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5대 명문으로 도시 전체가 캠퍼스

모나코에서 열린 European Association for Cardio-thoracic Surgery의 annual meeting에 정회원 자격으로 참석한 후 프랑스 니스에서 낭뜨로 가는 에어프랑스에 몸을 싣고 낭뜨에

도착하니 어느 시골 역 대합실 같은 작은 공항에서 부르셀 행 에어프랑스에 탔다.

그리고 잠시 후 눈에 익은 벨기에의 자벤템 공항의 부근 마을의 아름다운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1986년 초 약 25시간 여의 비행 끝에 지친 몸으로 암스테르담 발 부르셀 행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가며 구름 사이로 보이던 그 자벤템 근처의 전형적인 유럽 풍 단독 주택들이 주변 나무들과 어우러져 아름답게 보였던 당시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잠시 나의 젊은 시절의 정열을 바쳐 시간을 보냈던 벨기에 루벤 대학 병원에서의 전공의 시절, 전임의 스탭 시절, 연구실과 수술실을 뛰어다니며 바쁘게 살던 지나간 시간들이 한꺼번에 주마등처럼 지나쳐 가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비행기는 어느덧 자벤템 공항에 사뿐히 내려 벨기에 땅에 도착하였다. 지난 2000년 12월 미국 피츠버그 성프란시스 병원에서 스탭으로 근무할 당시 루벤 대학교에서의 의학박사 학위 디펜스 및 학위 수여를 위해 들렀던 자벤템 공항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지만 국제 공항으로서 손색이 없이 깨끗하고 크고 넓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벤시 외곽 링 고속화 도로로 빠져나가 시내 중심에 있는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짐을 풀고 옷을 갈아 입은 후 루벤 시청 뒷길에 있는 식당가를 찾았다.

벨기에에서 지낼 때 즐겨 찾던 모슬(홍합)을 그 유명한 후가르덴 (Hoegarden) 맥주 한잔과 더불어 먹고 나니 배가 부르고 어느 정도 취기까지 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식사를 마치고 루벤 대학 병원 가스트허이스베르그로 차를 몰았다. Sergeant 교수와 관상동맥 수술 한 케이스를 함께 하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루벤 대학은 1425년에 세워진 유럽의 5대 명문 중의 하나로 시 전체가 캠퍼스로 되어있다. 역사적으로 철학, 신학 그리고 의학은 그 명성이 매우 높아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어 유학생들이 많다.

병원으로 가는 동안 그 짧은 시간에도 철학과 강의동, 어학 캠퍼스 등을 지나쳤는데 여전히 학생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고 많은 학생들이 자전거로 등교하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보였다.

병원에 도착하여 무인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는데 과거와 같이 주차권을 자동 발부 받고 나중에 주차장 주변의 자동 주차비 계산기에 계산을 하면 되는 시스템이 아주 편리하게 되어 있었다.

주차장에서 병원 주건물까지는 마치 식물원에 온 기분이 들 정도로 온실처럼 유리로 된 긴 통로를 지나야 하는데 그 통로를 따라 배치된 화분들은 분위기를 편하고 온화하게 하였다.

병원 안에는 은행과 작은 슈퍼마켓, 그리고 외래환자나 보호자 전용 음식점이 있었고 계단, 에스컬레이터, 그리고 엘리베이터로 로비 1층과 2층이 연결되어 있어 매우 편리한 구조를 보였다.

로비의 전체 천장과 벽이 모두 철골재 자체와 유리로만 되어 큰 온실에 들어온 느낌을주었다.

그리고 각 병동과 외래 진료실 등의 안내 표지는 색깔별로 달리 표시 되어있고 복도 중간마다 그 색깔로 방향을 안내하고 있었다.

복도의 벽은 그림 전시장에 온 느낌이 들 정도로 많은 그림 액자들이 걸려 있고 갖가지 화분과 정원이 꾸며져 있어 매우 깨끗하고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여전히 과거와 큰 변화 없이 배치된 심장외과 의국에 도착하니 Sergeant 교수는 나를 반가이 맞아 주었고 그날 케이스 관상동맥 혈관 조영 필름을 함께 보며 수술의 구체적인 계획을 함께 짰다.

수술실은 최근에 완전히 과거와는 다른 구역에 새로 만들어 매우 크고 좋았다.

모든 문은 카드나 키로 출입이 가능하고 수술실로 들어가는 문들은 자동으로 작동하여 감염 관리 차원에서도 훌륭한 설계를 한 흔적이 보였다.

수술실은 모두 6개가 있고 1개는 혈관수술 전문으로, 또 하나는 응급심장 수술실로 항상 심장내과에서 혈관 성형술이나 그물망 시술시 만약을 대비하는 것으로 비어있고, 나머지 4개는 스케줄 된 심장 수술을 하는 수술 방으로 되어 있었다.

과거에 내가 일할 때는 다른 구역에 수술실 5개가 있었는데 그때보다 훨씬 새롭고 현대적으로 바뀌어 많은 변화를 느끼게 하였다.

수술실 내에는 보조 모니터가 마취과 이외에도 두개나 천장에 달려 있어 어느 각도에서도 외과의사나 심폐기사가 환자의 상태를 바로 관찰 가능하게 되어 있었고 모든 수술 방은 소위 라미나 플로우로 공기 청정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어쨌든 일년에 1400 케이스 이상의 심장 수술을 하는 유럽 최고의 심장 센터의 하나로불려지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시설들이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들른 수술실에는 내가 과거에 함께 일하였던 심폐기사들이 반갑게 맞이하며 안부를 물었고 수술실 간호사들은 전부 바뀌어 3명만이 과거에 나와 일하던 사람들이었다. 물론 그들과도 즐거운 만남의 대화를 나누었다.

항상 심장 수술을 함께하던 마취 전문의인 De Meyer 교수도 반가이 만나 그 동안 지낸이야기를 하였는데 이제 그도 머리가 허옇게 된 노 교수가 되어 있어 세월의 빠름을 실감하였다.

그리고 그날 그 곳에는 일본 요코하마 시립 대학 병원의 흉부외과 의사인Kosuge 교수가 연수와 있어 반가이 인사를 나누기도 하였다.

또한 만나는 병원 사람마다 이구 동성으로 한국의 월드컵이 인상적이었으며 한국 축구팀의 실력이 높다고 말하였고, 벨기에 안델렉트에서 뛰는 설기현 선수를 칭찬하는 등 우리나라에서의 월드컵이 성공적이었음을 느끼게 하기도 하여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게 생각되었다.

그날의 케이스는 78세 남자로 당뇨와 고혈압이 있는 다혈관 관상동맥 질환 환자로 인공심폐기를 사용하지 않고 수술을 하는데 혈압과 기타 혈액 역동학적 변화를 전혀 주지 않고 심장의 위치를 조절하며 진행되었다.

필자도 인공 심폐기 사용없이 관상동맥 수술을 많이 하였지만 요즈음 새로 개발된 흡입장치가 장착된 기구는 사용한 적이 없어 그 기구를 사용하여 시술 되는 그날의 수술은 나에게 새로운 경험이었고 Sergeant교수는 과거 자신의 제자를 다시 만나 이제 완숙한 심장외과 의사로서 대하며 즐거이 수술을 함께 하였다.

환자는 좌내흉동맥을 Left anterior descending artery에 그리고 우내흉동맥 free graft로 intermediate artery와 lateral branch of circumflex artery에 소위 말하는 T-graft 시술을 받았는데 새로운 흡입장치로 심장을 고정하며 수술하는 동안 환자의 동맥혈압과 폐동맥혈압, 그리고 심박출량은 전혀 변화 없이 내내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였다.

매우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치고 Sergeant 교수와 나는 레지던트에게 마무리를 맡기고 라커에 가 옷을 갈아 입었다.

Sergeant 교수는 나를 병원 교수 레스토랑에 안내하여 함께 점심 식사를 하였는데 그 곳에서 일할 때 알았던 산부인과 Van Asshe 주임 교수, 그리고 몇몇 다른 과 교수들과도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점심 식사 후 오후에는 심장외과 사무실에 가서 과거에 함께 일하던 비서들, 그리고 나의 후배들로 나에게도 교육을 받았던 Bart Meyns, Paul Herijgers 등이 이제는 어엿한 교수가 되어 자기 몫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들과도 많은 담소를 나누고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하였다.

주임 교수인 Deanen 과장님과도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나의 박사학위 지도 교수였던 Flameng 교수는 휴가 중이어서 만나지 못하였다.

다음날 아침 다시 고속도로를 달려 자벤템 공항에 렌터카를 반납하고 자벤템에서 프랑스 파리행 에어 프랑스는 비행기편이 없어 고속철인 TGV를 이용, 빠르고 편하게 고속 열차를 타고 파리의 샤를르 드골 공항에 바로 도착하였다.

그리고 짐을 부친 후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다음날 오전 인천 국제 공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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