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방부(DoD) 지하 냉동창고에 과학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혈청 샘플때문이다.

미국 과학잡지 Scientific American과 영국 과학잡지 Nature는 12일 DoD의 혈청은행을 소개, 그 활용 범위와 앞으로의 가능성을 평가했다.

DoD는 28년 전부터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조사의 일환으로 혈청 샘플을 수집해왔다. HIV 검사 또는 발생 후 건강검진을 위해 혈액 채취는 정기적으로 이뤄졌고, 후일을 위해 모두 국방부혈청저장소(DoDSR)에 냉동 보관 됐다. 그렇게 보관된 샘플이 쌓여 이제는 자그마치 100만명에서 나온 5550만개를 돌파했다. 샘플 제공자는 대개 군 요원 또는 재향군인, 군 지원자다.

미군은 DoDSR을 감염질환 추적을 위한 일반건강조사와 건강정책 수립 등에 사용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연구 프로젝트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지난 5년간 DoDSR에 혈청 샘플 제공 문의가 278건 들어왔고, 지난해엔 62건이 있었다. 이 중 절반은 연구 목적이었고 나머지는 임상 검사 목적이었다. 그렇다고 이 자료가 의학 연구에만 쓰이는 것은 아니며, 어떤 경우에는 형사소송절차에 사용되기도 한다.

DoDSR 감독 책임을 맡고 있는 Mark Rubertone은 인터뷰에서 "군 요원이 군대를 떠나더라도 샘플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DoDSR에 보관된 혈청 샘플은 설사 본인 또는 그 가족이 요구하더라도 폐기되지 않는다. 이 자료를 통해 연구자뿐 아니라 참여자 또한 혜택을 얻기 때문에 폐기 요구도 매우 드물다. Rubertone은 "지금까지 총 샘플 폐기 요청 건수는 10건 이하"라면서 "군 요원이나 그 가족들은 샘플이 저장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적극적으로 의식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DoDSR에 저장된 샘플 중 현역 또는 예비역이 아닌 사람의 것도 200만개 가까이 된다. 이들은 대개 군 요원의 자녀 또는 수령인 등 가족이다. 군 가족은 불임 치료가 끝나거나 성매개 감염 클리닉에 방문한 뒤부터 생체 시료 채취가 중단되기 때문에 다른 자료에 비해 듬성듬성하다. 군에 지원했지만 입대하지 못한 민간인도 4% 가량 포함돼 있다. 정책 상 이들의 자료도 빠짐없이 저장되지만 연구 목적으로 사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DoDSR의 풍부한 종단 자료는 최첨단 연구를 가능케 한다. 예를 들어 몇몇 프로젝트에서 이 자료를 이용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바이오마커를 조사하고 있다. PTSD 발생 전후 혈청 샘플에서 DNA를 채취해 대조군과 비교해 PTSD가 유전자 수준에서 언제, 어떻게 분명하게 나타나는지, DNA 구성요소가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특정 유전자의 기능을 멈추는지 등을 알아볼 예정이다.

미국 국립군의관의대 Jennifer Rusiecki 교수팀은 DoDSR 자료를 바탕으로 외상성 뇌손상과 DNA 메틸화 간의 연관성을 연구하고 있다. 연구팀은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으면서 경증~중증 외상성 뇌 손상이 있는 군 요원 150명의 샘플에서 얻은 자료와 대조군 50명의 자료를 비교하고 있다. 전투경험 유무에 관계 없이 경증 외상성 뇌손상의 경우 환자 본인도 모른채 가지고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번 연구를 통해 바이오마커를 발견하면 임상 치료에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Rusiecki 교수는 "DoDSR에서 사용 가능한 혈청 샘플을 제공받지 못했다면 일부 연구는 아주 불가능했을 수도 있다"면서 "다른 혈청은행에서도 DoDSR만큼 자료를 보유하고 있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DoDSR에서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논문이 75건 발표됐고, 아직 정식으로 게재되진 않았지만 발표 예정인 프로젝트들도 있다. Rubertone은 "저장 목적이 건강 조사인 만큼 다른 모든 연구가 중단된다 하더라도 DoDSR의 수집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농구코트 크기의 냉동고 7개가 사용되고 있으며, 추가로 수집되는 샘플 보관을 위해 마련된 냉동고가 4개 더 있다.

그러나 이 자료에 대한 접근 권한은 한정돼 있다. 미군은 DoDSR의 혈청 자료가 남용되지 않도록 보보하고 있으며, DoDSR 자료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군 협력 조사관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또 DoD 정책 상 연구 주제 또는 목적이 군과 밀접하게 관련 있어야 하고, 연구자들은 반드시 자신이 소속된 기관의 기관윤리심의위원회(IRB) 승인을 받아야 한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