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전공 선택 대혼란...학부모 설명회까지

“의대생이 무슨 성적에 대한 고민을 해요? 워낙 엘리트 중에 엘리트 아닌가요? 알아서 공부 잘하던 친구들이고, 또 잘하는 친구들끼리 모여있으니 더 잘하지 않나요?”
흔히 생각하는 의대생에 대한 통념일 것이다. 그러나 실상을 파고들면 그렇지 않다. 국시 합격률이 92%인 만큼 잘하는 학생과는 별도로 소외되는 학생들도 있기 마련이다. 특히, 인턴제 폐지를 앞두고 더욱 막막해진 병원, 전공 선택 때문에 성적 관리를 고민하는 학생, 학부모들이 늘었다. 지난 26일 의사국시 대비 학원 ‘메디프리뷰’에서 마련한 학부모 설명회에는 30여명의 의대, 의전원 학생과 학부모들이 국시 대비와 진로 문제에 대해 상담했다. 국시 유급 학생 학부모들의 비공개 상담도 많았다. 11년째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권양 대표(영상의학과 전문의)와 함께 주요 상담 내용을 정리해봤다.


-인턴제 폐지로 인해 바로 원하는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학생 때부터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인턴제 폐지가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수련 역사 상 최대 변화이다. 인턴제가 폐지되면 인턴을 거치지 않고 바로 레지던트(NR1)로 들어가게 된다. 이에 학생들은 방학 기간 여행이나 휴식의 시간을 갖는 대신 서브인턴 신청 경쟁이 치열하다. 심지어 여러 병원 서브인턴에 응모하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일부 병원은 해당 병원에서 서브인턴 과정을 이수한 경우 전공의 지원시 가산점을 주겠다는 정책을 내놓으면서 이런 분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결국 학생들 사이에서 서브인턴이 ‘스펙 쌓기’로 인식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원하는 병원, 전공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성적관리를 잘해야 한다. 10등급으로 이뤄진 내신도 중요하며, 특히 기초과목도 중시해야 한다. 갈수록 의사 출신 기초의학 교수 숫자가 줄어들면서 임상과 연계된 내용보다 생물학적 관점의 기초의학 교육을 받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즉, 임상의학을 공부할 때 맥락이 이어지지 않아 힘들어 하는 학생이 많은 것으로 보이며, 후유증은 의사국가시험 성적 부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국시는 해마다 어려워지는 추세이기 때문에 기초과목 교육이 부실한 학교일수록 이런 현상이 더욱 극심해질 것이다.

-전공과목은 어떻게 결정해야 하나?

수련병원 선택보다 어떤 진료과 전문의가 되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의대 정원이 늘어나면서 전체 인원 자체가 부족한 과는 별로 없다. 학생 스스로 잘할 수 있는 진료과 선택이 중요하다. 몇 년 전 어떤 학생은 내과를 선택하려 하다가 성적이 좋다는 이유로 주위에 휩쓸려 성형외과 의사가 됐지만, 결국 적성에 맞지 않아 전전긍긍하고 있다. 성형외과 개원의로 성공한 비중은 높지 않다. 자기 자신한테 잘 맞는 전공을 선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 ‘마치 잘하고 있는 것처럼 포장하는 의사‘가 되기 쉽다.

학생이 맞는 진료과를 따지기 위해서는 수술이냐 수술이 아니냐, 환자를 보느냐 아니냐, 아픈 사람을 살리는 일이냐 아니냐 등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대학병원에서 좋은 과와 그 외의 병원, 개원해서 좋은 과도 나뉜다. 지금 유행하는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 등 이른바 '정재영'은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보험사의 자동차사고 확인 강화로 정형외과와 재활의학과의 수익 감소의 우려가 있다. 영상의학과는 기본적으로 환자를 보지 않아서 병원이 어려워지면 언제든지 나가야할 수도 있다. 단순히 유행에 따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여학생의 진로 선택은 다른가.

안타깝지만, 여의사가 50대가 넘어가면 입지가 많이 좁아지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대신 산부인과, 소아과 등은 괜찮다. 성적이 좋으면 피부과, 영상의학과 등이 좀 편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환자들이 여의사가 어리면 너무 아가씨 같아 싫어하고 나중엔 아줌마 같아서 싫어한다고 한다. 남자와 경쟁하는 과는 힘들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이해할 필요가 있지만, 본인이 잘할 수 있는 진료과를 선택하는 게 가장 좋다. 성적관리 등 준비를 잘해야 선택권이 생긴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남학생들은 군대 문제를 고려할 수 있는데, 이왕이면 빨리 갔다오는 게 좋다는 의견이 많다.

-국시 합격률이 92%에 이른다고 한다. 떨어진 학생은 얼마나 되나?

국시는 매년 92% 가량의 합격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실제로 88% 정도 될 것으로 추정된다. 의대에서 합격률을 높이기 위해 합격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학생을 유급시키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는 학교마다 상황이 다르다. 3000명 이상 쏟아지는 의대, 의전원생 중 280명 정도는 국시에 떨어지며, 현재 누적학생은 35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어떤 학생은 9수를 해서 합격하기도 했고, 국시 자체를 포기한 학생들도 더러 있다.

-국시 불합격과 유급은 왜 발생한다고 보는가.

의대 공부는 어렵다. 새로운 언어를 공부하는 것과 다름없다. 처음에 어렵다고 흥미를 갖지 못하고 놔버리면 나중에 따라가기 정말 힘들다. 이 때 학부모가 관심갖고 잘 다독일 필요가 있다. 또한 명심할 것은 아무리 의대생이라도 잘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이다. 의대생들은 워낙 실패를 모르고 자라왔기 때문에 성적이 좋지 않아도 숨기는 일이 많다. 지방의 어떤 학생은 학년이 올라가면 서울의 병원에서 수업을 받는데, 이를 숨긴 채 몰래 지방을 오가면서 2교시씩 지각한 일도 있다. 매일같이 서울 병원으로 학생을 태워다주던 어머니가 우연히 알게 돼 충격을 받고 찾아오셨다.

-학생이 공부를 하지 않거나 진로 선택에 과도한 자기 고집을 피우면 어떻게 하나.

본인의 경우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보려고 했으나, 당시 부모님께서 검정고시를 보면 집을 나갔다 대학생이 돼서 다시 오라고 하셨다. 그래서 당장 포기했다. 학부모들도 그저 학생을 잘한다고 감싸지만 말고, 단호하게 할 땐 단호하게 하고,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병행해야 한다고 본다. 또한 의대에서도 유급 학생에 대한 고민이 뒤따랐으면 한다. 일부 의대에서는 관리하고 있지만, 대체로 소외돼있다.

-국시에 대비하기 위한 스터디그룹으로 도움받을 수 있나.

스터디 그룹은 서로 정보를 줘야 가능하다. 그러나 요즘 의대생들은 자기 것을 내놓으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대신, 얻을 수 있는 것에만 욕심을 낸다. 그래서 유지될 수 없다. 차라리 돈을 주고 학원에 와서 배우는 의대생도 많다. 사교육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학원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의대생들을 위해 ‘예과 2학년 때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과 학부모들을 위해 ‘아들이 의대갔어요, 딸이 의사됐어요’라는 책을 쓰고 있다.

-의대, 의전원생과 학부모에 조언 한 마디 해달라.

의대 갔다고 하면 학생이나 학부모나 주위에서 다들 남부럽지 않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속에서도 고민은 많다. 갈수록 의료환경 자체도 열악해지고 있다. 슬기롭게 헤쳐갈 수 있도록 부모가 너무 다 해주려고 하거나 잘한다고 감싸기만 하는 행동을 버려야 한다. 또한 학생도 실패할 수도 있다는 유연한 생각을 가지고 부모님이나 선배, 교수님들과 상의해 가면서 의대 생활에 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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