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전문화·소규모병원으로 달린다

일본의 의료계는 보험체계나 의료환경이 우리나라와 유사한 점이 많으므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일본의 1980년대 후반의 의료상황은 현재의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고, 보건복지부의 일본출장이 빈번해지면서 우리의 복지정책이 일본의 정책을 답습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사료된다.

최근 2~3년 사이에 급변하고 있는 일본의 의료계를 점검해본다.

일본의 의료현실과 유사점

첫째, 일본은 현재까지 의사수를 제한하지 않았으며 종합병원의 병상수를 억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우리 현실과 매우 유사하다.

이러한 결과는 의사의 과잉 공급 및 병상의 과다를 초래하였으며, 결과적으로 보험재정의 악화를 초래하였다는 것이다.

둘째, 고령환자의 증가에 대하여 정부가 보건복지비용을 과다하게 지출하여 보험재정의 악화요인이 되었으며, 우리 나라도 현재 고령인구의 보건복지에 많은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의료보험체계가 국가 주도의 전국민 개보험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 우리와 동일하며, 행위별 수가제도로 대부분 운영되는 것도 유사하다.

또한, DRG를 시범 적용하면서 사보험제도와 주치의 등록제를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 양 국가의 공통된 사항인 것이다.

넷째, 일본은 이미 인구의 고령화가 가속화되었고 출산율이 저하되어 인구의 자연증가율이 영점(제로)에 도달하였으나 보험재정의 관리에 대한 대책이 미흡하였다는 것이 우리와 유사하다.

즉, 국가가 보험재정으로 지원해야 할 고령환자의 의료비용이 증가하는 반면에 보험재정을 충당해야 할 노동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는 사안에 대하여 충분히 대처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일본정부의 대책

보험재정의 악화(2002년도 보험재정의 적자를 5,731억 엔으로 추정)로 인하여 일본정부는 과감한 정책을 발표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러한 정책변화는 우리나라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일본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거나 추진할 정책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본의 건국 이후 처음으로 의료보험수가를 감산하였다.

작년까지도 계속 보험수가를 인상하였으나 금년에는 보험수가를 인하하였다.

둘째, 특수기능병원(우리의 3차 의료기관)에 대하여 보험수가를 추가적으로 제공하였으나(3차 의료기관 가산율 적용과 유사), 향후에는 의료기관의 유형에 관계없이 특수 진료(유전자치료, 특수 암치료, 장기이식 등)를 제외하고는 동일한 수가체계를 전개할 방침이다.

더욱이, 일정 기간 동안의 처치결과가 나쁜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오히려 보험수가의 70% 정도만 지불한다는 입장이다.

셋째, 입원기간 및 외래 방문회수에 제동을 건다는 것이다.

현재의 평균 입원기간인 35일(고령환자 61일)을 20일 정도로 낮추도록 의료정책을 전개하고 있으며, 외래진료 횟수가 4회를 초과하는 경우에 본인 부담률을 높이는 등의 정책을 수립하였다.

특히, 노인전문의료기관에 대한 지원을 줄이고 요양원을 육성함으로서 고령환자에 의한 의료비 부담을 줄이고 있다.

넷째, 소아와 특수 질환을 위한 국립의료기관은 육성하지만, 이외의 국립의료기관은 과감히 민영화하여 국가의 재정을 건실화 할 예정이다.

즉, 만성 적자로 허덕이는 국립의료기관의 과감한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다섯째, 2003년도 3월부터 DRG를 적극적으로 도입할 예정이며, 현재 사보험의 도입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의료비를 심사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인건비 등)을 절감하기 위하여 일본의 후생성은 2004년도부터 전산자료를 제출하는 의료기관에만 정상적으로 의료비를 지급할 계획이다.


일본 의료기관의 변화

2~3년 전부터 종합병원들의 경영상태가 급속히 악화되기 시작하였고, 금년 혹은 내년부터는 적자로 허덕이는 병원들이 급속히 증가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일본의 의료기관들은 커다란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첫째, 종합병원이나 개원보다는 group practice 중심의 소규모 병원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대학병원들도 500~600 병상 규모의 중급 병원을 여러 지역에 산재시키고 있다.

즉, 의료인력 및 병상의 공급과잉에 의한 환자유치가 치열해지면서 인구 50~100 만명을 기준으로 전문병원과 중급 대학병원이 유치되고 있다.

둘째, 입원환자의 재원기간을 20일 이내로 줄이기 위하여 협력의료체계(referral center)를 활성화시키고, 노인전문병원의 규모를 대폭 축소시키고 있다.

셋째, 인건비 절감과 의료비의 자동 청구를 위하여 의료전산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병원들은 자동 수납기 및 자동 등록기를 배치하고 전자의무기록(EMR: electronic medical record)을 도입하고 있다.

넷째, 만성 환자보다는 의료수익이 높고 정부 지원금이 있는 급성 환자를 적극 유치하기 위하여 "acute medicine"이라는 개념의 의료가 활성화되고 있다.

즉, 야간진료 및 응급센터를 활성화하여 최대한 환자를 유치하고 있다.

다섯째, 환자를 유치하기 위하여 병원환경과 의료서비스의 향상에 많은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

일본의 경우 인구의 고령화, 출산율 저하, 독신율(결혼하지 않는 경우) 증가 등으로 인하여 환자가 주거지 이외의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비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우리 나라도 일본과 동일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우리의 인구 자연증가율도 20년 후부터는 마이너스(negative)로 전환되면서 환자가 감소할 것이며, 결과적으로 종합병원의 대형화는 병원경영의 악화로 직결될 것이다.

더욱이, 대형 종합병원의 환자들이 group practice에 의하여 초전문화된 소규모 병원들로 분산되면서 이러한 과정은 더욱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정부가 육성하고 있는 노인전문병원은 향후 10~15년 정도만 지원되다가 결국 중단될 가능성도 있으므로, 의료인들의 주의가 필요하다.

의료의 전산화를 조속히 시행하여 향후의 병원경쟁에 대비하고, 병상수 및 의사의 증가율을 최소화하면서 외부 의료기관과의 협력체계를 지금부터라도 활성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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