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에 대한 설명 의무가 강화되면서 병원들도 고민에 빠졌다. 각종 대법원 판결이 설명 부주의라는 명목으로 의료진에 다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고, 심지어 설명을 의무화하는 법안도 제출됐다. 그렇다고 당장 수가 보존되지 않는 상태에서 진료시간을 늘릴 수도 없는 일. 병원들은 설명간호사 제도를 도입하는 등 설명 강화에 나서기 시작했다.

설명 부주의 패소 판결...법안까지

20대 여성인 A씨는 지난 2008년 화난 인상에 대한 콤플렉스를 고치고자 눈썹거상술을 받았다. 그러나 인상이 개선되는 것은 커녕 흉터제거술을 받아야 할 정도의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A씨는 "병원이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며 치료비·위자료 등 5566만원을 지급하라고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대법원은 "눈썹거상술이 A씨가 원하는 결과를 구현할 수 있는 시술법이 아니라고 볼 여지가 충분하므로 의사는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라는 명목으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미용성형술은 외모에서 개인적 만족감을 얻거나 증대할 목적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의사는 환자가 원하는 구체적 결과를 충분히 경청하고 시술법을 신중히 선택해야 하며, 환자의 외모가 어느 정도 변화하는지 예상되는 위험과 부작용을 상세히 설명할 의무가 있다는 것.

60대 여성인 B씨는 척추관 협착증 수술 후 하부기관 마비를 겪었다며 소송을 냈다. 의료술기 상으로는 아무런 과실이 없더라도 수술의 난이도와 부작용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면 환자에 위자료를 물어줘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8민사부는 "수술과정에서 아무런 술기과실이 없었더라도 수술 전 환자에 부작용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면 병원의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시하고, 환자에 2000만원 배상을 명령했다. 환자에 수술 후 신체 마비 또는 사망 등의 중대한 결과가 예측되는 의료행위의 경우, 환자나 대리인에게 질병의 증상, 치료법의 필요성 및 위험성을 상세히 설명해 수술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근 잇따라 나온 판결에 이어 급기야 지난달 2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민주당 김성주 의원은 설명을 의무화한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등이 환자에게 수술 등 인체에 위험을 가하는 의료행위를 할 경우, 진료와 관계되는 중요사항을 환자나 보호자에게 미리 설명토하도록 규정한 것이다.

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는 "이미 의료현장에서 신뢰관계로 잘 이뤄지고 있는 설명의무를 실체적 현실을 반영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법률화 하는 것에 대한 재고려가 필요하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그러나 법안 논의는 뒤로 하고라도, 각종 판결을 미뤄봤을 때 병원들이 설명 강화를 위한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설명간호사 도입·교수 직접 설명까지

예약환자가 밀려 있는 대형병원에서는 당장 해결할 방법이 없지만, 하나의 대안으로 '설명간호사'의 역할이 떠오르고 있다.

일찌감치 설명간호사 제도를 도입한 서울대병원은 환자들로부터 호응이 좋은 편이라고 소개했다. 지난 2007년 환자의 궁금증을 해소하고 진료 만족도와 편안함을 높이기 위해 임상 경험이 풍부한 간호사 8명을 꾸려 설명간호사를 도입했다. 환자 호응도가 높아져 본원 내과, 외과 외래와 어린이병원 외래 등에서 총 14명의 설명간호사가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하루 700여명의 환자가 이들을 찾아 상담받고 있다. 이들은 검사 이유와 결과, 귀가 후 주의사항에 대해 설명하고 질병, 검사, 수술, 입원 등의 문의사항에 대해 설명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설명간호사 제도를 따라하는 병원들이 생겨났다. 중앙대병원이 도입한데 이어 고대구로병원도 시범운영에 들어갔다. 본관 1층 안내데스크에서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운영되며, 초진상담과 검사, 시술, 수술환자에 초점을 맞춰 고객진료만족도를 높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간호사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병원은 아예 교수들까지 '재능기부'를 자처한 설명 강화에 나섰다.

강북삼성병원은 성형외과 장충현교수를 필두로 신호철 원장, 원로교수진(장운하·안동애·최원식·권칠훈·박해원·정은철·손진희·박효순)과 소화기내과 손정일 교수 등 총 12명으로 구성된 교수진이 설명에 참여한다. 병원 본관 1층 로비 통합창구(안내, 초진상담, 의무기록사본발급)에 월~금요일 오전 1~2시간 정도 의료상담을 해주고 있다.

병원은 "설명 잘 하는 병원을 캐치프레이즈로 환자와 보호자에게 꼼꼼한 설명을 하고 있지만, 환자는 여전히 궁금한 것이 많다"며 "교수진은 상담을 통해 궁금한 점을 시원하게 풀어준다. 병원에 처음 오는 환자를 비롯해 모든 환자가 자유롭게 상담을 받을 수 있다"고 소개했다.

물론 이같은 활동은 병원으로서는 부담일 수 밖에 없다. 설명간호사는 상주하는 만큼의 추가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교수진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단순 설명간호사는 정규인력으로 채용하긴 어렵고, 비정규직 인력 하나 늘리는 것이 아니냐는 비아냥도 흘러 나왔다.

홈페이지·스마트폰 활용한 설명 강화

한편으로는 홈페이지나 스마트폰을 통한 설명 강화 방법도 생겨나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새로 개편한 홈페이지와 병원 앱을 통해 진료 기록이나 검사 기록 조회는 물론, 처방받은 약물정보는 사진과 함께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준다. 혈액검사는 검사결과와 기준치를 함께 보여줘 내 결과가 정상범위인지 기준치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 알 수 있다. 영상검사, 기능검사, 병리검사는 검사 이력 정보를 제공하고 처방이나 검사 정보는 타병원에서 진료를 볼 경우 중복검사나 중복처방을 막을 수 있게 했다.

강북삼성병원은 환자에게 설명을 위해 간호사가 말이나 유인물을 나눠주던 방식에서 벗어나 최신 태블릿PC로 동영상을 이용한 설명자료를 만들었다. 급기야 전 병상에 태블릿PC를 설치했다. 여기에는 △입원안내 △척추수술 후 운동방법 △재활치료 간호방법 △심장초음파 검사설명 △저염 식단 레시피 소개 등으로 환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담았다. 외국인 환자를 위한 영어, 일본어 버전도 제작됐다.

이밖에도 설명을 위한 각종 도구들이 생겨나고 있다. 관련 업체들도 파생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막대한 비용이 소요될 수 밖에 없다. 두 개 병원만 하더라도 수억원을 할애했다.

한 병원 관계자는 "환자들에게 해야 할 서비스는 늘어나고 설명까지 강화해야 하는 힘든 환경"이라며 "나름대로 상세히 설명해줘도 부족하다는 소송이 연이을 수 있고, 관련 법안까지 나오면 더욱 힘들 수 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다른 병원 관계자도 "설명 강화는 환자에 설명을 강화하고 의료의 질을 높이기 위해 진료시간을 1~2분 늘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30분은 할애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수가 체계에선 어림없는 일"이라며 "병원들이 개별적인 노력을 하더라도 충분한 설명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의료환경 구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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