 극명하게 알려져 있는데 반해, 환자의 상당수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수면 아래 방치돼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COPD가 고령화 한국사회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숨 막히는 한국사회, 이제 숨어 있는 COPD 환자들을 찾아내 숨길을 열어줘야 할 때다.
이상돈 기자
sdlee@mo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