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血戰이다”...신-구·신-신 약제간 피나는 경쟁 관심사



혈전(血栓)을 대상으로, 그리고 혈전(血栓)을 놓고 벌이는 대혈전(大血戰)이 펼쳐지고 있다. 현대의학은 심·뇌혈관질환 이환 및 사망을 막기 위해 혈전과 전면전을 선포한 상태다. 여기에 치료약물들은 혈전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놓고 신·구(新·舊), 신·신(新·新) 약제 간에 중원을 점하기 위한 혈투를 진행 중이다.

혈전은 현대의학이 제압해야 할 최대의 난적 중 하나다. 혈관 속에서 피가 굳어져 만들어진 이 조그마한 핏덩이는 그 자체로 혈류를 저해하는 동시에, 몸 속을 돌아 다니다 혈관을 막아 색전증을 야기하고 결국은 심·뇌혈관질환으로 인한 심각한 장애 또는 사망을 유발한다.
최근 이상지질혈증, 고혈압, 고혈당 등이 급증하면서 죽상동맥경화증이 다발하고 취약성 경화반에 의한 혈전, 색전증의 위험이 높아짐에 따라 항혈전치료의 중요성이 더해지고 있다. 또한 말초동맥질환, 심방세동, 정맥혈전색전증 등도 혈전을 통해 급성 심·뇌혈관질환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관상동맥질환, 뇌졸중, 동맥경화증, 경동맥질환, 말초동맥질환, 정맥혈전색전증(심부정맥혈전증, 폐색전증), 심방세동 등 다양하고 광범위한 분야에서 항혈전치료가 요구되고 있다.

血栓과 벌이는 血戰
이렇게 전선이 광범위하고 적진의 특성이 다변화돼 있다 보니, 이에 대적하는 항혈전치료 역시 다양한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다. 현재 선택이 가능한 항혈전치료 전략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섬유소용해제를 통해 혈전 자체를 녹이는 치료로, 급성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증 등에 사용된다.

다음은 혈전이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장기적인 치료다. 항혈소판제와 항응고제를 사용하는 2가지 방법이 있다. 응고인자나 트롬빈 등을 저해하는 항응고제 요법은 상대적으로 혈류가 느린 심방(심방세동)이나 정맥(정맥혈전색전증) 쪽에, 혈소판 응집을 억제하는 항혈소판제는 빠른 혈류의 동맥(관상동맥질환, 경동맥질환, 말초동맥질환) 쪽에서 기여도가 크다.①
항혈소판제 전략
때문에 관상동맥질환, 심인성 뇌졸중, 말초동맥질환 등에서는 항혈소판제가 혈전과의 전투에서 선봉을 맡고 있다. 관상동맥질환에서는 전반적으로 아스피린, 그리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클로피도그렐과 함께 두 약제를 병용하는 이중항혈소판요법이 표준으로 임상에 적용되고 있다. 급성관상동맥증후군(ACS)의 경우, 신규 P2Y12 수용체 억제제들의 등장에 따라 새로운 선택이 추가된 상태다. ACS 관련 가이드라인들은 항혈전치료 권고안에서 아스피린 평생, 클로피도그렐 12개월의 이중항혈소판요법을 기본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여기에 아스피린에 더해지는 P2Y12 수용체 억제제로 티카그렐러와 프라수그렐이 추가적으로 또는 앞서 권고되고 있다.②
뇌졸중 분야에서도 역시 아스피린과 클로피도그렐이 주 전략으로 사용된다. 미국심장협회(AHA)와 산하 뇌졸중협회(ASA)는 뇌졸중 1차예방에 위험도에 따라 아스피린을 적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2차예방에는 아스피린, 아스피린 + 디피리다몰 서방형, 클로피도그렐 요법을 초기선택으로 적용토록 했다.③ 아스피린과 클로피도그렐의 이중항혈소판요법은 일상적인 사용이 권고되지는 않고 있으나, 최근 발표된 CHANCE 연구에서 두 약제의 병용을 통해 뇌졸중 재발을 유의하게 막을 수 있는 것으로 보고돼 향후 권고안의 변화가 주목된다.
한편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임상연구(CSPS2)에서 실로스타졸의 뇌졸중 예방효과가 아스피린과 비교해 우수하다는 것이 보고됨에 따라, 우리나라 가이드라인은 뇌졸중 예방을 위한 항혈전치료 전략에 실로스타졸 요법의 역할을 강화해 권고한 바 있다.④ 말초동맥질환 또한 아스피린에 이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선택으로 클로피도그렐 요법이 주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실로스타졸이 파행증 개선에 일차선택으로 권고돼 있다.⑤
항응고제 전략
정맥혈전색전증 예방과 심방세동 환자에서 뇌졸중 예방 등에 주 전략으로 적용되는 항응고제 요법도 신규 약제들이 등장하면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특히 심방세동 환자의 뇌졸중 예방 분야에서 지난 수십년 동안 표준으로 자리해 오던 비타민K 길항제의 역할을 대신할 새로운 경구 항응고제들이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심방세동은 고령으로 갈수록 유병률이 큰 폭으로 증가한다. AF 환자들의 경우 뇌졸중 위험이 일반인에 비해 5배 가량 높다. 고령화 시대의 우리나라 역시 적극적인 대처가 요구된다. 하지만, AF 환자의 뇌졸중 위험은 고혈압이나 이상지질혈증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뒷전으로 밀려 있었다. 관심도가 낮다 보니 환자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가 어려웠고, 제대로 된 치료가 이뤄지지 않다 보니 좀처럼 학계의 이목을 끌기가 힘들었다.

이렇게 힘들었던 AF 환자의 뇌졸중 예방을 위한 항혈전치료가 획기적인 항응고제들의 등장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이들 신규 항응고제는 효과와 안전성 면에서 기존의 표준요법인 와파린과 비교해 혜택을 입증받았으며, 와파린 치료시 야기되는 복용 순응도의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血栓 '놓고' 벌이는 血戰

혈전과 벌이는 현대의학의 싸움이 더욱 흥미로운 것은 전투에 쓸 무기가 더욱 많아지고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항혈소판제와 항응고제 분야에 신기술로 무장한 신약들이 대거 장착됨에 따라 혈전과의 전투에 보다 다양한 전략·전술의 수행이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현대의학이 혈전(血栓)과 벌이는 혈전(血戰)에 이어 혈전(血栓)이라는 거대한 전장터에서 신·구(新·舊), 신·신(新·新) 무기들이 우위를 다투며 펼치는 혈전(血栓) 또한 뜨겁게 달아 오르고 있다.
아스피린, 클로피도그렐, 티클로피딘, 티카그렐러, 프라수그렐, 실로스타졸, 보라팍사르, 와파린, 헤파린, 다비가트란, 리바록사반, 아픽사반, 에독사반 등으로만 국한해도 상당히 많은 약제들이다. 이들이 상호간에 경합을 펼치며 합종연횡(合從連衡)을 이루고 있는데, 동양의 춘추전국시대나 서양의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패권을 다투던 펠로폰네소스전쟁시대를 방불케 한다.

가장 뜨거운 경쟁을 펼치고 있는 곳 중의 하나는 ACS 환자의 항혈전치료 분야다. 아스피린에 이어 클로피도그렐 요법이 표준으로 자리하고 있던 이 분야에 P2Y12 수용체 억제제 계열의 새로운 항혈소판제들이 가세하면서 새로운 선택을 제공하고 있다. 클로피도그렐, 프라수그렐, 티카그렐러로 대변되는 이 약제들은 신·구는 물론 신·신약 간에도 약효 경쟁을 펼치면서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를 제공하고 있다.

연구 상으로는 신·구 대결에서 새로운 항혈소판제들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티카그렐러는 PLATO 연구를 통해, 프라수그렐은 TRITON-TIMI 38 연구에서 클로피도그렐 대비 유의한 심혈관사건 감소효과를 보고했다. 가이드라인 상에서도 신규 약제들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지형이 요동치는 모습이다. 하지만, 연구와 가이드라인 상의 동향이 실제 임상현장의 변화로까지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아직 결론이 이르다.⑥

항응고치료 역시 신·구에 이어 신·신약 간의 경쟁이 항혈전치료 패러다임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 경구 항응고치료의 표준으로 자리잡았던 비타민K 길항제 요법이 직접 트롬빈 억제제나 직접 Factor Xa 억제제로 대변되는 신규 항응고제에게 길을 내주고 있다.⑦ 와파린은 여전히 판막성, 비판막성을 포괄하는 AF 환자의 주된 항응고요법이다. 하지만, 와파린 치료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신규 항응고제들이 임상혜택에 있어서도 와파린에 비해 우수한 결과들을 내놓으면서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 있다. 와파린 복용의 어려움을 겪었던 환자들에게 새로운 선택이 제공되면서 AF 환자에서 항응고치료의 폭이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반면 와파린의 50년 역사에 비해 신규 항응고제들은 짧은 임상경험으로 인해 아직은 더 많은 데이터를 요구받고 있으며, 따라서 상당 부분 와파린에 이은 2차선택으로 적용되고 있다. 신규 항응고제의 1차선택을 위해서는 비용효과와 더불어 출혈위험에서 기인하는 안전성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이 두 가지 측면이 명확히 해결된다면 와파린에 비해 훨씬 수월해진 치료전략을 1차 의료기관에도 적용해 볼 가치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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